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역시 먹는 거였군 -행복의 기원 서평-

by 제이티

사람은 왜 사는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거란다. 그렇다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시중에 있는 많은 책들은 답한다. 행복은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런 뻔한 말이 분명 틀린 말이 아니지만 공중화장실에서 소변을 눌 때 마다 보는 문구는 왠지 공허하다. 분명 돈이 많아야 혹은 가진게 많아야 다시 말해 잘살어야 행복해 보이는데 말이다. 공주로 태어나서 겪는 불행과 콩쥐로 태어나서 겪는 불행의 결은 상당히 다르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에는 사람마다 주어진 것에 차이가 너무도 크다. 남의 떡이 커보이는게 아니라 분명히 내가 가진 떡이 작은게 확실하다. 산에 올라가 보면 많고 많은 아파트 중에 내 집만 없기 때문이다.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하는데 감사할게 없다.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나와 같다면,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일까?


'행복의 기원' 이 책은 다소 불편한 사실을 알려준다.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라 아니라 살려고 행복해야 한단다. 다시 말해 생존하기 위해 행복을 찾는 거란다. 또한 행복한 사람은 타고난 행복 유전자가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아무리 행복에 관한 책을 읽어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였다. 발상이 새롭다. 그전의 책들은 양보하고 감사하고 봉사활동하면 즉 남을 위한 삶을 살아가면 행복을 느낀다고 했는데, 이 책은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키를 더 크려고 노력한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우유와 멸치를 아무리 먹어도 내가 180이 안되는 건 순전히 엄마 탓이었고, 행복하려고 차를 사고 옷을 사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도 조상 탓이 었다. 행복 유전자를 물려주지 않아서 그런거라니 씁쓸하지만 듣기 좋은 뻔한 말보다 그래도 뭔가 행복에 대해서 체계적인 차트를 보여주는 보고서를 읽는 느낌이 들어서 흥미가 갔다.


행복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행복을 느끼는가? 라는 질문을 바꿔 놓는다.


어떻게(how)가 아니라 왜(why) 행복을 느껴야 할까 로 말이다.


70넘은 노인에게 인생이 무엇이라고 질문을 하면 어떻게 답할까? 행복하려고 사는 것이라 답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행복을 더 이상 느끼지 않는다면 살 이유가 사라지는 것인가? 행복이 답이라면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자영업자, 직장인, 학생들은 이미 사라져야만 한다. 누구나 저마다의 이유로 삶의 고통을 있고, 이 고통의 근원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그런 사람에게 웃으면 복이와요 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손에 못박힌 사람에게 고통을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세요 라고 말하는 것과같다. 지금 어깨의 짐이 무거운 자들에게 내일 아침 일찍어나 또 다시 일터로 나가게 하려면 어떤 생각이 필요할까?

답은 생각이 아니라 하루의 피로를 가시게 하는 소주 한 잔과 뜨끈한 고깃국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 날이 존재한다. 행복은 생각이나 이상 목표가 아니라 경험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본능적으로 인간은 행복을 느낀다. 행복하기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게 아니라,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하다고 느끼게 설계가 되있는 것이다. 그런 본능을 가진 인류가 생존 확률이 높았으므로 우리의 조상은 식욕이 넘쳐 흐르는 사람이었임에 틀림없다. 먹는것에 흥미가 없는 인간은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tv에 그토록 많은 먹방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지 모르겠다.


또한 혼자 먹는것보다 여럿이서 같이 먹는 음식이 맛이 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솔로들은 옆구리가 시린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실제로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체온이 내려간다고 한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외로운 사람들일수록 뜨끈한 국밥을 찾게 된다. 인간은 많은 사람 속에 있을 때 안전하게 식사를 할 수 있고 안전한 네트워크 연결망에 속에 있어야 생존에 유리했다. 즉 사람은 생존하는데 있어서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사람은 음식과 사람이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말이다.


매력적인 이성을 보고 아무 느낌이 안들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감흥이 없다면 생존하는데 너무도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피엔스들은 필히 멸종되었다. 친구와 연인을 찾아 사람을 만나는 걸 즐기고 맛있는 음식에 행복함을 느끼는 사피엔스만이 생존에 성공해서 우리에게 유전자를 물려주었다. 그래서 연예인이 나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먹방 프로그램을 보나보다. 보고 있으면 행복함을 느끼게 설계 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결국 사람이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 라는 기사제목을 본 적이 있다. 실제로 로또에 당첨 됬지만 더 불행해진 이야기를 많이 접하고 있다. 하지만 티비에 나오면 수영장 딸린 호화로운 저택을 보면서 어떻게 불행하다고 느낄까? 반대로 난민촌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없다. 세끼 조차 해결 할 수 있는 돈이 없다면 분명히 불행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반대로 세끼 충분히 잘 먹고 아메리카노도 후식으로 먹고 있는데도 한국은 자살률이 꽤 높은 나라에 속한다. 왜 그럴까?


