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by 제이티

“갈수록 에세이가 많이 팔린다.

무겁지 않아서 가볍게 읽을 수 있어서라고 하는데

사람들의 대화를 잃어버려서인 것 같다.” - 이 미로의 끝은 행복일 거야-


많은 에세이 작가가 ‘자신과 대화’를 위해 펜을 든다. 누구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공감하지 못하거나 무시할 것 같아서 혹은 그냥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내 안의 내면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마음먹는다. 내면 아이는 어린 시절에 경험한 정서적 기억으로 어른이 된 이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심리적인 불안이나 우울감, 강박적인 생각이 들 때 그 뿌리를 거슬러 오르다 보면 어린 시절에 그것과 관련된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고 한다. 가령 무시당하는 순간을 유독 못 참거나, 외모에 남들보다 강박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스스로 발견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대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다 보면 예전 기억이 하나 둘 떠오르면서 내면 아이를 찾아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라는 대화 상대를 마주하게 되고 조금씩 회복의 방법을 찾게 된다.


나를 ‘나’를 잘 알고 있을까? 자소서라는 것은 자기를 소개한다는 글인데, 문제는 정작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잘 알기는커녕 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알면 그것의 나의 모습일까? 무엇에 돈을 쓰는지 어떤 영상을 자주 보는지 알고리즘을 분석하면 나를 더 잘 알 수 있을까? 보이는 모습은 단순히 드러난 결과 일뿐 그 안에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나약하고 상처 입은 모습이 존재한다. 너무 부끄러워서 나조차도 꺼내기 싫은 기억은 바로바로 꺼낼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애써 무시하거나 덮는다. 문제는 영원히 덮어지거나 사라지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대화’라고 한다. 차 안에 타고 있는 나는 차의 모습을 볼 수 있듯이 누군가가 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갈수록 기계가 대화를 줄여주는 것을 넘어 방해하는 듯하다.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연예인 이야기와 주식 부동산 이야기 말고 자기 사는 이야기를 얼마나 하고 살까? 키오스크는 심지어 사람의 눈을 마주치는 기회조차 앗아갔다. 이별과 사랑도 카톡으로 하는 세상에서 점점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게 된다. 어른이 되고 난 이후부터는 아무에게도 말을 걸 수 없는 상황이 종종 찾아온다. 돌아오는 말이 비슷해서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말을 아끼게 된다. 걱정할까 봐 혹은 괜한 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전해질까봐 죄책감에 말이다. 익명의 커뮤니티에 나를 숨기고 올린 고민을 털어나 봤자 그들 역시 나를 모르고 나도 그들을 모르기 때문에 공허함이 더 찾아온다. Sns친구는 좋은 곳에 갈 때나 자랑하는 친구쯤 되니깐 말이다. 그래서 결국 돌고 돌아 찾은 대화 상대는 바로 ‘나’다.


그래서 나를 알기 위해서 글을 쓴다. 오해도 이해도 배려도 눈치도 필요 없는 시간이 글을 쓰는 시간이 아닌가 한다. 나도 모르는 생각과 마음속에 눌러 놓았던 감정이 글자로 튀어 오르는 것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알게 돼서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매일 놀랍다.


자기소개가 아니라 나에게 ‘나’를 소개해 주고 싶어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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