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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Jan 31. 2024

<김아미가 아닌 엄마로서>

<김아미가 아닌 엄마로서>


김아미


내가 엄마께 나를 낳은 후에 행복함이 후회감보다 컸냐고 물을 때마다 엄마는 늘 고개를 끄덕이셨다. 충분한 고민을 거듭한 한순간의 선택이였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새로운 미래였다. 나 자신의 우선순위를 뒤바꿀 정도로 투자를 할 가치가 있을 지,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은 철 없는 소리였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이를 낳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곁에 남을 동반자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늘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인지 말도 되지 않는 입양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아이에 대해 내가 얼마나 큰 애정을 쏟을 수 있을지 늘 고심하며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 대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 또는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가능할까. 엄마가 나에게 정해준 삶의 방향성에 따르던 내가 어느새 엄마라는 제 2의 이름을 가지고 서있을지.


사람들은 늘 이미지를 가지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지만, 나에게 엄마는 그보다도 더 단호하고 간결하게 느껴졌다. 삶의 노하우라고는 하나 느끼지 못했던 젊은 시절에서 치열하게 살아야만 하는 시기가 되기까지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족은 어느새 최우선으로 정해졌고, "엄마는 괜찮아"라는 말이 입에 붙어있었다. 눈물은 나오려다가도 다시 들어갔고, 그렇게 좋아하던 춤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바라왔던 목표가 아닌 자식의 행복을 기원한다. 부모의 마음이 무엇인지, 늘 괴로워하던 엄마의 표정이 무슨 이유였는지 마냥 편하게 미소만을 지을 수는 없다.


아이를 낳았음에 부담감이 커지고, 찡그리는 아이의 표정을 볼 때마다 같이 찡그릴 수밖에 없어진다. 엄마라는 면목으로 몸이 초췌해질 때까지 같이 노력하고 싶어지고 아이가 칼에 찔리더라도 가만히 지켜만 보아야 할까봐, "태어난 김에 버텨라."라는 말만을 내뱉을 수 있을까봐 괜스레 주춤하게 된다.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늘 꿈은 꾸지만 과연 주춤하는 내 본능에 대항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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