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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Apr 26. 2024

흉내쟁이

손정원


흉내쟁이


같은 나이, 같은 중학교, 같은 학급. 함께 웃고 떠들었던 많은 시간이 무색하게 우리는 다른 길을 간다. 이 사회는 성적에 따라 인생이 나뉜다. 중학교 3학년, 몇십 명은 특성화고로 가서 사회인이 될 준비를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일반 고등학교로 가서 전문직을 따기 위해 공부한다. 같이 즐거웠던 추억과 아름다움은 사회의 효율성의 의해 무너져버렸다. 정말 말도 안 되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행복했던 시간이 나중에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내 길은 단순해졌다. 우리의 사회는 우리에게 한 가지 길만을 제시했다. 죽도록 노력해서 서울대에 들어가 의사가 되는 것. 그것은 모두의 목표였고 나의 목표였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같아졌다. 공부하고 학교가고 자고. 어린아이의 환상같은 즐거움은 더 이상 없었다.

나는 나에게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 계속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살았다. 겉으로는 한없이 자신만만해 보이지만 그것은 그저 자신만만해지고 싶은 식은땀흘리는 억지미소였다. 편하게 쉬다가도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다. 나는 내 옆에서 친구들이 놀 때 그들이 부러웠다. 저렇게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놀 수 있음을. 나는 나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내가 원하는 멋진 모습이 아닌 그저 치킨이나 배달하는 라이더일까봐. 뛰어난 사람을 보며 동경하다가도 지금 부족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앞으로 나아가며, 노력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아가고 싶었지만 그것은 힘들었고, 뒤로 물러나고 싶었지만 그것은 편안한 휴식터처럼 보이는 권태의 세계였다. 나는 어느 두 쪽 다 두려웠다. 내 세계는 두려움과 걱정, 불안투성이였다. 학원에서 아무리 잘해도, 선생님의 칭찬을 받아도 그런 것들은 다 선생님들이 그저 학생을 격려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거에게는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은 칭호라고. 다들 내가 대단하다고 했지만 나는 흉내쟁이같았다. 나에게 재능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흉내내는 것 뿐이겠지. 나에게 진정한 '나' 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모두가 같은 이 기계공장같은 사회에서 나라는 존재는 없었다. 결과로만 사람을 판별하고 무자비한 이 세상은 애초에 잘못되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도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나는 알아버렸다. 그런데 나는 이 사회를 바꿀 만한 힘이 없었다. 효율을 따지고, 단 몇 점 차이로 인생이 갈리는 이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흉내내기 밖에 없었다. 3번 골을 넣은 선수와 30번 골을 넣은 선수의 월급은 절대로 같을 수 없으니 나는 이 썩어빠진 세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힘껏 적응해 이 세상을 비웃어 주겠다. 인간을 능력치로 평가하며 쓸모없는 인간은 버려지고 상징적 폭력이나 당하는 이 사회에서 나는 나만의 노력을 하겠다. 나의 칭호는 '흉내쟁이' 아닐까. 출발점이 다른 세상에서 나는 나보다 출발점이 높은 사람들을 흉내내겠다. 출발점을 바꾸어, 내가 정점이 되어주겠다. 대처처럼 밑바닥에서 올라와주지. 형태가 없는 자들이기에 가능한 노력. 이 사회의 더러운 점을 오히려 역이용해주겠다. 흉내쟁이는 자신,즉 '나' 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이것은 출발점이 높은 자들은 알 수 없는 밑바닥 열등생의 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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