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서평
백지원
-사랑의 부조리
세상에 떠도는 바이러스들은 수없이 많다. 그 많은 바이러스 중에서 입구가 되는 뚫린 코와 입에 들어오는 바이러스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엉킨 콧털과 끈적한 침에 엉키고 붙어서 여러 공간을 떠돌아다니는 것, 그런 당연한 일들로 우리들은 아프다. 이처럼 공기 중에는 보이지도 않아서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세균들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감기가 걸리거나 독감에 걸리거나, 혹은 코로나에 걸리는 것도 세균 말고는 어쩌면 이유없는 아픔이다. 그저 공기중에는 자연스럽게 몸에 들어와 해를 끼치는 것들이 떠다니는 것이고, 우리들은 그것을 집이든 밖이든 마시게 된다. 결국에는 아픈것에는 뭐 특별한 이유가 없다. 숨을 쉰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개체들이 들어오는데, 그것에서 과연 이유라는 것이 존재할까? 그러나 병원과 주변인의 말은 좀 다르다. 하얀 색이 가득한 방에서 의사선생님은 하얀 불빛으로 눈과 귀, 코, 입을 다 살피시고는 ‘스트레스성’ 이라는, 그리고 그래서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라는, 진찰과정과 정말 다른 결과를 말씀해주신다. 또 주변인들은 ‘너 어제 핸드폰 많이 봤지. 핸드폰을 많이 보니까 무기력해져서 면역력이 떨어졌나보지. 그래서 감기라고 착각하는 거 아냐.’ 하면서 여전히 내 옆에 있는 핸드폰을 주원인으로 잡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이유들이 갈리고, 그렇게 사람들은 아픈 나의 마음을 분산시키려고 하는 듯이 말도 안되는 이유를 나열시켜준다. 나는 디엠창에 나열된 이유들을 하나하나 밑으로 내리며 읽으면서 ‘아 그런가’ 하며 혹여나 코로나일까 하는 딱딱했던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책 이방인에서는 뫼르소가 법정에서 악의 없는 살인을 벌였지만, 사람들과 검사는 그가 어머니가 죽었을 때 무표정으로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에 더 집중한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담배를 피운 것은 엄연히 잘못된 일이라고 법정에 앉은 모두는 생각했을 것이다. 나 또한 책을 읽으면서도 애초에 어떻게 부모가 세상을 떠났는데도 회사에서 휴가를 낸 탓에 기분이 언짢아 했던 사장의 모습을 생각하고, 장례식 다음날 금방 새로운 애인을 만나서 코믹영화도 보고 불건전한 일도 벌일까 싶었다. 우선 우리가 이렇게 뫼르소의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우리들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세상속에서 얻은 모든 규칙과, 질서들을 뫼르소가 짓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표지판에 ‘출입금지’ 라고 써져있는 잔디밭이 요즘은 거의 당연한 것 같다. 공원에 가보면 아무렇지 않게 잔디에 드러누워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있다. 그러나 나는 ‘왜 잔디에 사람이’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출입금지라는 문화가, 빽빽하고 풍성하게 자란 잔디와 꽃들 사이를 쑥 들어가게 밟으면 안되고, 그 곳에서 답답한 공기를 내뱉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질서가 뼈 속 깊이 박혀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사실은 들어가도 상관없는 들판에 들어가 담배를 피우고, 발로 쭉 뻗은 풀을 밟고 다니는 사람들은 금기를 어긴 행동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지키고 있던 질서를 가진 나로써는 그 행동들이 거의 생명도 없는 꽃과 잔디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꺾어 죽이고, 공기를 탁하게 만들어 그들을 금방 시들게 만드는 행동처럼 뭔가 과대하여 생각한다. 이처럼 뫼르소도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아주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뫼르소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이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당연하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뫼르소의 행동은 미래의 살인사건에서도 제일 크게 등장한다. 뫼르소가 아랍인을 총으로 죽인 이유는 그저 햇빛이 칼에 반사되어서였고, 눈이 아픈 탓에 방아쇠를 누르게 된 것이었다. 또 하필 그 때 총을 소지하고 있었던 이유는, 정말 없었다. 정말 아무 이유조차 없는 상황이었고, 그저 우연이였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의사쌤은 아무 이유 없는 아픔에 대해, 확인할 수 없는 존재인 ‘과거’ 의 일에 의해 생긴 스트레스를 이유로 만들어준다. 우연으로, 정말 우연히 바이러스를 받아먹어서 생겼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찝찝함을 남겨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연히 아픔을 얻게 되었는데 그 아픔이 우연으로 생겼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앓아눕게 되면, 우리들은 더욱이 불안하지 않은가? 뭔가 갑자기 큰일이 생긴것만 같고, 누워있으면서도 바이러스라는 존재가 더 무섭게 느껴진다. 그렇게 작아보이는데,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셈이니까 작은 존재에 더 많은 불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마치 뫼르소의 재판장에서 검사가 자꾸 뫼르소의 과거 행위를 언급하여 이유를 만드는 것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그 짧은 시간에 도시가 붕괴되고, 다리가 무너졌다는 뉴스가 나오면 불안한 것과 비슷한 것이다. 잠시 지나간 바람에 의해 다리가 무너졌다는 뉴스가 뜨면, 그들은 이 재해가 엄청 크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만든 다리인데, 자연재해가 시간을 얼마 투자하지도 않고 그 모든 공을 부순것이니까 말이다. 태풍에 대해 아무런 대처도 못할 것 같아서 더 불안하다. 그래서 우리들은 갑자기 이유를 만든다. ‘다리가 무너진 것은 대통령의 잘못이 태풍보다 크다.’ 라고 말이다. 대통령이 부실공사를 추진한 탓에 태풍의 작은 바람에도 다리가 부셔진 것이라고 포장해서, 우리들의 불안을 덜어준다. 이처럼 책 이방인에서도 똑같이 뫼르소가 아무생각 없이 벌인 범죄에 대해 자꾸만 그가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놓은 것, 죽음에 대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끝까지 담배와 함께 한 과거를 들먹이며 의미를 부여한다.
이렇게 이유를 만드는 것이 곧 세상의 부조리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사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에는 어떠한 이유도 없다. 태어난 것에도 숨겨진 의미든 보이는 의미든 없는데, 다른 것에는 과연 이유와 의미가 있을까? 우리들은 그저 하나의 의미부여를 하는 것 뿐이다. 우리가 유리한데로, 원하는데로 생각하며 살아가기 위함이다.
연인들에게 ‘나 왜 사랑해?’ 라고 물어보기도 하지 않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이라는 대답을 한다고 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이유가 없다. 그냥 갑자기 시간이 멈추고, 그 사람의 뒤에 빛이 한 3초정도 보이면서, 그 사람의 존재 자체에 자석이 붙은 것처럼 시선은 그 존재에 붙어다닌다. 이것역시 그냥이 답이었다. 우연만이 가득한 이 상황에서 우리들은 자꾸만 ‘왜’ 라는 질문으로, 의미를 찾지 못하면 의미를 만들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의미부여를 하려고 끼어든다. 그러나 아무리 숨겨진 답을 찾으려고 애써봐도 진짜 이유를 모르는 이유는 역시나 정말 모든 것이 우연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의미를 찾는 것이 부조리인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