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은 패전 후 일본인들에게 주어진 현실을 똑바로 이해할 수 있게 정확하게 부끄러워할 수 있게 하는 명확한 안내서였다. 어제까지 침략전쟁을 성전으로 옹호하고 덴노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 떠들어댔던 지도층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꾸었다. 민주주의 자유를 외치며 맥아더를 찬양하고 우리는 잘못이 없었고, 일부 군부들에게 속았다라며 거짓말을 할 때 다자이는 맨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모든 가치과 윤리가 뒤집혔을 때 다자이처럼 부끄러움을 아는 작가들이 그 시대의 청춘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했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유일하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면 ’ 인간실격‘은 왜 현대에 와서 재평가를 받고 많은 청춘들이 열광할까?
아무래도 요조에 대해 깊은 공감이 있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것을 싫다고 혹은 좋아하는 것을 좋다고 말 못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표현을 할 수 없는 무언의 ‘금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의 시선을 많이 보는 한국과 일본에서 더욱 사랑을 받는 이유가 이 점에 있다. 또한 빠르게 변화되는 시대에 무엇이 옳은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미래에 대한 불안이 현재를 좀 먹을 때 언젠가 나도 요조처럼 인간으로서 자격이 박탈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많은 독자들에게 심금을 울리는 듯하다.
세상에 적응을 실패한 요조. 그는 그렇게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다.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 광기의 기준은 그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을 의미했다. 일을 하지 않거나 동료에게 총을 쏜다거나, 자본주의 사회에 쇼핑을 하지 않는 즉, 사회에 만들어 놓은 틀에 맞지 않게 움직이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사람들을 ’ 광인‘으로 치켜세운다. 그렇다면 요조의 잘못은 무엇일까? 왜 그는 인간으로서 자격을 상실했을까? 생활에서는 무능력했고, 사회생활도 오로지 ’ 익살꾼‘이라는 가면을 쓴 채 아슬하게 이어왔다. 그렇다면 우리도 요조처럼 돈을 벌지 못하고 언젠가 가면이 벗겨질 때 인간의 자격이 상실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아주 분명하게.. 끝장나게..
남을 위해서 사는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은 모두에게 요조의 ’ 도깨비 자화상‘이 힘이 되기를 바란다. 나만의 길이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서 비합법이 되더라고 자유를 향한 순수함과 갈망은 그가 죽었지만 우리의 가슴에 언제나 함께 있다. 넙치와 호리키처럼 떳떳하지는 않지만 뻔뻔하게 사는 상식적인 우리에게 뼈 때리는 말로 귓가에 속삭인다.
’ 그건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이 그냥 두지 않아.‘
’ 세상이 아니야. 자네겠지.‘
’ 이제 곧 세상에서 매장당할 거야.‘
’ 세상이 아니라 자네가 나를 매장하는 거겠지.‘
인간이기에 나약하고 배신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음산한 그림을 요조가 제대로 그려주니까 말이다. 물론 그의 해결 방식 ’ 죽음‘이 절대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으나 철저한 자기반성과 무엇보다 부끄러움을 아는 그의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말이다. 적어도 남을 해치려는 마음 없이 자신을 해쳤던 그가 오히려 더 떳떳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죄인 아니 광인 아닌 폐인이 되었다.
그가 신에게 울부짖었듯이.
무저항은 죄가 되는 세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