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원
오늘도 여전히 비싼 자전거 한 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 들어가 등받이 쿠션의자에 앉는다. 재미도 없는 책을 하나 집고, 또 같은 루틴으로 책을 읽는다. 남들은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재미있어서’ 라던가, ‘새로운 취미라서’ 라고 생각들 하고 있겠지만, 나는 정 반대로 그냥 그저 ‘일’ 때문에, 혹은 ‘나의 역할‘ 이기 때문에 숙명을 다하는 것이다. 나는 책의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같은 식상한 생각따위를 하며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물론 사람들은 이렇게 읽을 것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말이다. 나는 이 내용으로 얼마만큼의 수업 자료를 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일벌레가 되어버린 체 오늘도 만족도를 끌어들일 만한 수업을 준비한다.
수업은 시작되었고, 오늘은 어쩐지 부족해보였다. 늘 드는 생각이긴 했지만 역시나 어딘가 부족해보였고, 아쉬웠다. 그 생각을 들게 만든 건 다름아닌 화면이 아닌 바닥을 응시하는 학생이었고, 그 학생 때문에 괜히 내 수업이 그렇게 재미가 없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런 학생만 없다면 1타 강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강아지와 함께 수업을 종료한다.
1타 강사가 꿈인 나는 미친 듯이 글이며 책이며 끝이 없이 읽고 써내려 갔다. 안 읽은 책을 찾기 더 힘들 정도로, 그리고 닳아버린 연필 수를 세는 게 더 힘들 정도로 말이다. 뭐 요즘은 하도 기술이 발달되어 연필을 쓸 일은 줄어들었지만, 그 일이 사라졌다고 해도 아이패드 속에 담겨있는 2000개가 넘을지도 모르는 메모와, 계속해서 줄어드는 배터리를 충전하는 횟수는 그것보다 더 했다.
사실 나는 이 수업이 굉장히 값지다고 생각했었다. 이 만한 노력이 들어간 수업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2L 짜리 생수를 옆에 놓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물론, 목이 마를 때 굳이 거실로 나가서 물을 꺼내는 것이 귀찮기 때문도 있고, 물 컵에 물을 따라야 한다는 귀찮음 때문도, 그 물컵을 다시 싱크대에 놓고 다시 습기가 가득한 고무장갑을 껴야 한다는 것이 싫기 때문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는 1타강사가 되기 위한 다짐이 아니었다. 나의 열정을 보여줄 수 있을 만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수업을 하느라 목소리를 크게 내면 목이 간지럽고 아파오며, 그것을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바로 물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이 바로 진정한 이유였다. 이런 열정으로 만들어진 수업이 왜 유명해지지 않은 걸까. 이 노력만 알아준다면 나는 어쩌면 1타강사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수업이 끝나고 말 그대로 사랑하는 강아지와 산책을 하러 나갔다. 산책을 나가자는 눈빛이 너무 간절해보여서 수업을 하는 내내 나 또한 빨리 수업을 끝내기를 기도했다. 그 만큼 주인이나 강아지나 간절했던 산책이 너무 좋았다. 나는 밤이 너무나도 좋다. 솔솔 불어오는 새벽 바람이 코 속으로 들어오면 어느새 뇌이며 나며 밤 공기에 심취해 있었다.
여전히 도시는 전기로 빛나 하늘의 별을 가리게 되고 그 탓에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마치 태양 대신 전기가 떠 있는 오전에 산책하는 느낌이 물씬 났다.
슬리퍼와 면 티를 입고 같은 산책로로 들어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은 빛나고 있었고, 깜깜한 밤이라면 눈이 아프도록 밝아보였을 화면이 이제는 아침에 보는 화면처럼 밝아보이지 않았다.
그 화면에는 어떤 한 제자의 문자였다.
“1타 강사 되셨네요. 축하축하해요.“
시간은 멈추었고, 신호등은 초록색이 깜박이고 있었지만 나는 멈춰져있다. 1타강사라고? 내가 계속 달려온 이유인 그것? 내가?
나는 강아지가 본 대변도 정리하지 않은 채 곧바로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강아지를 품에 안고 함께 이 감정을 나눴다. 과연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었기를 바랬다. 내 노력과 열정을 인정받은 날이고, 일벌레가 되어버려 얻은 고통들에 대해, 그것을 버틴 나에게 고마울 따름이었으니 말이다.
오늘은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전에는 불안해서 잠에 들지 못했다면 이번은 다르게 설레서 잠에 들지 못했다. 드디어 설민석이 될 수 있는 거구나. 나도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수 있구나. 드디어 눈을 감고 밝은 전기불만 보다가 오랜만에 또 어두운 바탕을 바라보며 잠에 들었다.
