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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Jun 03. 2024

작별인사

김민하


신을 따라 걸으면 영생의 길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종교들. 하지만 종교를 믿었던 그 어느 사람도 죽지 않고는 못 산다는 거를 꺠닫고 하늘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늘에서 우리는 과연 행복할까? 종교 속에서는 하늘에는 육체가 아닌 생수 처럼 깔끔하고 딱 봐도 1급수로 보이는 생명의 물이 흐르고 있으며 우리의 영혼 또한 그 만큼 맑아진다고 한다. 결국 우리의 육체는 남지 않고 정신과 기억만 남는다는 말이다. 몸이 투명하면 그리고 날아다니면 그건 유령 아니면 영혼일테니까. 하지만 그런 투명한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선 내가 투명하니 존재하는 게 맞는 지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포기한거와 마찬가지여서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신선이다. 천국에 와보니 막상 내가 입고 싶었던 옷도 못 입고, 허기지고 배고프다는 정신은 남아있는데 손이 없고, 입이 없어서 밥 한 톨 입에 못 넣고, 갖고 싶었던 람보르기니를 가져도 발이 없으니 운전할 수가 없다. 지상에서의 영생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늙어빠질 떄로 쭈그러든 몸은 원래의 단단함을 잃어버리고, 부드러운 케이크로 변화한 당근과 같고, 쭈글쭈글 늙음이란 신 물에 담겨진 오이 피클과도 같다. 막상 부자가 되어서 미래를 위해 모아둔 재산으로 버킷리스트를 해보려하지만 튼튼했던 오이만이 탈 수 있었던 패러글라이딩은 쭈글쭈글한 피클에겐 너무 크고 무겁다. 모아둔 돈으로 아이슬란드를 가서 추운 날 밤 영화 겨울왕국에 나오는 거와 묘사한 아름다운 별이 떠 있는 하늘에서 오로라를 보지도 못한다. 늙어빠진 몸은 1등석에 앉아도 젊었을 때 간신히 배송되어 죽을뻔한 갑갑한 박스 안에 든 것 같은 기분 말곤 느낄 수 없다. 사고 싶었던 좋은 주택을 사서 마당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따갑게 내리쬐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수영을 해보려 하지만 쭈글쭈글해진 오이피클은 수영장의 소독약 가득한 물이 피클의 신 물 마냥 가라앉고 잔뜩 물을 머금는다. 건강한 오이 때는 달릴 때 아삭아삭 소리가 나던 것이 지금은 축 처진 수건으로 바닥 닦는 소리 마냥 끼익끼익 푸석푸석 소리만 난다. 늙어서 오래 살아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영생은 남은 인생을 영원히 식물 인간으로 사는 거와 마찬가지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인간에게 있어서 감각이란 곧 신체고 감각이란 곧 생각과 감정이 된다. 몸과 정신은 같다. 몸에 피가 돌지 않으며 화색의 피부가 아닌 딱딱하고 차가운 철로 된 피부를 가진 생명체가 사람일까? 아님 피부에 화색이 돌고 부드러운 피부와 털을 가지고 있지만 뇌만은 인공지능이 지배하고 있는 생명체가 사람일까? 구분하기 몹시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나는 태초에 흙이었으면 그게 지금 무슨 생명체든 사람. 태초에 금속과 전선이었으면 그건 로봇으로 구분할 것 같다. 한 번 사람인 사람은 영원히 사람이다. 사람이 교통사고가 나서 얼굴이 다 녹아내려 사라진다고 하여도, 사람이 식물인간이 되어버린다고 하여도 어쨌거나 인간인 것 이다.  누군가 의족을 차고 학교에 등장했을 떄 아이들은 의족을 보고 위로와 동정을 나누어 주지 '' 야, 로봇아'' 라고 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피부가 녹아내렸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걸 보고 징그럽다거나 괴물 같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게 할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이 동물이라고도 로봇이라고도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휴머노이드 아메카보고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지금의 모습이 어찌됬던 태초에 무엇이였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너무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인간인 줄 알 뻔한 휴머노이드 들도 결국엔 밥 대신 배터리를 먹어야 하고, 주인이 마음에 안 들다 싶을 떄 때리거나 화 내거나 혼 내고 등짝 스매싱 할 필요 없이 잠시 전원을 끄면 그만이다. 공장 초기화 버튼을 누르면 휴머노이드가 겪었던 경험들이 날아가는 거다. 내가 로봇을 학대했다고 하여도 쉽게 쉽게 고치면 된다. 그러면 로봇은 언제 그랬냐는듯 나에게 다가온다. 굳이 화해의 과정, 용서의 과정 이런 걸 밟고 지나가지 않아도 된다. 로봇은 인간이 밟아야 하는 계단을 점점 없애주고 있다. 지금 당장은 덜 힘들어지니까 그게 좋아보일지 몰라도 나중엔 목표 지점까지 계단이 놓아져 있지 않아 더 힘들어 질거다. 사다리도 갖고 와보고, 줄도 설치해보지만 너무나도 늘어난 간격 차에 줄을 설치해야하는 목표도 보이지 않는 데 어떻게든 올라가야 할 거다. 진정 위대한 생각은 모두 걷기로부터 나온다.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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