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티 Mar 28. 2024

나는 이미 죽었는데, 죽어서 편히 쉴수 있었는데...'

나는 이미 죽었는데, 죽어서 편히 쉴수 있었는데...'


김민하


시간이란 어떤 걸까? 삶과 죽음 불안과 혼란을 한 꺼 번에 나누는 신보다 더한 존재일것이다. 제우스가 최강의 신은 아닌 것 같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왕좌를 차지해야 할 것 같다. 그 1초가 사람의 목숨을 뺏어가고, 한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누군가에게는 슬픔을 누군가에게는 기쁨을 선사하는 시간일거니까.  정확히 그저께, 부산 기장군 정관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학교에서 자전거로 5분만 가면 있는 사거리에서, 중학생 오빠가 버스에 치여 자전거와 함께 날아갔다. 내 뒤에 옆에 자리에 앉은 아이의 말에 따르면, 장기가 다 튀어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오빤 죽었다. 사거리의 신호등 앞에는 약간의 피와 흙, 구멍 뚤린 자전거, 하얀 국화꽃다발 12개, 말랑카우, 꼬북칩을 비롯해 캠핑 갈 때의 텐트만큼 쌓여 있는 간식들, 찢어져 있는 하얀 편지지. 처음으로 느껴봤다,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어제부터, 난 5초 남은 신호등을 뛰지 않고, 투명 우산 속에서 기다렸다. 내가 지금 뛰었다가, 2초 뒤 죽을지, 안 죽을지,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 난 모르니까. 그  사고가 있은 후, 우리 마을은 모든 학교애서 교통 안전 통신문이 나갔고, 교통 안전 영상을 보았다. 아이들 여럿이 모이면 무조건 그 얘기가 나오게 되있었다. 특히나 이야깃 주제가 없어 남의 뒷담을 까는 아이들에겐 더욱 더. 시간... 어쩌면 우리는 이제 3고개를 넘은 떡 장수가 아닐까? 1번째 고개에 오르기도 전에 죽는 이가 있는 반면, 늙고 쇠약해져 나이로 죽는 마지막 고개를 넘는 자도 있다. 우리는 몇 번째 고개일까? 어디서 삶이 멈출까? 그 불안을 안고 점점 높아만 져가는 고개를 넘는 이가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들이 불안한 것도 당연하다. 뒤에서 절규하는 비명 소리나 떡이 사라져 자신도 사라지는 이들을 묵묵히 바라보며 걸어야 하니까. 나는 어디까지가 한계일까? 나의 떡은 항아리에 가득 차 있을까? 손바닥에 하나 얹어져 있을까? 부스러기만 남았을까? 우리는 극히 많은 떡 장수 중 아직 운 좋게 떡이 남아있는 몇 몇 장수들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누가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을까? 오징어 게임의 승자를 가리는 것과 같다. 근데,, 영생이라고...? 너무 끔직한  벌이다. 넘어도 넘어도 끝 없이 고개가 있고, 고통이 있고, 떡이 생겨나는 것과 같다. 나중엔 나 홀로 어느새 히말라야 산맥을 돌파해버린 고개를 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시포스의 형벌. 그거와 같지 않을까? 기독교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더라면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있었을꺼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뱀이 천사이지 않을까? 아담과 하와는 천사의 말을 순종한 또 다른 천사들이고.

'미래도 과거도 묻지 않고, 모든 시간에서 한결 같은 것. ' 우리에겐 각자의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삶을 아릅답게 살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마감일이 언제나라면, 누가 원고를 쓰고 완성작을 보며 뿌듯해하겠는가? 누가 목표를 세우고, 누가 목표를 이룰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는 일이 매일이지 않을까?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우리에게 영생은 아름다운 게 아니라 가장 끔찍한 형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