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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Jan 17. 2024

[일만 번의 다이빙]

조가람


[일만 번의 다이빙]



나는 죽는거보다 슬럼프 오는것이 더 싫은 운동선수다. 슬럼프 속에 잠긴 내 모습을 보면 이렇게 비참할지 나도 못느낄정도로 공허하다. 나에게 슬럼프는 높고 단단한 벽과 두려움, 모든걸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공포에 대상이다.


고요하고 숨소리만 들리는 그 순간, 내가 다른 선수단들에게 리더로써 시범을 보일때면 숨이 턱막히는 5초를 나는 화려한 동작으로 덮어버린다. 시범이 끝나면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빛과 박수, 환호음. 그 모든것이 나에게 향하는것이 아닌, 나의 기술과 그 순간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누나, 우리가 대회 무대에 서있을때. 우리 심장소리가 제일 크게 들리는데, 나는 왜 사람들의 수군거림 밖에 안들릴까.” 용기를 내어 말한 그의 표정에는 모든것이 들어있었다. 아직도 생생한 그 어조와 표정. 어쩌면 그는 우리를 비추던 조명이 허구였다고, 단지 분위기를 바꿔주기 위한 것이라고 나에게 전달하는 것이였던 걸까. 이때까지 나의 열등감의 대상은 슬럼프였다. 슬럼프가 어떻게 대상이 되냐고? 거울 속에 비춰지는 슬럼프에 잠긴 나를 말하는 거야. “ㅇㅇ아, 저 사람들 말고 너 자신을 봐. 너거 연습했던 걸 저 사람들이 아니라, 너 자신에게 보여주라고.“ 강렬한 한마디에 그는 허탈해 했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움직이게 만드는 기어 형식으로 연결된 있었다. 아무리 많이 싸워도 같이 운동하는 시간이 힘들어도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고 아껴줬다. 하지만, 반갑지 않는 손님, 슬럼프가 올때면 다들 예민해진다. 그들 중에서 내가 슬럼프가 자주오고 오래 간다. 이번에 같은 선수단 남자애가 슬럼프가 와서 2달동안 쉬기로 했다고 한다.


난 도저히 슬럼프를 이겨낼 자신이 없다. 그렇게 많이 겪고도, 그렇게 많이 아파와도. 다친곳을 계속 건드리면 회복되지 않고 덧나는 것 처럼 아프고 쓰려온다. 태권도가 끝나고 가는길, 내가 외발턴(턴차기 기술중, 응용된 기술로 찬 발로 착지하는 고난이도 시범 발차기)을 시범을 보였던 그 순간이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그 순간을 계속 반복해서 버텼다. 내가 나 자신한테 잘 보여지는 순간. 나 자신이 만족했던 그 순간들 하나하나가 날 일어나게 도와주었지만, 날 다시 무너트리는 것도 그 순간의 기억들이였다. 죽고 싶었다.


세상에서 살아갈 용기를 빼앗길때면 하늘을 올려다 봤었다. 태권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거면서 내가 할줄 밖에 없는것이였다. 그냥 태권도라는 길로 쭉 달려나갔다. 좌절과 실망, 절망을 겪고, 행복,성취,희열의 김정들을 느끼며 발자국을 새겨왔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어두워지는것은 기분탓인가. ’어째서 쟤가 저렇게까지 성장했지..?‘ 열등감이라는 가시가 나를 쿡쿡 찔러냈다. 햇빛이 일렁이던 그 골목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너무 멀리 왔다. 돌아가기에는 애매한 거리도 아니었고, 코앞이 성공인데. 코앞이 나의 성장의 끝인데.. 어떻게 돌아갈수 있겠는가. 내가 잡고 있던 줄을 하나씩 놓을때면 물속 깊이 가라앉는 것 처럼 마음과 몸이 무거웠다.


그렇다. 슬럼프라는 늪에 빠졌다. 발버둥 칠수록 위로 올라오지만, 체력소모가 너무 큰 그런 늪.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나를 휘감는 슬럼프의 시려움. 어쩌면 슬럼프가 나를 잡는게 아니라, 내가 슬럼프를 잡았던 것이 아니었을가. 워두컴컴한 앞길이 무서워서 내옆에 있어달라고, 차라리 나를 못가게 해달라고. 슬럼프는 자신의 뜻이 아닌 내 뜻으로 온것일까. 죽도록 없애버리고 싶지만, 캄캄한 앞길을 밝혀주는 꺼져가는 하나뿐인 촛불처럼 나에게 슬럼프는 꼬리표 처럼 금방 붙일수는 있지만 떼는데에는 시간이 오래걸리는 나의 과거 속 후회, 미련이 아닐까. 미련 속에 갇힌 나는 이런말을 하겠지. ”오늘의 나보다 내일에 더 빛날거야.“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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