ep1. 전염병의 시작 #농경과 목축
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면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가 없다. 마스크 속의 표정을 숨긴 채 눈 밖에 보이지 않는 나날이 평범한 하루가 되어 가고 있는 나날이다. 이제는 마스크를 벗은 채로 큰 소리로 애기하거나 설령 재채기라도 하는 날이면, 대역죄를 지은 것 마냥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를 살펴야 한다.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나는 봄인데, 아직도 겨울인 것처럼 모든 게 움츠려 있다. 축복을 받아야 할 결혼식 초대장은 어느새 세균 초대장이 되어버렸다. 뉴스에서는 매일 사망자와 확진자가 몇 명인지 세상에서 그게 제일 중요 한 것 마냥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사람들은 재난 경보문자에 확진자 동선을 보고 하루하루 겁을 내고, 무단 이탈자나 집단 감염자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평범한 일상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 있어서 이러한 평범하지 않은 일상(?)은 늘 있는 일이었다.
전쟁보다 살인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범인이 질병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전염병은 대체 언제부터 시작 되었을까? 쉽게 말해 병이 전염이 되려면, 사람이 많고 모여야 한다. 바이러스도 숙주가 필요한데, 다시 말해 그들도 먹을 것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지 않는가? 사람이 많고 모여야 바이러스가 살 수가 있다. 다시 말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사건이 무엇일까? 바로 농업혁명 인간이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여 농경생활이 시작되었고, 이는 인구증가와 문명이라는 그럴싸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대표적인 작물 쌀과 밀을 인류는 선택했고, 그들을 보살피게 위해 더 이상 떠돌이 생활이 아니라 한 곳에 머물러야만 했다. 땀방울 가득한 여름의 고된 노동의 대가로 가을이면 풍성한 낱알로 보답했다. 더 이상 고기는 잡지 않고 키워 먹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먹을 게 풍부해진 인간은 예전보다 걱정이 줄었고, 이에 반대로 인구는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축은 고기만 준 것이 아니었다. 전에 없는 뜻밖의 질병을 안겨다 준 것이다. 소는 천연두 개는 홍역 돼지는 인플레엔자 물소는 나병 등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질병들이 바로 우리가 즐겨 먹는 고기에서 온 것이다. 이제부터는 소고기를 구워 먹을 때 는 마블링이 아닌 천연두를 생각하면서 먹게 될 것이다.
또한 농사를 지으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질병을 얻게 된다. 특히 관개 시설의 발달로 인해 디스토마에 시달리게 된다. 디스토마는 발육과정을 통해 숙주를 바꿔타는 기생충인데 유충에는 달팽이 성충이 되면 민물고기 등에 살다가 인간의 폐나 간으로 파고들어가 살게 된다. 관개 시설이 대규모 발달했던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문명시절부터 존재 해 왔고 지금까지도 수 천만 명이 이러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민물고기 회를 잘 먹지 않는 것이다. 또한 경작지를 늘리기 위해 숲을 벌목하고 화전 농업을 시작하게 되자 모기의 서식지도 같이 넓혀준 꼴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귓가에 윙윙 소리를 내며 밤잠을 설치게 하는 귀여운 수준의 모기가 아니다. 모기 때문에 2 만명의 노동자가 죽어 주인이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바뀐 파나마 운하 사건도 있었다. 아직도 아프리카의 수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범인이 이 바로 모기다.
요약하면 농경과 목축은 정착생활과 많은 인구를 가져 다 주었고, 이는 문명이라는 결실을 이루게 해주었다. 사람을 살리는 쌀과 고기의 대가가 전염병이라니 참 아이러니다.
ep2. 교류가 낳은 비극 #흑사병
보통 친구들 간 약속을 정하면 누구나 알만한 곳에서 잡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장소 역 앞이나 터미널 근처는 언제나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고, 먹을 거 볼거리가 넘친다. 사람이 모여든 만큼 임대료도 비싸고, 누구나 역세권에 스타벅스 딸린 상가를 꿈꾼다. 하물며 국회의원 선거 구호가 분당선을 끌고 오겠다니, 터널을 뚫겠다니 하는 거 보면 굳이 역사 속에 찾지 않아도 교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다. 하물며 주차장이 좁은 식당은 장사도 안 된다. 재래시장이 아무리 싸게 팔아도 사람들은 마트에 가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그만큼 넓은 도로와 식량, 주거시설, 편의시설, 모든 게 받쳐줘야만 하고 이는 반드시 부로 연결되기 때문에 사람을 모이게 하는 가게, 기업, 나라는 언제나 흥할 수밖에 없다.
