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를 끌어서.. -수레바퀴 아래서 서평

by 제이티

왜 한스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을까? 아이에서 성인으로 커가는 과정은 누가 뭐래도 부여된 역할과 의무를 묵묵히 해나야 함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을 우리가 그리워하는 이유는 적어도 그때만큼은 ‘생계’의 압박에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남는 시간에 마음껏 자연을 거닐고 토끼를 바라보고 물속의 물고기를 바라보다 마음껏 헤엄을 치고 하루하루 공상과 호기심에 가득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 어린 시절에 불과하다. 한스뿐 아니라 우리도 수레바퀴 아래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매일 나오는 밥과 따뜻한 보금자리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과 노동의 대가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제 아이와 같은 미소가 다시는 나올 수가 없듯이.. 굴러가는 세상에 한 줌의 쓰임새라도 있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태어나서 밥값은 해야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처럼.. 그놈의 밥값을 해야 한다.


하얀 눈이 내리면 따뜻한 코코아와 눈사람이 생각나야 하지만 그런 감상은 출근길의 교통대란 속에 감성은 사라지고 만다. 한스는 원하는 것은 그저 낚시하고 수영하고 사과나무 아래 누워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것 그뿐이었다. 그것만이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였으깐 말이다. 그 밖의 모든 일은 태어나자마자 정해져 있었다. 해야 할 공부와 앞으로의 장래 직업과 그가 가져야 할 가치관까지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말이다. 천재로 태어났듯이 그에 걸맞은 이름값을 하라는 말이다. 시기와 질투를 받는 유망주 한스는 주 시험에 2등으로 합격하자 마을 사람들이 그를 보는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한스 “씨”라는 호칭을 붙여주면서 대우와 인정을 해주는 상황이 그도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드디어 수레바퀴 위에 올라탔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남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신경쇠약에 걸려 마을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 시험 2등 출신 대장장이”라 모욕하고 조롱했다. 이처럼 남들의 기대치를 받는 삶은 남들에 의해 기분이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스는 남들의 바람대로만 살았을 뿐 단 한 번도 그에게 선택이라는 단어가 허락된 적이 없었다. 부모와 학교는 아이가 바른대로 살았으면 좋겠으니까 말이다.


과연 수레바퀴는 무엇이었을까? 기성 새대의 권위일까? 아니면 주변의 기대치였을까? 아니면 한스의 개인적인 욕망 었을까? 아니면 말 잘 듣는 멍청이들을 키워내는 교육시스템이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한스는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우린 모두 수레바퀴를 타야 된다는 압박 속에 살아간다. 그런데 그 보상으로 얻은 초콜릿이 내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다. 하일 너는 모든 것을 비웃으며 당당하게 수도원을 떠났다. 그는 확실히 수레바퀴에 깔리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했음에 틀림없다. 천재는 원래 학교에서 자라지 않는 법이니깐. 하지만 우리가 한스에게 더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우리도 그렇게 원치 않은 초콜릿을 거부하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게 두려움인지 재능의 부족함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실 내가 살아보려고 시도한 노력은 ‘나’라는 인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오려는 결심에 의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어쩌면 그렇게도 어려웠을까.”

헤세는 데미안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한스는 나를 찾는데 실패했다. 그런데 하일너는 과연 찾았을까? 그 뒷이야기가 궁금할 뿐이다. 그래야 지금 내가 용기를 얻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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