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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Jul 02. 2024

일대기

정서윤



난 사람들에게 나의 어린 시절을 묻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어린 시절을 깊은 밤에 듣다 보면, 지금은 훌쩍 커버린 내 몸에 조금이라도 적응할 수 있었을까 해서. 지금은 실감 나지 않는 나이이지만, 아직도, 몇 번이든, 계속 물어본다. 반복해서 물어본다. 나의 어린 시절은 어땠냐고. 난 어린 시절에 엄마 아빠와 1년을 떨어져서 살았다. 난 계속 할머니와 살았었는데, 밤마다 서울에 있는 엄마와 아이패드로 영상 통화를 하였다. 그때 만큼은 다크서클 져 있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 엄마 아빠를 찬찬히 볼 수 있었다. 엄마 아빠 말로는, 내가 어릴 때 없어지면, 항상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었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었고, 잘 읽었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유치원에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는 친구를 깨물었을 정도로.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아이었고, 매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고 할머니는 말했었다. 매일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 색종이에 한 소절을 써서 집에 가지고 왔다고 한다. 바로 "사랑해요"였다. 예전에는 이렇게 착한 편지를 써서 가지고 온 내가 지금은 너무 그립다고 말하는 할머니였다.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도 못할 사소한 기억들로 이뤄져 지금의 "서윤"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엎치락 뒤치락 하며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이 나이가 되었고, 거의 모든 기억을 잃고 지금의 기억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인간의 기억은 생각보다 짧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라고 물어본다면, 당신은 사소한 무언가까지 기억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자신의 슬픈 기억만 기억한다. 나도 엄마 아빠와 1년 간 떨어져 산 것을 가장 먼저 기억한 것 처럼. 1년이 다 되도록 심한 비바람과 더운 햇살을 마다하고 계속 기다려서 만났을 땐, 왠지 모르게 어딘가 달라져 있었던 엄마 아빠였다. 그 뒤로, 난 틀에 박힌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 유치원에서도, 학교에서도 계속 교육을 받아왔고, 지금은 14살이 되어 중학교를 다니고 있다. 난 본능적으로 사람들과 같이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1등으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것을 위해 어디에서든 죽어라 노력한다. 사람들이 다 그렇듯 "누군가가 잘한다더라"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짜증난다. 아직 챱쌀떡 같은 아이들을 개조시키는 교육 방식을 한시빨리 바꾸고 싶으나, 난 아직 세상을 바꿀 영웅 조차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7년의 교육이, 벌써 날 실패작이라고 낙인 찍게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어느 날 문득 소나기처럼 내려온 나라는 존재는 2000억 분의 1로 태어난 아주 소중한 존재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소중한 확률로 태어난 사람들을 갈구지 못해 안달인 것일까? 그래서 난 모두에게 외면 받았다. 완벽한 학교 생활을 보내고 싶어서 하였던 그 행동들이, 어쩌면 나를 옭아매는 행동일 수도 있지만, 왕관은 언제나 무겁다는 생각으로 계속 버텨왔다. 그런데도 난 버틸 수 없었다. 매일 바쁜 스켸쥴과 일정에 버틸 수 없는 지경에도,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면 힘든 거 아니야." "그대는 선물입니다 하늘이 내려준, 홀로 선 세상 속에 그댈 지켜줄게요" 홀로 내동댕이 쳐진 나는 한스 기벤라트처럼 좁은 길로 간신히 끼어들어가야 하였다. 말만 기회가 많다, 방향은 많다 하지만, 세상의 각박에서 벗어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수요일 뿐이었다. 수요일은 내가 좋아하는 스피치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다. 그 선생님은 내가 힘든 날에 유일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었다. 다 비교하고, 비난하고, 비수를 꽃는데 그 선생님만이 혼자 내 손을 잡아주었다. 2번만에 그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쏟고, 휴지를 다 적신 내가 그 선생님을 얼마나 의지했는지는 말 안해도 알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일반화된 사회에서 우리 모두 다 힘들다. 누군가가 잘하면 짜증나고, 화나고, 힘들다. 우리 모두 과제를 낼 때, 논문을 작성할 때, 수업을 만들 때, 한 번쯤은 머리를 쥐어뜯었고, 힘든 고뇌의 순간을 떠올리며 가끔씩 씁쓸하게 웃는다. 그것이 내가 어린시절을 떠올리는 이유이다. 그날을 "회상"하고자, "회귀"하고 싶기에, 그러는 것이다. 내겐 소중한 사람들과 존경하는 사람들, 좋은 친구들이 옆에 있어 오늘도 버티고, 나쁜 걱정들을 빗방울에 흘려보낸다. 이상으로 아직 14년 밖에 안 산 정서윤의 일대기를 마치겠다. "이거 아니? 정말 아프고, 힘들고, 쪽팔렸던 기억이 있다면, "괜찮아, 이건 다 지나간 일이고, 그냥 경험인 뿐인걸"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다 잊히더라. 너도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잊을 수 있도록 노력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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