이에 성공했던 나라들은 역사에 굵직한 이름을 남겼고,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다. 바로 찬란한 로마제국이 있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명언을 남겼고, 전쟁을 통해 지중해 상권을 독점했던 로마는 지금도 존재하는 도로를 8만키로 가까이 깔았다. 흔히, 도로를 깔아서 변방의 적이 반란할시 진압하기 위한 군대의 진입로로 생각하기 쉬운데, 로마가 전성기를 누렸던 것 오히려 그 반대다. 로마에게 정복당한 속주들은 분노로 로마에 처 들어 갔지만 수준 높은 문화와 세련된 스타일에 이내 매료되었고, 오히려 로마의 것을 가지고 속주로 돌아가곤 했다. 마치 서울사람은 깍쟁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상경했다가, 63빌딩과 한강에서의 치맥, 그리고 지방에 없는 서울만의 세련된 스타일에 매료된 20살의 나처럼 말이다. 이렇듯 길을 지배하는 자는 단순히 물류와 교통 뿐 아니라 사람들의 문화까지 정복 할 수 있다. 괜히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서울말인 것이 아니다.
필자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그 서울 것들의 도시적인 느낌! 한 순간에 촌놈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게 2000년 전 로마의 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은 언제나 사람이 많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 서울이라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만큼 식량은 모자라고, 주거환경을 형편없었다. 이틈을 노리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천연두다. 인도 어느 한 지역에서 발생한 질병은 길은 따라 최종 목적지인 로마로 왔고, 로마의 1/4을 지워버렸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하루아침에 지워버렸다.
로마와 비슷하게 세계의 길을 하나로 만들었던 나라 바로 몽골이 있다. 그 유명한 실크로드를 따라서 동서양의 길을 하나로 엮어 냈으며, 우리나라가 조선이 아닌 코리아로 불리게 된 이유로 이 길을 따라서 이름이 건너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몽골은 길은 닦았고, 이 길을 따라서 질병도 옮겨갔다. 그 유명한 흑사병이다. 전 유럽의 인구를 1/3을 지워버린 무서운 흑사병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갔고, 불안하고 흉흉한 민심은 그 시대 가장 힘없고 만만한 상대에게 향했다. “마녀사냥”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사건은 유대인이나 이민자, 혹은 장애인, 여자들에게 향했고, 이럼으로써 정치인들은 체재를 유지하고, 일반 사람들은 남 탓으로 분노를 표출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어쩌면 가장 인간의 본심을 보여주는 게 전염병이 아닐까 쉽다. 영화 “부산행”에서 사람들이 살기위해 달려오는 공유와 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뉴스에서 이 시국에 마스크를 사재기해서 폭리를 취하는 업자들과 우연히 걸린 확진자에게 여과 없는 비난과 악플을 보내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면 영화가 그리 과장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흑사병은 아이러니 하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냈다. 무슨 말인고 아니, 평생 죽어라 농사짓는 노예인 농노가 다 죽어 버린게 아닌가? 그 동안 감자 몇 보따리면 순순하게 일했던 농노들이 사라지고 “돌쇠” 혼자만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돌쇠는 감자 따위로는 일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니 글쎄, 이놈이 주인님만 먹는 닭고기를 요구 하는 게 아닌가? 괘씸하고 건방졌지만 주인은 돌쇠에게 닭고기를 양보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 평생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어 직접 할 수도 없고, 돌쇠가 밭을 갈지 않으면 1년 농사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 건방진 돌쇠들이 점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치솟는 몸값을 감당할 수 없는 영세 지주들은 몰락했고, 더 이상 돌쇠에게 반말이나 하대를 할 수 없었다. 삐지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몇몇 지주들은 농노들을 풀어 줄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돌쇠는 처음으로 동네 밖을 여행 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의 발걸음은 당당했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마음이 부풀었다. 하지만 설레임도 잠시, 생각해보니 돌쇠는 땅도 없고, 돈도 없지 않은가? 해방되었다고 하니 먹고 살게 없어진 돌쇠는 이내 불안하기 시작했다. 마치 회사 때려 치고 나가서 사업하면 부자가 될 것 만 같았는데 망하는 것처럼 역시 예나지금이나 만만하지 않은 게 인생인가 보다. 몇몇 돌쇠들은 높아진 몸값에 만족하고 농노의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야심이 많은 제이티는 저기 건너 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들리는 소문에는 콜럼버스란 사람이 바다 건너 새로운 땅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방법 뿐이었다. 이것은 마치 모든 사람이 천국에는 가고 싶지만 일부러 천국가려고 죽기는 싫은 것처럼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하늘을 나는 새가 자꾸만 유혹을 했다.
