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11개월
백지원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물고기를 잡았다. 여러 일들과, 목숨이 걸린 위기며,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치 나에게는 에버랜드의 놀이기구 같았다.
처음 타게 된 놀이기구 앞에서는 항상 우쭐한 친구의 손을 마주 잡고는 흔들게 되었다. 잘 못 되면 어떡하지, 너무 무서운데 같은 두려움이 뇌 속을 가득 채웠다. 난 꽉 차서 무거워지는 느낌이 너무 싫어서 가벼워지고 싶은 마음에 머리를 양 옆으로 흔들고 털었다. 마치 타기 싫다는 표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느낌은 ‘내가 만약 낚시를 할 때 창새치를 발견했다면’ 이라는 상상을 할 때 느끼는 것과 같았다. 죽음이 달린 지금 이 순간에 잡고 있을 낚싯대를 놓을지, 꽉 잡고 있을 지. 나 같았으면 놓았을 것이다. 믿음직 스러운 척 하는 친구의 손을 놓고 사람들 사이로 빠져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노인은 늙었다. 나는 젊고.
100의 중간인 50을 훌쩍 넘겨버린 노인은 남들의 예측과는 달리 낚시대를 더 꽉 잡고서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목숨을 손가락 위에 올려놓았다.
민속촌으로 현장체험학습을 다녀갔을 때, 머리가 희고, 주름이 이마에 자리잡은 모습이 한 눈에 띄는 분이 가장 무서워 보이는 놀이기구 한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그런 중년 남성을 바라본 나는 안전띠를 얼마나 꽉 잡고 있을 지 상상했다. 놀이기구가 하늘 위로 올라갈 때는 표정이 한 껏 겁난 표정으로 구겨지겠지? 라고 생각한 나는 그 중년 남성 분을 주시했다. 하지만 그 남성은 창새치와 싸우던 노인처럼 겁 하나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옆에 있던 친구와 나는 그 사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사람은 청새치보다, 놀이기구보다 더 거대한 인생의 어두움을 맛보고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노인은 드디어 사자가 되었다. 새끼 고양이가 아닌 사자. 먹잇감을 끝까지 물어서 사냥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인 노인을 본 나는 생각했다. 난 먹잇감과 가까워질 수록 두려움에 떨어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는 반면, 노인은 끝까지 기다려서 그 자리를 메우는 구나.
노인은 배울 점이 많고, 본 받을 점도 많다. 세월이 그걸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