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

by 제이티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

박재영


1917년 12월 18일


우리는 지금 2주간의 휴식을 끝내고 전선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이번 교대는 아주 불안한데,

붉고 둥근 에담산 치즈가 나왔기 때문이다. 고참병 카친스키는 우리들에게 격전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해 주었지만, 나는 아무렴 좋다. 먹을 것이라곤 힌덴부르크 빵 밖에 없는 지금 같은 상황에 치즈가 나온다는 것은 아주 행운이다. 게다가 속 좁기로 유명한 취사병이 우리들을 숟가락으로 불러다가는 수통에 차와 럼주를 가득 섞어 주기도 했다. 럼주와 차를 7대 3으로 섞어주는 일은 늘 격전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조이기도 해, 나는 불안한 감정이 살살 부서지는 힌덴부르크 빵 조각처럼 스멀스멀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카친스키의 말을 생각해 보면 그의 말이 맞지 않을까? 나는 늘 습관처럼 새를 스케치한다. 꼭 저렇게 날아다니는 종달새를 그리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파울, 다 도착했어."


카치스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참호는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총을 집고, 권총대를 제대로 자비하며, 부서진 엄폐호에서 쓸만한 장비들을 찾는다. 콘크리트 엄폐호는 아주 훌륭한 놀이터다. 카드놀이를 할 수 있게 간의 침대 및 탁자가 있고, 적이 달려오면 언제든지 응사할 수 있게 총 안구 역시 나있다. 비롯 오늘 격전이 일어난다 해도, 나는 두렵지 않다. 어머니는 1916년 돌아가셨고, 동생은 지난달 공산당에 가입하고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 아버지가 재빨리 호적을 지우셨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우리까지 피해를 볼 뻔 했다.


갈 수록 스파르쿠스단 예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신문에서도 스파르쿠스단의 은행 테러, 공장 방화 등 다양한 일들이 나오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뭐한 지금, 지금 당장 프랑스군이 달려와 준다면 나는 오히려 고마울 것 같다.


밤이 찾아왔다. 포격이 시작됬다. 카친스키는 능숙하게 이것이 프랑스 놈들의 75mm 포격이라고 확신한다. 유산탄과 고폭탄을 섞어서 콩볶듯이 튀기지만 그들의 포탄은 대부분 무인지대에 낙하하거나, 아니면 불발탄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것 같다. 굳게 닫은 콘크리트 문 밖에서 쾅쾅 유산탄이 분리되는 소리가 들린다. 포격은 30분째 이어진다.


우리는 엄폐호에서 나온다. 알베르트는 누가 뭐랄까 바로 게베어 98 소총을 잡고는 몰려오는 프랑스군들을 향해 쏘기 시작한다. 나도 질세라 프랑스놈들을 향해 쏘고 있다.


나는 어느새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 순간이 좋다. 이 순간에는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투가 끝나고, 나에게는 끝없는 공허함이 찾아온다. 나는 분명 괴물도 아니었고, 야만적인 러시아의 코사크 기병대도 아니다. 사람을 죽여대는 정신병자는 물론 아니며, 평범한 독일인 파울 보이머일 뿐이다.


이 전투는 아주 격렬해서, 당신은 당신 아버지가 저들과 함께 푸른 군복을 입고 달려오고 있다해도 아버지의 가슴팍에 총알을 갈길 것이다. 우리는 기계다, 무의식 적으로 발사한다.


그림들이 날아오고, 포탄이 날아오고, 어느새 도망가는 적에게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며 공격하는 것은 우리들의 루틴이다. 전투가 시작될 때마다, 우리는 늘 이 과정을 도돌이표 많은 음악처럼 되풀이 한다. 12월 18일은 또 이렇게 끝나간다. 나는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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