그리고 먼발치 메아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들려왔다
. “두려워 마라”
ep3. 콜럼버스의 비극 #천연두가 바꾼 세상
콜럼버스가 길을 열자, 이제 사람들은 지구는 둥글고 바다 건너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호기롭게 떠나는 잃을 것 없는 청년들과 신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혹은 저마다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신대륙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싫기 시작했다. 파도는 거칠고 정착지는 친절하지 만은 않았다. 때론 비바람과 맨살을 도려내는 추위와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도 함께 주었다. 그렇게 험란한 개척자들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인도라고 믿었던 신대륙은 이미 터주 대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잉카문명, 아즈텍, 마야 문명 등 많은 인구가 살고 있었으며, 수준 높은 건축물과 산꼭대기 위에 그들만의 왕국이 있었다. 건너온 우리의 군대는 고작 200여명 거기에 식량도 모자라고, 모든 보급품은 부족했다. 적은 8만이 넘는 대군에 홈그라운드라는 이점이 있지 않은가? 어떻게 스페인은 원주민들을 정복했을까? 총? 쇠? 바로 “천연두” 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원주민들이 전쟁은커녕 차례로 투항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얼굴과 몸에 빨간 반점이 피어오르고, 많은 사람들이 고열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손쉽게 스페인은 잉카 마야문명을 접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왜 원주민만 질병에 걸렸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면역력이 없었다. 면역력이라 하면, 내성이 생기고 항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신대륙에는 대형 초식동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생아 같은 원주민은 그렇게 총이 아니라 바이러스에 쉽게 죽어나갔다. 한 가지 의문은 왜 신대륙에는 대형초식동물이 없었을까? 왜 가축이 없었을까? 간단하다. 가축도 먹을 풀이 있어야 살지 않겠는가? 그 먹을 풀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알맞은 기후와 토양이 있어야 풀도 자랄 수 가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실력이 없거나 미개해서 유럽문명에게 당한 게 아니다.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다.
원주민들은 100년 만에 4프로만 살아남았고, 이제 그 넓은 땅은 주인 없는 땅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던 날 야심가 제이티에게 뜻밖의 선물이 찾아왔다. 바로 금은 광산이 발견된 것이다. 로또가 터졌다. 금화은화가 땅만 파는데 마구 쏟아지지 않는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던데, 평생 농사짓는 노예로만 살다가 목숨 걸고 바다를 건너 살아남았고, 원주민과의 전쟁에서도 살아남았더니 이러한 행운이 찾아 왔다. 신대륙에 광산이 터졌다는 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미친 듯이 광산을 파기 시작했다. 당시 세계의 화폐가 은화였기 때문에 이는 땅에서 돈을 줍는거나 다름이 없었다. 막대한 양의 은은 유럽으로 흘러들어 가기 시작했고, 넘치는 화폐는 상공업의 발달을 가져왔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장사와 무역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제이티는 더 이상 농노도 아니고, 떠돌이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었다.
