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윤
요즘 집을 나가고 싶어서 미치겠다. 사춘기라 그런지 내 안에 꿈틀거리는 욕망의 변화를 알 것 같다. 나는 난민이..맞을까? 누구보다 남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살고 있었다. 다만 힘든 점이라면 "선택"이라는 것. 집을 나가고 싶다. 하지만 폭풍우가 온다면 당장이라도 이불 안에 숨어 벌벌 떨 것같은 하찮고도 하찮은 사람이다. 난민이란 국가를 잃은 사람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체제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는 사람도, 커피를 마시지만 밤새 일에 허덕여 사랑하는 가족을 못보는 사람도, 거울을 들추니 못생긴 나를 비난하는 사람도, 글쓰기의 세계에서만은 현실을 부정하는 난민이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사람도.
하염없이 침대 위에 누워 푹 꺼지기를 바라는 천장 위의 시선은 그저 나를 특별하게 만들기 보단 내 운명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라는 주장을 확실하게 만들어준다. 곧 싱가포르에 간다. 그곳에서 지내는 4박5일 동안 나는 내 프라혹을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만큼은 운명이라기보단 비가 올때 용기있게 물웅덩이를 밟아 감히 물을 튀기지 못하는 나의 인생을 걱정하며 한없이 작아지고 있을 뿐이다.
다시 사춘기 얘기로 넘어가자면, 자유를 찾아 용기있게 세상을 개척한다는 것은 용기있는 일이다. 누구나 말하는 뻔한 말이지만 그래도 인상깊었다. 연민이라는 단어로 벽을 하나 쌓는다면, 그 고통으로 승리를 차지하기 위해 올라간다. 모든 게 다 짜증난다. 글쓰기도 안돼면 짜증나고, 잠이 안오면 짜증나고, 그나마 행복할때는 밤에 갬성각도 잡으면서 글쓸때. 평범하고도 평범한 나의 삶의 거울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 보여도 상관없다. 지금 13년동안 마음만은 어린이인 삶을 살아왔고, 보송보송한 엄마아빠의 품으로 가기보단 차가운 바닷물에 잠길때가 되었다는 걸 부정하고 싶다. 불쌍한 것이 아니라 용기있는 것이고, 매일 아침 겪는 햇살과 비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는 노력을 했으니 주신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눈물을 흘려도 달라지는게 없다는 것은 안다. 사실 기다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나를 떠난다면 배가 잠기든 위로 떠오르든 바닷물의 짭짤한 소금 맛을 느낄 것이다. 난민들은 무지개를 이루지 못하고 결국 좁디좁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다시 먹구름이 끼이는 날은 언제일까? 언제 다시 우리에게 햇살이 올까? 난민들을 떠돌아다니는 것이라고 본다. 나도 그러니까. 갈 곳이 없어 창가를 하염없이 보면 광활한 바다가 내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푹신하면서도 딱딱한 침대에 누우면 그 눈물 한방울이 내 입에 스며들어 저절로 거울 앞으로 가게 한다. 어느날 난민, 거울 앞에 있는 나는 어디로 나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