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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Apr 13. 2024

무슨 사이

백지원


- 무슨 사이


우리에게 죽음은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을 때의 마지막 관계가 두려운 것이다.


어제 나는 7시 까지 학교에 남았다. 해가 지기 직전의 그 하늘은 그때까지 학교에 남아있던 나의 모습을 찬란하게 비춰주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학생회 선배들과, 학급자치회, 학생회장, 부회장, 모든 선배들도 운동장에서 마냥 아이들처럼 후배들과 함께 아무생각도, 아무대가도 없이 달렸다. 후배들과 함께 펩시 캔을 까면서 진실된 말들을 전하고 받았다. 이 모든 사람들은 다들 어색한 사람들 투성이인데,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는 그 어떤 관계보다 몽롱하고 기분좋은, 마치 꿈같은 관계처럼 느껴졌다.

사실 5교시 시작시간인 1시 30분에 리더쉽캠프가 시작해서 6시까지 별의 별 프로젝트를 다 진행하느라 학교에 남게 되었다. 참가하면 싸이버거 세트를 제공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영어학원을 뺐다. 엄마가 한 번 더 문자를 보내 ‘학원에 가지 못한다’ 라는 말을 길게 늘리자 학원 선생님은 문단을 하나하나 다 뗘서 3개의 문장을 보내셨다. 대충 ’이제 시험이 2주도 남지 않았는데 괜찮을까, 그대신 토요일이랑 일요일은 이제 맨날 와야한다‘ 같은 말이 아주 걱정이 한 바가지로 묻어 나왔다. 마치 파우더 양 조절을 실패해서 얼굴에 파우더가 묻는 순간 얼굴이 따가운 느낌이 바로 그 때의 내 느낌이었다고 보면 된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참여하게된 리더쉽캠프에서는 1시간 안 되게 대충 설명을 듣고나서 서로 모르거나 어색한 사람이 있을수도 있으니 서로 앞 뒤 양 옆 상관 없이 인사해보자고 우리 학교에서 섭외한 Mc는 말했다. 그 사회자는 자신이 그 누구보다 진행을 잘 하고 있으며, 이 정도로 진행해 나가면 아이스브레이킹이 되고도 충분하다고, 서로 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근육은 틱 장애마냥 갑자기 확 움직이는 것처럼 더 굳어버렸고, 그래서 쉽사리 움직임을 내 뇌에 입력할 수 없었다. 나의 옆자리 짝이어야 할 부회장은 피구 예선을 뛰러 가버렸고, 정말 불운이게도 앞자리는 싸가지가 바가지라고 소문이 나버린 1학년이었고, 내 뒷자리 2학년들마저 다들 예선에 참가하느라 텅 비어있었다. 이 때 기분이 어땠냐면, 내가 살아있는 장례식에 아무도 울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웃지도 않은 느낌이었다. 더 극단적이게 말하면 아무도 안 온 것 같았다. 내 인간관계에 엄청난 수치심을 느낀 기분. 어깨가 자동으로 축소되고, 고개는 창피하게 계속 양 옆을 둘러보고, 이런 것들이 밀려오자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나와 반대되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에서 모리 교수님이 살아있는 장례식을 열었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은 울고 웃고 있었다. 루게릭 병으로 인해서 죽음을 앞당기게 된 모리 교수님은 어떻게 이런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 나의 인간관계는 리더쉽캠프에서 같이 인사할 수 있는 친구조차 1에서 2명 뿐이다. 나는 1학년 때부터 2학년, 현재까지도 모든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 비해서 결과는 매우 초라해보인다. 허나 모리 교수님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직접 책에서 설명해주시지는 않았지만 비유적 표현으로는 흘리듯이 말해주셨다. “마음가는 데로.” 사실 정말 인간관계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의 영향을 준다고도 한다. 서은이의 부모님은 자신의 딸이 매홀고 아니면 오산고를 갈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매홀고에는 아는 친구들도 없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전부 오산고와는 다르게 기도 쎄고, 여러모로 쎈 애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오산고를 가야할 것 같다고 말해주셨다. 이런 상황에서 관계를 버리고 그냥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절대 나올 수가 없다. 나는 그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말하지 못했다. 왜냐면 나 조차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작년 우리 학교 전교 1등은 오산고에 들어갔다. 그 이유는 친구관계 때문이라고 했다. 오산고에 자신의 친구들이 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산고를 가게 되었다고. 