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살하지 않는가 -이방인 서평

by 제이티


무관심 무심 아무런 의미가 없음. 이방인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음을 그리고 누군가가 특정한 소수가 만든 시스템에 불과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두 차례 전쟁이 스치고 간 유럽에서는 인간의 존재와 이 합리적인 문명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동물보다 더 나은 ‘이성’을 가진 존재가 어떻게 감정도 없고 합리적으로 그렇게나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보다 더 나은 세상을 약속하고 착하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말하는 이성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하나의 망상인지 절실히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왜 자살을 하지 않고 의미도 없는 인생을 왜 살아가야 할까?


부조리는 매우 익숙한 느낌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성적인 인간은 원칙을 만들어 세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인과관계는 눈앞에 재앙을 이해시켜주지 못한다. 전쟁의 포화와 자연재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미 일어난 일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카뮈는 인간이 세상의 침묵과 대면할 때 모든 일이 순전히 우연에 지나지 않음을 의식할 때 안도감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이 세계를 이성으로 길들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만 세계는 결코 인간의 이성적 요구를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이성은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던지지만 그러한 질문은 파고들수록 공허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살하지 않는가?


삶은 무의미한데 어떠한 희망도 믿음도 없는 세상에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인간은 살아가야 할까? 그런데 카뮈는 자살은 현실도피이자 해결책이 아니라 말한다. 그렇다고 종교에 귀의하는 것 또한 이 세계를 단절하고 내세를 꿈꾸는 헛된 희망이라 말한다. 자살도 종교도 부조리의 해결책이 아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삶이 가치가 없고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의미라는 문제를 대면한다. 시지프 신화처럼 우리는 매일 의미 없는 돌을 끌어올리는 반복 속에서 살아간다. 신이 부여한 운명과 돌을 밀어 올리는 형벌의 의미를 비웃으며 그 안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순간의 의미를 찾아낸다.


진정 무의미함을 정면으로 응시할 때 비로소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패배하도록 만들어진 게 아니듯이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뼈만 남은 청새치를 포기할 수 없듯이 말이다.


세상은 무의미하니까 그만 살라는 말이 아니다. 부조리의 본질을 이해할 때 세상 만물의 특별함이 없다고 느껴보자. 그러면 무엇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자들의 입을 막을 수 있는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세상에 원래 정해진 것이 없고 의미가 없다면 모두가 똑같이 걸어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안감과 절망이 몰려오지만,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또 하나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즉 나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진리를 말하고 선을 말하는 자들은 그럴만한 위치에 올라앉아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는 것을 나눠 놓았다.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문명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그것이 자본주의든 종교든 사회주의든 권위든 그 합법의 테두리를 정면으로 망치를 들고 때려 부순다. 이게 바로 무심함과 무관심의 힘이다.


누구든 죽음이라는 마지막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모든 규범은 이제 흩어진다. 외부에서 주어진 모든 가치에 무심한 태도를 취하는 뫼르소는 진정으로 자유를 얻고 자기의 삶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바로 반항하는 태도로 말이다.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삶에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죽음에 대한 확신이 인간을 사형수로 만든다. 사형수는 죽음과 정대 면함으로써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죽음은 어차피 올 수밖에 없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다가오는 우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거울이다. 삶과 죽음은 분리되지 않고 함께 가는 동전의 양면이다. 죽음 때문에 삶은 의미가 없고 자살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때문에 이 정해진 삶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비록 감옥에 갇혀 바닷물의 감촉을 느낄 수 없지만 낮과 밤이 바뀌고 추억으로 시간을 보내듯이 어떻게든 인간은 자신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존재이다.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했다. “


거짓말을 거부했고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꺼렸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관습과 도덕의 굴레를 벗어나 스스로 지은 죄를 뉘우친다고 말하지 않았고 귀찮다고 대답했다. 그는 가난하고 가식이 없고 어둡지 않았으며 태양을 사랑했다. 다만 그런 그를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이방인으로 살았고 이방인으로 죽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삶을 긍정하고 사랑했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주변의 기대가 밀려올 때 가끔은 이 주문을 외워보련다.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죽으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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