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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Apr 14. 2024

-누구나 (       )가 될 수 있어요-

정서윤


-누구나 (       )가 될 수 있어요-


(      )을 존경합니다.


지금의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어요. (      )이였죠. 내가 아는 그는 참 멋진 사람이에요. 그는 언제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며, 압박감과 기대감을 주고, 내가 닿아보지도 못할 것 같은 곳에서 생활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이 보였지요. (      )은 누구보다 행복해보였지만, 어떨 때는 그가 정말로 불행해보인다고 느끼기도 하였죠. 그를 보며 난 나의 인정욕구를 충족시켰답니다. 그 길을 가지 않은 것에 대해서 난 누구보다도 잘했다, 당신을 바라보며 서 있었음에도, 먼저 그 길로 보냈다는 것에 대하여. (      )은 001 깐부였죠. 어쩌면 그는 모리 슈워츠 교수와도 닮았답니다. “죽을 준비란 어떻게 하나요?”

“불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하게. 매일 어깨 위에 작은 새를 올려놓는 거야. 그러곤 새에게 ‘오늘이 그날인가? 나는 준비가 되었나? 나는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나?’라고 묻는 거지.”


“오늘이 내가 죽을 바로 그날인가?”

“미치,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어.” “다시 말하면, 일단 죽는 법을 배우게 되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된다네.” 그는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      )도 같았어요. 언제나 자신의 어깨에 "우리 JT school 아이들" 이라는 새를 올려놓고 지금까지 몇 마리의 새를 떠나보냈을지 생각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었죠. 여기서 갑자기 저의 이야기를 꺼내보지만, 저는 아빠에게 정말 슬픈 소식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빠에게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아버지가 아파하셨다는데, 결국 병명이 "루게릭병"이었다는 것에 대해 생각이 나는군요. 안타깝다는 것에 더불어 그의 아들은 다른 지역에 떨어져사는 터라, 결국 모리 슈워츠 교수님처럼 의미있는 사람들을 만나보지 못하고 결국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오래전이라며 이야기하는 아빠의 이야기에 무언가 쓸쓸하면서도 공허한, 감정어린 아빠의 표정은 그 일을 추억하는 듯, 아쉬워하는 듯 보였죠. (      )을 보며, 언제나 그가존경스럽고 남들과는 다른 인맥을 가진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죠. 제가 예전에 (      ) 에 대해 쓴 글을 언제나 언급하며 자신은 "수업하면서 죽고 싶다"라고 이야기하죠. 1년 전 나에게 처음으로 작은 인사를 했을때, 너무나도 내 맘은 요란해져서 계속 떨렸죠. 다음시간 때 어떤 인사를 할까에 대한 것들에 대하여, 어떤 인사가 괜찮을까에 대하여. 오늘도 천 번 생각하고 내일도 난 천 번을 생각할 것이고요. 언제나 수업을 듣고 피드백을 해주는 (     )의 모습에 , 새벽 2시까지 직원을 갈구는 모습에 정말 현실적이고 어떨때는 연민을 느끼는 그의 모습에 참 같이 인생을 살아가보고 싶더군요. 언제나 생각하는 것인데, 그가 언제까지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을까도 요즘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까는 수업을 듣고 조금 더 커서 모든 아이들을 다 죽이고 피비린내나는 전쟁터를 떠나 마지막으로 가는 사람이 바로 당신, (      )이죠. 아직까지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는 당신을 지켜보고만 있지만, 앞으로 나도 그 길로 가볼까 해요. 물론 위험한 여행이 될 수 있겠지만, 더 이상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없는 나에겐 선택지가 없는걸요. 그리고 오늘 처음 알았죠. 그런 길로 가면 앞으로 더욱 아플 수 있다는 것도,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난다는 것도 알 수 있지만, 내가 오로지 가고 싶은 이유는, (       )선생님이 말한 "수업하다가 죽고 싶다"뿐이니까요. 아직은 경제적인 지원과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어쩌면 두 갈래 길, 바다와 평지 중에서 난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바다로 갈 거에요. 쪽빛보다 푸른 바다를 지나면, 이젠 힘겨운 산길을 올라가 정상에 있다 조용히 하산하는 (       )이 보일까요.. ‘베푸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심오한 말이다. 그리고 과연 맞는 말이다. 그 반대는 거짓이니까. 받는 것, 소유하는 것은 살아 있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이 마케팅, 영리주의, 광고계의 기본이겠지만, 모리는 ‘문화에 현혹되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 새 차, 새 옷, 새 평면 tv를 소유하는 것. 이런 것들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일시적인 흥분감이 있지만 신제품 냄새가 빠지기도 전에, 품질 보증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진다.(      ) 은 알고 있다. ‘주는 것이 곧 사는 것’임을. 모든 것을 주고 떠난 (       )은 결국 샛별이 되어 하늘로 떠오를 것이고,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한 스승으로 남을 것이다. 코코의 헥터처럼,, 누구도 기억하지 않아 사라지는 사람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        )를 뛰어넘고 난 태양이 될 것이에요. 기대합니다, (       )선생님. 모든 걸 죽이고 누구도 되지 못할 것 같은 1명이 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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