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순수함을 잃은
백지원
나는 살인을 해본 적도 없으며 누군가와 오랫동안 사랑을 나눠본 적도 없다. 이런 욕구를 채워주는 대중문화는 나에 대한 감정들과 느낌을 새롭고, 때로는 달콤하게 만들어준다. 항상 같은 주제와, 같은 의도로 내게 나타나지만 한정적인 감정들이라도 느끼고 싶어 하는 나는, 아니 어쩌면 전 세계 인구는 늘 목적이 한 가지인 대중문화를 바라본다.
사실 내가 본 영화는 헛웃음이 새어나올 정도로 현실성이 없었다. 영화관 좌석에 앉아 의자 높이를 조정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뭐가 그리 신이 난 건지 웃고 있었으며, 고작 물과 불이 만나 사랑을 이루는 것에 훌쩍훌쩍 눈물을 흘렸다. 원소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관객들이 의아해했다. 현실성도 없는 영화에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소비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영화에 감동하는 대중들은 서로서로 모이고, 하나가 된 채로 돌아온다. 누가 죽거나 죽이는 영화도 다름없다. 범죄도시 3는 폭력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걸러야 하는 장면이 존재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누적 관객 수가 1062만 명이 되어있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자유로워진 대한민국에서 자극적인 영화는 관객들에게 아주 빠르게 재미와 자극, 쾌락을 전달하고, 그렇게 영화에서 일어나는 살인 혹은 죽음은 꼭 있어야 하는 장면이 되어버렸다. 그런 장면이 없다면 수익이 나지 않아 관객 수가 천 명 조차 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문화 산업에게 외면 받는 영화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가끔 궁금하다. 내가 어렸을 때, 혹은 2000년이 되지 않았을 때도 우리 문화예술은 순수한 영화들로 어린이뿐만 아니라, 삶의 고독함을 뱉게 하는 담배를 무는 어른들도 전부 동심으로 돌아갈 만한 영화를 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둡고, 잔인한 것이 더 돈이 된다는 듯이 옛날을 무시하듯 살인, 서바이벌을 주제로 제작하여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다. 왜 그런 것들이 많이 팔리게 되는 걸까. 이런 것들이 문화예술에 영향을 끼치면 이렇게 자극적인 것들만 영화 추천에 뜰 텐데 말이다.
오산 중학교 정보 선생님의 어머니는 된장찌개에 청양고추를 넣어 드신다고 한다. 나는 참 청양고추가 싫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도 못하고, 중독되긴 하지만 너무 큰 자극이 오는 탓에 다른 매운 것들 말고 청양고추보다 매운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내 피부는 맵거나 자극적인 것을 먹으면 금방 더러워진다. 그래서 더 매운 걸 원하게 되는 건 나에게 불이득이었다. 선생님의 어머니께서는 청양고추를 넣으면 넣어갈수록 양을 늘려갔다고 한다. 선생님은 당연히 쉽게 드실 수 없으셨고, 그럼에도 청양고추의 양은 줄어들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듯이 자극적인 것에 닿으면 그것에 재미가 붙고, 이제는 그것보다 더한 자극을 원하는 것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 관객들은 끈적끈적한 피가 튀기든, 하얗게 변해버린 시체가 불태워지든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살인자 역을 하는 배우가 살인을 했을 때, ‘잔인하다.’ 라는 평보다 ‘연기 잘한다.’ 라는 평으로 잔인함을 덮는 것 또한 예술문화의 변화 때문에 생긴 오류 아닐까.
어쩌면 뜬금없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예쁜 손 글씨라는 동아리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글씨 크기는 되도록 크게 쓰세요. 크기가 크면 나중에 줄일 수 있지만, 크기가 작으면 점점 더 작아지게 될 뿐만 아니라 커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라고 하셨다. 내 글씨는 점점 작아졌다. 칠판에 글씨를 적을 때도 내 기준에서는 가장 크게 썼다고 하더라도 뒤에 앉아있는 친구들은 글씨를 읽기 힘들어했다. 크기는 커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내 글씨 크기는 점점 더 작아지고, 더 작아져 나조차도 읽기 힘들 정도가 되어버렸다.
우리의 자극적인 영화들은 더 이상 순수해질 수가 없다. 잔인하거나 잔혹한 것들만 머릿속에 담아왔는데 어떻게 순수하고 동심 가득한 영화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을까. 순수한 영화는 꾹꾹 눌러써 봐도 자극적인 영화 또한 제작할 수 있지만 자극적인 것들을 손으로 꾹꾹 눌러쓰면 순수함은 내 기억에서 사라지게 된다. 마치 호랑이가 조련사에 의해 숲의 기억을 잃는 것처럼 말이다. 순수함을 잃어가는 우리는 숲의 기억을 잃어가는 호랑이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자극을 원하는 문화산업과, 보지 못한 것을 원하는 조련사에 의해서 비로소 그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기억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더 이상 된장 맛이 연하게 풀어져있는 된장찌개를 맛볼 수도, 맛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저 청양고추의 매운 맛으로 인해서 매콤해진 된장찌개만 맛볼 수도, 맛보고 싶어 한다. 이제 더 이상 된장찌개가 아닌데 된장찌개라고 불리는 그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