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인스타에 빠지는 이유(인스타 브레인)

-인스타 브레인 서평-

by 제이티

아침에 눈을 뜬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화장실로 가는 게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은 핸드폰을 쓰다듬는다. 밤새 누구한테 연락이 왔겠냐마는 푸시 알림을 확인하고, 카톡을 열어본다. 단톡 방에 확인 못한 톡을 쓰윽 확인한 후 빨간 미확인 표시를 지운다. 그리고 자연스레 인스타에 들어가 어젯밤 12시에 올린 내 사진에 누가 좋아요를 표시했는지 확인한다. 그러다 스크롤을 내리면서 12,900원 티셔츠를 1+1을 주문한다. 다시 유튜브를 켰다가 추천 동영상을 10초 정도 본 다음에 네이버 앱을 켜고 연예기사를 읽는다. 오늘은 또 무슨 사건이 생겼나 확인을 해야 있다 회사 동료와 할 얘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운전을 할 때도 걸을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우리는 스마트폰을 쳐다본다. 하루 2600번 이상 10분에 한 번씩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나의 손가락과 눈은 5인치 화면에 고정돼있다.


이 차가운 금속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았을까?


흔히, 중독이라 하면 떠오르는 호르몬이 있다. 바로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인데 쉽게 말해 쾌감과 만족감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근사한 곳을 갈 때 느끼는 감정이다. 보면 볼수록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데 는 바로 이 호르몬의 작용이 크다. 사실 도파민은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 보다 일을 하기 전의 기대감이 더 도파민을 활성화시킨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가기 전의 어디 호텔을 묶을지 어느 도시에서 무엇을 볼지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계획을 할 때 설렘이 여행지의 감동보다 더 크게 만족감을 가져다 주기 마련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상상과 기대감이 더 큰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해리포터를 영화보다 책으로 먼저 본 사람은 감동의 결이 다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고 진화해왔다.


1만 년 전의 인류의 뇌와 지금의 인류의 뇌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예컨대 고기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환장하고 침을 흘린다. 그 당시 고기는 몇 날 며칠을 매머드 발자국을 따라 걸어야 겨우 발견할 수 있었고 목숨을 건 사투 끝에야 겨우 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로또였다. 이때 만약 도파민이 없었다면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건 도전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결국 사냥에 성공한 인류는 고기를 차지한 승리자이자 우리의 조상이 된 셈이다. 그리고 도파민을 물려주셨다.


그렇다면 sns와 도파민이 무슨 상관일까? 무심코 울리는 ‘띵동’ ‘카톡’은 우리에게 기대감과 설렘을 준다. 누구일까? 혹시 어젯밤에 인스타에 올린 사진을 보고 좋아요를 눌렀으려나? 어제 내 유튜브 영상에 어떤 댓글이? 이런 막연한 기대감을 준다. 물론 십중팔구는 광고나 스팸문자가 대부분이지만 네 잎 클로버를 찾는 우리의 본능이 sns에도 녹아 있다. 스마트폰이 21세기 돌도끼라면 예측할 수 없는 푸시 알림은 21세기 매머드 사냥이다.


또 하나의 비결은 무리 짓기 본능이다.


모든 사람은 연결되고 싶어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속담이 아니라 잔인한 사실이었다. 혼자서는 사냥을 할 수도, 애를 키울 수도 성인이 될 때까지 자랄 수도 없다. 무리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곧 생존에 직결된 문제로 왕따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무리에 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냥을 잘하거나 말을 잘해야 할까? 그런데 문제가 있다.


누가 사냥을 잘하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사람 수가 50명이 넘거나 혹은 500명이 넘으면 말이다.


맛집을 검색할 때도 심지어 쿠팡에서 생수를 하나 주문을 할 때도 수십수백 가지가 뜬다. 하지만 두려워하거나 고민하지도 않는다. 리뷰와 좋아요를 보고 주문하면 되기 때문이다. 제품의 질 보다는 좋아요와 댓글의 양을 보고 주문한다. 유튜브를 볼 때도 끝까지 영상을 보기보다는 사람들의 댓글의 수가 많으면 좋은 영상이 되고 유튜브 알고리즘을 그것을 추천한다. 바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보고 선택을 한다. 과연 맛집이어서 장사가 잘 되는 것인가? 장사가 잘 돼서 맛집이 된 걸까?


바로우리는 소문을 이용한다. 누가 나의 편인지 남의 편인지 알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왜 소문은 꼭 긍정적인 소문보다 부정적인 소문이 파급력이 클까? 이유는 간단하다. 긍정적인 소문은 나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지만 부정적인 소문과 남들 사이의 갈등은 행여나 나에게 불똥을 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뉴스가 좋아요를 많이 받고 자극적이고 공포스러운 유튜브 영상이 조회수가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타민은 한 번씩 빼먹지만 감기약은 꼬박 챙기는 것처럼 부정적인 소문과 반응 이른바 험담은 우리의 생존에 직접 연결돼있기 때문이다.


꽃은 안 봐도 죽지는 않지만 뱀은 못 보면 죽을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은 좋아요를 갈망한다.


‘좋아요’ 버튼은 곧 누군가 나를 인정한다는 뜻과 같다. 좋아요 버튼이 많을수록 팔로우가 많을수록 그만큼 나는 인싸가 되는 것이다. 인싸가 된다는 건 사회적인 지위가 높다는 의미로 생존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생존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평안과 안도감을 준다. 이때 나오는 호르몬이 바로 세로토닌이다. 즉 세로토닌은 수치는 좋아요 수와 관련이 있고 이는 자신감으로 연결돼서 더 긍정적인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왜 잘생긴 애들은 의외로 성격이 좋지 않은가? 바로 인기가 많을수록 긍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사람은 그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본다.


결국 당신이 인스타에 빠져드는 이유는 우리의 뇌 보상시스템( 도파민, 세로토닌)과 생존을 위한 본능(무리 짓기, 소문)이 sns와 찰떡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콜로세움이자 그리스의 아고라이자 현대의 카지노장이자 커피숍이 바로 sns다.


하지만 sns는 하면 할수록 우리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 어제 남은 찌개와 콩자반으로 한 끼를 때우고 있는데, 친구 놈의 인스타 피드는 근사한 바비큐 사진이 올라온다. 하루 종일 꽉 막힌 도로를 운전하고 있는데 이름 모를 누군가는 스포츠카로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다. 분명 나는 동네에서 괜찮은 얼굴이었는데, 왜 연예인 사진과 비교를 당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여행을 갈 때도 이제는 대충 먹고 자서는 안된다. 무조건 친구보다 이국적이고 특색 있는 “경험”을 자랑해야만 한다. 눈은 자꾸만 높아지는데, 내 지갑 사정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sns는 자신이 가장 빛나는 순간의 사진을 올리기 마련이다. 이와 비교를 한다는 건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남과 무대 뒤에 조명 없는 나의 모습과 비교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빛이 있는 곳으로 시선이 가듯이 우리는 그렇게 비교를 강요당하고 광고주들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야 너두 야 나두!!! 할 수 있어~ 지금 지불하면 인싸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나이키를 신은다고 조던이 될 수 없고, 티오피를 마셔도 원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21세기 돌도끼인 스마트 폰은 우리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한다. 여전히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하루에 2600번 이상 10분에 한 번씩 우리는 오지 않을 알림을 기다린다.


결국 관심과 사랑받기 위한 외침이 인스타 좋아요라면 살아 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투쟁의 장이 콜로세움에서 인스타로 옮겨간 것은 아닐까?





https://youtu.be/0NyuZ1zF6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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