그 일이 지나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오늘도 별 일 없이 일어났다. 돈의 욕망에 찌든 여자들의 연락은 시도때도 없고, 집 앞까지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역시 세상은 너무 뻔하다. 그래서 재미도 없고 말이다. 그래도 돈 버는 건 그나마 삶의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도 얼마 안가서 흥미를 잃을 테지만 말이다. 자전거도 살 만큼 다 샀고, 옷이며, 신발이며 전부 이제는 없는 걸 찾는 게 더 힘들 것이다.
오늘도 뭐 별 다를 것 없이 수업을 만들고 수업을 했다. 달라진 건 나도 아니었고, 내 열정도, 내 태도도 아니었다. 옆에 늘 있던 생수병 2L도 여전했다. 달라진 건 학생이었다. 돈 많은 서울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들어오니 원래 있던 학생들은 점점 사라져갔고, 돈은 들어왔지만 아이디어는 빠져나갔다. 학생들의 글과 생각이 쓸 만 하면 좋겠지만, 틀어박힌 지식들만 가지고 앉아있으니 그런 생각들은 필요하지도 않았다. 또 내 수업에 반박하고나 있고, 도저히 자기가 이길 승산이 안 보이면 별점 1개를 툭 던져주고 있다.
사실 인생이 재밌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삶의 질이 더 나빠지고 있었다. 강아지랑 있을 시간은 줄어들고, 내 피로는 늘어나고. 참 인생이 잘 돌아가는 것 같다. 차라리 옛날에 내가 싫어했던 학생과 수업을 하고 싶을 정도로 그 수업은 갑갑했고, 그 누구보다 잔인했다. 그냥 힘들 때 포기하는 게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다 버텨버렸는데 어떡하겠는가.
오늘은 어떤 한 생방송에 나가야 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뻣뻣한 정장을 입고, 현관을 열기 전 강아지를 안는 대신 한 번 쓰다듬는다. 정장에 털이 묻으면 또 뭐라고 한 소리 들으니까 말이다. 아, 그런데 요즘 강아지 상태가 영 별로이다. 음식을 거부하고, 원래는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뭐 원래 저러니까 괜찮겠지.’ ‘이제는 늙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걸 신경 쓸 시간이 없는 나는 비싼 시계를 한 번 쓱 보고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버린 코기는 곁에 주인이 없는체로 생을 마감했다. 죽기 직전의 증상을 알아채지 못한 정탄은 강아지를 걱정해서가 아닌 핸드폰을 두고 나온 탓에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도어락을 치고 문을 열었고, 나는 멈췄다. 앞에는 항상 밝에 맞이해주었던 코기가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자는 걸 꺼야. 그럴거야. 설마 죽었겠어.
하지만 다가가서 만져보니 이미 시체는 식어있었다. 한 번도 늦어보지 못한 나는 그것도 생방송이었던 인터뷰를 늦어버렸다. 방송은 진행조차 되지 않았고, 나는 큰 우울감에 결국 회사와 계약을 끊었고, 울려대는 핸드폰은 신경쓰지 않겠다는 듯이 전원을 껐다.
우울한 감정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몇 번째 밤인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공허함만이 더 커지고 있다는 것만 느껴질 뿐, 그 무엇도 생각나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수업도 이제는 전부 그만 두었다. 일벌레라고 불릴 정도로 열심히 했던 글쓰기와 책읽기를 그만두니 삶의 질은 극도로 떨어졌다. 마치 눅눅하고 습한 지하수로에 있는 느낌이었다.
요즘은 몸 또한 너무 많이 무거워졌다. 등 뒤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뭐 옛날에 느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 오나보다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넘긴다. 인간이라면 가끔씩은 이러니까 말이다. 이렇게 오늘도 인간다운 삶을 지내려 노력한다. 일벌레가 아닌 인간처럼. 하지만 음식을 먹으려고 해도 배는 고픈데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들어 먹지 못한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화장실이라도 들어가 씻으려는데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철컥
느닷없는 소리에 나는 거실로 발길을 돌렸다.
“누구세요.“
하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사람이 질문하면 보통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가. 한 번 더 말해도 아무 대답이 없어 나는 더 다가갔다. 고요함이 돌았고, 혹시 시키지도 않은 택배인가 하며 더더더 현관 문으로 다가갔다. 그 때 뒤에서 드디어 문을 딸 준비를 마쳤다는 듯 현관문을 쾅 열었다. 한순간이었다. 나는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벽에 몸을 부딫히고, 끈적끈적한 액체를 벽에 뭍히며 바닥으로 서서히 흘러내렸다. 등껍질이 깨진 채로 바닥에 쓰러져있었지만 얇은 다리들은 끝까지 일어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바퀴벌레가 왜 이렇게 징그러워?“
이게 내가 들은 마지막 말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정신을 잃어갔기 때문에 못 알아들었던 것이어야 한다. 왜냐면 같은 인간이니까 말이다. 나는 바퀴벌레 따위가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