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돈보다도 행복보다도 원했던 단 한가지 소원
정서윤
오늘도 개떡같이 살았던 나에게 6교시가 찾아왔습니다. 오늘도 난 글짓기 대회 상을 받았습니다. 정확히는 시상식에 오라는 소식이였죠. 똑같은 그 5초의 박수시간과 전해주는 손길까지. 모든 건 나만 빼고 전부 다 똑같은 화살표였습니다.
가끔 어렸을때 "죽고 싶다" 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습니다. 물론 진짜였고, 어린 시절 사소한 습관들을 어루만지듯이 진짜 죽으라는 엄마 옆에서 왜 그려나고 펑펑 울던 지가 언제인지. 언젠가는 이런 생각이 사라지겠지 하며 순식간에 2년을 보냈습니다. 13살이고 앞으로의 중학교 시절을 맞이한 지금, 친구관계에 위기가 왔습니다. 그 친구는 정석이었습니다. 언제나 친해지는 나의 루틴은 똑같았고, 그렇게 해서 사귄 친구들은 전부 다 가식이었습니다. 그냥 학교에서 같이 다닐 정도로만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 방법은 처음에 먼저 타이밍을 보는 것이였죠. 그 친구와 친해지면서 우리의 관계는 조금씩 플러스가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그 친구는 나의 감정을 조금씩 없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급속도로 흘러가던 그 친구가 했던 말과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제 머리를 스쳐서 밤새 이야기하며 울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더 이상 아파지고 싶지도, 더 이상 무엇도 가져가지 말고, 더 이상 무엇도 주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우유 한잔도 맛있었던 그날은 유독 짠맛이 났습니다.
그 친구를 위해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도 아까웠고, 더이상 나는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친구를 잃고, 그로써 흘리는 눈물이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 것 같아 싫었습니다. 뭐만 하면 눈물만 나온다고 조금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는 사람들의 말에 나는 그들이 가고난 후 화장실에서 채도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들키기 싫고, 괜찮게 보이기 위해 세수하는 척 물을 틀어놓고 울었습니다. 항상 화장실에 가면, 울어서 빨개진 눈을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세수도 해보고, 나에게 이야기를 시도했지만, 마이너스가 된 저의 관계는 죽고 싶을 정도로 불편했습니다. 6년간 약 20명 정도의 친구를 잃으면서 느꼈던건, 아직까지 나는 많이 나약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제 마음이 강해졌다 생각해도, 인생에는 변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이 겪어본 사람도, 항상 웃던 사람도 언젠가는 나약한 것을요.
친구에게 줄 생일 선물과 편지를 쓸려고 편지지를 찾는데 문득 한 종이가 있었습니다. 제가 산타에게 쓴 편지였죠. 문득 그때는 이러지 않았는데라는 생각으로 회상에 잠기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지키고 싶었던 저의 동심은. 실날같이 있어도 나와 너를 이루어지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그 동심이라는 이름의 실은 친구관계로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엄마 아빠에게 얘기를 많이 청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세상은 엄마 아빠를 "그냥 네가 예민한 것이겠지 가서 공부해"라는 거짓말로 뒤집어씌우지 않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알다시피 제 눈물을 옆에서 지켜봐주었던 사람도 엄마 아빠였고, 누구보다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피터팬같은 존재였습니다. 물론 어제이지만요.
이렇게 동심이 깨진지도 오래이고, 친구관계는 나의 선택으로 좌지우지 된다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엄마 아빠도 나의 친구관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에 우려스러움을 느꼈겠지만, 아직 13살인, 누가보기엔 어른스럽지만 속으로는 아직 나약한 저는 "모든 게 다 괜찮아지겠지 하며 진정되지도 않은 마음을 누르며 이불 안에 누워 할머니와 온기를 공유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자살을 하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었을까요. 이번 친구관계를 겪으며 저는 왜 사는지를 모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이유는 그저 잠을 자는 이불 속이 따뜻해서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소가 가득한 표정으로 돌을 차며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갔다가 집에오는 코스는 니체에게 반감이 들 정도로 맞는 말이라서 조용해질 수 밖엔 없었습니다.
단순히 제가 친구운이 없는게 아닙니다. 주변사람의 시선을 불편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한번만이라도 좋은 친구를 사귀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