돈과 물질은 불행을 막아주지만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없으면 안되는 비타민같은거라 꼭 필요하지만 많이 먹으면 오줌만 노랗게 나올 뿐이다. 더 먹는다고 잘생겨지지도 않는다. 또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다 보면 배부르고, 배부르면 맛이 떨어진다. 뷔폐가 망하지 않는 이유도 이런 습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옷이 있으면서도 또 다른 옷을 사고, 어제 분명히 소고기를 먹었는데도 다른 음식을 찾는다. 사람은 "적응"이라는 것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냥에 성공한 사피엔스가 바베큐 파티를 한 다음 너무 행복해서 다음날 사냥을 하러가지 않으면 이 사피엔스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저녁을 아무리 배터지게 먹었어도 다음날 꼭 아침을 먹어야 하는 꼰대만 삶을 이어 갈 수 있다. 그래서 밥을 끼니라고 하지 않는가.


사람을 좋아하는 사피엔스는 그 무리 속에 안정감을 찾고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다. 어떠한 동물도 무리를 짓지 않고 야생을 살아갈 수 없듯이 좋든 싫든 무리안에 들어 있어야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외로움을 느껴 빨리 누구한테는 카톡을 보내라고 DNA가 명령한다.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피엔스는 살아 남을 수 없었다.



행복 유전자


그렇다면 많은 사람과 교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감정을 느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사교적인 성격 다시말해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자는 내성적인 사람보다 더 크게 행복을 느낀다. 실제로 유전자가 비슷한 일란성 쌍둥이 실험에서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놀랍게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 하는 것 그리고 행복 수치가 비슷했다. 유전과 환경 이른바 닭이나 계란이냐 싸움에서 이제까지 우리는 유전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웃음이 많은 집은 엄마 아빠 할머니까지 호탕한 집이 있다. 사춘기 소녀도 아닌데 별것도 아닌거에 좋아하는 사람은 별 것을 하지 않아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샤넬 가방을 들어아먄 행복을 느끼는 여자가 있고, 지나가다 꽃만 봐도 환하게 웃는 여자가 있다.


아.. 물론 꽃을 좋아하는 여자도 샤넬은 좋아한다...


하지만 샤넬과 같은 큰 것에만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아시다피시 꽃이 지천에 널려있지만 샤넬은 백화점 1층에만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주 살 수도 없을 뿐더러 샤넬 이하 모든 것들을 시시하게 만들어 버린다. 투뿔 한우를 먹다가 다른 것을 먹으면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또 한, 샤넬은 또 금새 적응이 되서 언박싱 할 때 황홀함이 오래 가지 않는다. 만약 그 돈으로 여행을 가면 어떨까? 좋아하는 친구와 연인과 함께 간다면 시간은 점으로 기억되 영원히 가슴에 남아 있다. 그것은 질리지도 않고, 소의 되새김질 처럼 이따금씩 다시 떠오른다.



한국인과 행복


이 책을 요약하면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생존의 수단이며, 물질이 아니라 사람이며, 행복한 유전자는 타고난다. 이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한국인은 정을 중시하고, 단체 문화가 발달하고 회사에서나 모임에서도 회식을 자주 하는데 왜 행복수치가 낮게 나올까? 분명 사람과 음식이 함께 하는 문화가 많은데 말이다. 그리고 세끼를 꼬박 잘 먹고 굶어죽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말이다. 행복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이 적어서 그런것일까?


저자는 답한다. 집단주의의 문화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기 때문이라고.


흔히, 집단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가 충돌 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눈치를 본다. 나서는 놈은 필히 학교에서 눈치를 주고,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서열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언제나 아랫 사람이 희생과 양보를 해야만 한다. 즉 사람사이에 있어도 친구처럼 편안한 관계가 아니라 위 아래가 분명한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도덕 교과서에서도 윗사람을 공경해야 하지만 아랫 사람을 어떻게 하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는다. 조선왕조는 이미 100년전에 무너졌는데 아직도 정신은 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 이런 문화는 공기와 같아서 무의식적으로 숨을 쉬듯 따를 수 밖에 없다. 눈치 없이 튀다간 왕따로 몰리기 식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전 국민이 마스크를 다 쓰고 다닌다. 정부의 호소가 아니라 안쓰면 무개념 인간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찍혀서 올라 오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회색이라고 한다. 무던하게 튀지 않아야 한다. 연예인을 부러워 하면서도 조그만한 흠이 있으면 모두가 하나되어 물어뜯듯이 우리 사회는 미운오리새끼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는 사람 속에 있어도 음식을 함께 먹어도 누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평판에 신경쓰다보니 안정감을 느낄 수 없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보다

내가 보는 세상에 더 중점을 두어야 인생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음식이 나오면 인스타에 업로드용 사진 찍기 보다 먼저 냄새를 맡고, 내 혀로 느껴야 생존할 수 있지 않겠는가




https://youtu.be/Bbcbckz4Trk




매거진의 이전글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책 페인트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