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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Jun 10. 2024

소프트파워

홍지호


 디데이 21일,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핸드폰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기말고사까지 남은 날짜는 21일,504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기말고사의 디데이를 확인하고 기말고사가 21일 남았다는 것에 머리를 감싸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우리 집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세계적인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의 통장에 0이 9개 찍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말고사를 잘 봐야 좋은 고등학교를 가고 좋은 대학교를 갈 수 있고,그래야 금수저가 아닌 집안에서 태어난 내가 입에 풀칠이라도 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윌리 로먼은 세일즈맨이 되지 못하고 알바나 하는 자신의 아들에게 매우 빈정이 상한다. 비록 좋은 실적을 내지는 못하지만 집의 대출금도 차근차근 갚고 있으며 나름 상사에게 인정도 받는 로먼에게 있어서 안정된 직장을 가지지 못한 아들은 세일즈맨의 눈으로 보기에는 마치 TSMC가 없는 대만과도 같아 보였을 것이다. 세일즈맨은 안다. 인생은 역겹게만 굴러간다는 것을. 돈 없는 사람을  그 정도로 괴롭혔으면 그에게도 행복이란 걸 쥐여 줄만도 할 법하지만 인생은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 대만에게 갑자기 TSMC를 내려줄 일도,빌빌 대고 있는 한국에게 삼성과 SK를 선물해줄 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동에게는 석유,러시아에게는 천연가스,대만과 한국에게는 반도체 회사. 그 외의 자원을 가지지 못한 국가와 사람들이 말라 가고 죽어 가는 것을 멍하니,초점이 그들을 향하지 않은 채로 바라 보기만 할 뿐이다. 이 글을 쓰고도 영어 본문을 외우고 있을 내게 한마디 하자면..

 책 지리의 힘에서는 이런 말을 한다. “말라카 해협에 걸터 앉아 있는 행세다. 날마다 이 해협을 통해 1200만 베럴의 원유가 점점 더 목이 마른 중국과 이 지역 다른 나라들로 향한다. 이 세 나라들이 친미 성향을 버리지 않는 한 미국은 핵심적인 이익을 수호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중국은 자국의 상품들이 전세계로 전달되는 항로 대부분의 경비를 미국이 담당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영향력이 중국에 지나치게 근접하지 않는 선에서의 얘기다.” 여기서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말라카 해협에 걸터 앉은 세 국가가 미국을 숭배하는 이유는 적어도 내가 기말고사 기간에 학교 선생님들께 질문을 갑자기 많이 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선생님들이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익을 보려고 아득바득 발버둥을 치는 것,말라카 해협의 세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바다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고 해군과 군함이 태평양 한가운데를 배회하고 있고 경비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친미적 성향을 띄는 것이다. 미국의 힘이자 자원인 해군으로 인해서 미국은 한층 더 강해진다. 이처럼 자원은 곧 무기가 된다. 자원은 다른 말로 하면 파워이다. 다만 어떤 자원이야에 따라 힘의 종류는 달라진다. 천연자원이라면,바다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이라면 하드 파워,우리의 삶에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라면 소프트 파워로 말이다. 역사적으로도 메소포타이아의 지역을 최초로 점령한 아시리아는 철제도구라는 자원이 있었기 때문에 한 시대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말이 철제 도구이지,다른 자원이었어도 도구,무기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즉 자원을 무기화 시키는 현재에도 가스나 석유 같은 것은 일종의 검이 되어 그 나라가 휘두르는 예리한 무기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마치 독일에 공급하던 천연가스의 노르스트림을 잠그려는 러시아의 움직임처럼 말이다.

 이는 대만도 마찬가지이다. 대만은 중국이 인정하지 않는 국가 중에 하나이다. 중국은 하나다라는 말로 대만을 중국의 파편이라고 생각하고 다시금 파편을 구슬 하나로 모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렇기에 중국은 대만을 들어가거나 외교적으로 압박을 하는 등의 규제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또한 대만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대만에는 TSCM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전자제품 회사는 대만이 전쟁을 한다면 가로수길에 있는 한국의 애플스토어마저도 문을 닫아야할 수 있다. 이처럼 대만의 TSCM는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지원과 경비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만에서는 그런 영향으로 TSCM를 나라 지키는 신의 산이라고도 부른다. 대만이 아직 중국에게 흡수 당하지 않은 것은 TSCM가 버텨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더 나아가 우리들의 인생은 무엇이 버텨주어야 할까.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 하는 난제이다. 한국은 대만과 비슷하게 삼성과 SK 등의 반도체 회사로 연명하고 있다. 곧 있으면 독도 바다 안에 매립되어 있는 천연 가스 자원을 파낼 것이라는 기대도 한 몫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이 당당히 세계 주요국에 들 수 있고 OECD 국가 중에서도 상위권의 국가가 될 수 있던 이유는 이런 자원이 당당하게 존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쥐뿔도 없다. 윌러 로먼이 말하는 떨거지 중에 하나가 나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재산은 내가 평생 아무 것도 안하면서 살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나도 나만의 무기를 가져야 한다. 나만의 자원을 가져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기말고사를 잘 봐야만 한다. 무기는 남보다 검이 예리하고 날카로울 때 빛이 나지 않는다. 남이 무기가 없거나 내가 남보다 무기가 더 많아야 빛이 난다. 전쟁을 나갔을 때 우리 모두가 총을 가지고 있는데 나 혼자만 소음기 하나 더 꼈다고 무언가가 달라질까. 어차피 모두가 비슷한 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데 말이다. 그런데 내가 총과 방탄복,대포도 가지고 있다면? 내가 그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기말고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국영수사과역을 잘 본다고 해서 좋은 무기와 자원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다. 그건 윌러 로먼의 아들이 알바를 하는 것과 같다.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기말고사를 올백을 맞고 지금처럼 나름 글을 잘 쓴다면 나는 공부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아이가 되지 않는가. 이런 게 바로 대체제가 없는 자원의 위대함이다. TSCM을 다루듯이,회사 상사가 윌러 로먼을 다루듯이. 나를 대할 수 있도록 나는 기말고사를 잘 봐야 한다. 남은 디데이까지 20일. 나는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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