어느새 제이티 컴퍼니라는 회사의 사장이 되었고 무역과 금융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쥐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나를 부르주아라 불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캐슬에서 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디 사냐고 물어봐서 “저는 캐슬에서 살아요” 하고 대답을 했더니 부르주아라 불리어졌다. 막상 돈을 벌어보니, 맛있는 것 좋은 거 다 해봤는데, 허전함과 공허함이 이내 몰려오기 시작했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행복 할 줄 알았는데 아직 채워지지 않는 1프로의 허전함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가 하고 고개를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니 떠올랐다. 그동안 못했던 것 신분이 낮아서 할 수 없었던 것 억울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공부였다.
공부를 하다 보니 세상을 보는 게 달라졌다. 그동안 신의 뜻이라고 말했던 성직자와 왕의 말은 도저히 성경에서 찾을 수 없었고, 왕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데 어째서 신과 같은 능력은 없고, 왜 나같은 상인들에게서 세금만 뜯을까? 이런 저런 의문들이 드는 밤 누군가 찾아왔다. 로크라는 사람이었다. 아 글쎄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고 신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라고 애기하지 않는가?
태어났을 때부터 우린 평등했다. 그런데 왕과 귀족들이 마음대로 우리의 권리를 누르고 호위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처음에는 이상하고 과격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점점 그의 분명한 눈빛과 호기 있는 목소리가 기억에 남았다. 또 다음날에는 루소라는 사람도 찾아와서 비슷한 말을 했다.
사람은 평등하다니, 권리라니, 세금이라니, 자유라니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점점 듣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사건이 터졌다. 또 우리들에게만 세금을 걷는다 하지 않는가? 무슨 호구도 아니고, 틈만 나면 왕은 전쟁놀이하고, 그 비용은 우리에게 청구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준 것도 없고, 정작 의회에서는 한 자리도 없지 않는가? 얼마 전 찾아온 로크와 루소 친구들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더 이상을 참을 수 가 없어 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왔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 성난 군중들과 함께 광장 가운데로 달려갔다. 처참한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얼마 전까지 세금을 뜯어가는 왕의 얼굴이 단두대 아래 있지 않은가? 왕은 신이 아니었다. 똑같이 두려움에 떨었으며, 신성한 기운을 느낄 수 없는 탁한 피만 뿜어져 나왔다.
흑사병을 거쳐 농노에서 해방되고, 바다를 건너 신대륙에 건너가 전염병으로 전쟁을 이기고 났더니, 뜻밖의 광산 발견으로 부를 거머쥐었다. 거기에 글을 알고 책을 읽으니 새로운 세상이 보였고, 전에 살았던 세상이 당연한 게 당연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에는 혁명으로 이어져 왕이 없는 세상이 열렸다. 전염병이 없었다면 이러한 역사가 발생했을까?
사람을 죽이고 또 세상을 변화시킨 전염병
ep4.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역사의 큰 변환점 에는 항상 전염병이 있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다시 아무런 일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일상을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시 올 바이러스에 대해 대비 하는 게 맞을까?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순 없지만 분명한건 예전과 같을 순 없다는 것이다. 예전의 평범하다고 느꼈던 일상이 이제 특별한 것이 될 확률이 높다. 이제 마스크와 손소독제는 필수가 되었고, 대면접촉보다는 비대면 접촉이 일상화가 되었다. 나가서 사먹는 경우보다 집에서 배달시키는 것이 자연스럽고, 심지어 배달기사 얼굴도 보지 않고 문 앞에 두고 가라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는 코로나 이후에도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사람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백신이 나올 것이고 코로나 사태는 끝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길거리의 마스크 쓰고 있는 얼굴이 익숙하고, 왠지 모르는 사람과 악수하는 것도 꺼려진다. 이제는 괜찮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앞으로 인간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이미 sns 상 온라인으로 관계를 맺는 게 편한 것이 우리 아이들이다. 하지만 sns 친구들은 나에게 좋아요를 누를 순 있지만 내가 무슨 샴푸를 쓰는지 알 수 없다.
함께 땀 흘리고 노는 친구들이 어쩌면 무증상 감염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제 그 친구와는 놀 수가 없다. 바로 이게 진정한 바이러스다. 솔직히 나는 마스크를 쓰고 싶지 않고, 쓴다고 해서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밖에 외출 할 때는 어느새 필수품처럼 써야만 한다. 왜냐하면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기 때문이다.
과연 코로나 사태가 끝난 후 우린 진정한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