그래도 성적이 되기에 오산고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다들 금방 나올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공부보다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당연히 멘탈이 흔들릴 것이라며 말이다. 나는 알고 있다. 관계는 흐르는 듯이 파도를 타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모리 교수님은 그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마저 자신을 친구처럼 대해달라며 부탁하고 수업을 시작하셨다. 그 문장을 읽으니 리더쉽캠프에서 사회자가 말해준 말이 떠올랐다.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급하게 다가가지 말고, 천천히 노크부터 해야 한다.’ 나는 그 누구보다 친화력이 좋은 척하며 사는 것에 익숙해져있다. 그 말을 듣고 찔린 사람을 꼽자면, 그 사람은 내가 될 것이다. 모리 교수님과 미첼을 나름대로 비교해보자면, 모리 교수님은 여러 사교 활동을 즐기시며 자기 자신 스스로를 유하게 만드신다. 그 누구보다 여유를 가지시며, 비유하자면 자전거를 타고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힘들면 아무도 오지 않는, 자신 조차 처음 와보는 곳에 돗자리를 펴서 풀이 깔린 바닥에 놓고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다가, 처음 와 본 곳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곳이었는지 냄새와 느낌을 음미하신다. 하지만 미첼은 다르다. 어느때나 일에만 몰두하느라 자신의 아내에게초자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항상 성취감에 짓눌려 살면서 자신이 사는 의미가 성취감이 되어버리는지도 알지 못하는, 기어 5단계로 맞춰놓고 쉴 틈 없이 달리는 사람이다. 앞을 막아서는 차들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아 바퀴를 역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 헨들 방향을 틀면서 오직 운전에만 몰두하는 유형인 셈이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의 말소리는 들을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일이라는 운전을 끝내버리면 더이상 살아갈 흥미를 찾지 못한다. 이렇게 비유해놓고 보자면 모리 교수님의 관계가 왜 좋은지를 알 수 있는 것 같다. 정말 그는 마음가는 데로 살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도 안 가기에 똑같이 안 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문화를 만들어서 산 속 깊은 곳에서 눈치 보지 않고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왠지 모를 편안함이 생기고, 좋은 기운들이 느껴진다. 그만큼의 여유가 느껴진다고 하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미첼은 다르다. 마음가는 데로 살지 못하고, 닥쳐오는 문제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며, 여유의 여 자도 꺼내지 못하는, 늘 불안해보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관계도 좋지 않고, 만약 이해해주는 그런 아내가 아니었다면 그는 정말 혼자였을 정도로 사회적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압박. 그런 것들이 그의 멘탈을 흔들지는 않는다는 점이 그나마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 누구보다 위험한 운전을 하는 중인 미첼에게 스트레스와 압박은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이겨내야하는 요소이기에 별안간의 것들은 자유의지라기보다는 ‘외부의지’ 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겨낸다. 외부에서 오는 것들로 인해 생기는 의지 말이다. 그래서 그는 관계라는 족쇠에는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리 교수님처럼 70대가 되면 가족이라는 관계는 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자신의 삶의 의지는 자식의 생명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모리 교수님처럼 문화를 만드는 것은 나로써는 아직 힘들다. 그 누구보다 친구에게 신경쓰고, 관계에 신경쓰고, 시선에 신경쓰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압박들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리더쉽캠프 장소의 중간에 위치한 내 자리는 내 양 옆으로 비워져있었다. 앞 뒤로 내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였다고 생각되어 손가락을 꿈질꿈질하며 불안함을 표출했지만 이겨내려 노력했다. 어깨를 5번 계속 피고, 숨을 크게 3번 들이 쉬었다. 이 곳에서의 관계는 어지럽지만, 내일의 관계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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