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
-누군가의 반항-
2019년 7월 26일, 세계 최고의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속해있는 유벤투스 FC와 팀 K리그의 친선 경기가 열렸다. 유벤투스 FC와 팀 K리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는 세계 ‘GOAT’가 대한민국에 방한한다는 엄청난 소식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천연잔디구장인 상암경기장의 좌석이 거의 매진되었고,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인파들이 상암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했던 호날두는 보이지 않았고, 벤치에 앉아있었다. 선발출전하는 호날두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했지만, 결정적인 순간 호날두가 경기를 승리로 이끌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보았으나, 호날두는 90분 내내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실망했다. 결국 호날두는 엄청난 비난을 듣고 대한민국을 떠났으며, 그 사건 이후로 호날두에 대한 인식도 대한민국에서는 매우 나빠져, 호날두=노쇼, 라는 이미지가 굳어지게 되었다.
당연히 호날두가 한 노쇼는 계약 위반이기에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호날두가 출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뒤에서 “메시! 메시!”를 연호하고, 호날두에게 쌍욕을 퍼붇는 등 호날두의 행동을 이성적이고 공명정대하게 비판하기보다는 ‘비난’에 가까운 분위기가 전 대한민국에 퍼졌다. 책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태양이 너무나도 눈부셔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 아랍인을 죽였다. 그리고 법정에 끌려가 현대 문명의 상징인 공정하고 상식적인 판정 대신, 감정에 호소하는, 아랍인을 죽인 사건이 아니라 뫼르소의 행적에 대한 재판을 받았다. 호날두도 그렇지 않을까? 호날두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날 호날두는 전날 한국의 식당이나 클럽에서 술을 너무 마셔서 숙취가 가시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랬다면 프로 의식에 대해 비판을 피할 수 없겠지만 또 그날따라 감기에 걸려서 뛰기만해도 목에서 피맛이 느껴지는 날이었을 수도 있으며, 햄스트링이 땡겨 더 뛰다가는 부상을 입을 거 같다는 전문 주치의의 판단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뫼르소와 호날두는 감정에 이끌려 배심원단들에게 그들의 행적을 고발하는 식의 재판을 받는다.
2019 호날두 노쇼 사건으로 국내에서 호날두에 대한 분노가 들끓자, 당시 34살의 유벤투스 시절 뛰던 호날두의 노쇼하는 행동에 비판하고 정당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2019년 기준으로) 13년 전 포르투칼 국가대표팀에서 뛰고 있던 21살의 호날두의 행적을 비난하기도 했다. 2006년 월드컵 당시, 호날두가 속한 포르투칼 국가 대표팀과 당시 전세계 최고 세컨드 스트라이커였던 웨인루니가 속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이 맞붙었다. 아직 부상이 다 치료되지 않았지만 진통제에 의존해 경기를 버티고 있던 루니는 결국 상대 선수에게 거친 태클을 가해, 반칙 판정을 당하게 된다. 심판은 반칙 상황에서 옐로카드로 루니에게 경고를 줄지, 아니면 레드 카드로 퇴장을 시킬지를 고민하고 있었으나, 같은 팀 동료 호날두가 파울루 페헤이라의 상황 같은 것을 심판에게 어필하며 루니의 퇴장을 유도했고, 루니가 가까스로 부상을 극복하고 진통제에 의존하며 뛰어온 경기를 한순간에 출전정지를 당해 울분에 차있는 표정으로 필드를 나가지만, 호날두는 동료에게 한 순간의 아드레날린에 의해 저지른 행동을 사과하거나 미안한 표정을 짓기는커녕 웃으면서 윙크를 날렸다는 것이 바로 재조명 되고 있는 호날두의 루니 퇴장유도 사건이다. 이 사건은 13년전 21살의 호날두가 행한 일로 이 일이 발생한 후 루니는 호날두와의 관계에 아무런 문제도 없고 전혀 이 문제로 앙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고 둘은 화해하고 합작 골까지 만들었으나, 현재 호날두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대한민국에서 “호날두 쟤는 실력만 믿고 같은 팀 동료도 퇴장 유도 시키는 쓰레기 같은 놈이어서 지금 이런 일을 저지른 거야” 라는 ‘이유 만들기’ 에 이르른다.
이것이 바로 카뮈가 주장한 ‘부조리’다. 뫼르소가 아랍인을 살해했고, 그 동기는 무엇이고 피해자는 누구인지, 뫼르소가 왜 살인했고 현재 뫼르소의 정신상태는 어떤지를 분석하는 현대 문명의 상징인 공명정대하고 옳곧은 재판이라기보다는 더위를 이기고 싶다는 본능을 상징하는 부채와, 배심원단에게 살인사건보다는 뫼르소가 장례식에서 밀크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패륜적 행동을 했다는 것에 집중하며, 우리가 호날두 노쇼 사건 당시 호날두가 왜 노쇼했는지 이유를 찾아 정당하게 비판하기보다는, “2006년때도 같은 팀 동료 루니를 퇴장시키더니, 이번에도 저러네, 역시 쟤는 저런 놈이었어”라고 행동에 집중하기보다는 이유를 만드는 것처럼 뫼르소의 장례식에만 집중하고, 피해자는 그냥 ‘아랍인1’ 이라는 NPC 취급에, 뫼르소가 왜 살인을 했는지, 그 당시 뫼르소의 상태는 어땠는지, 뫼르소의 살인에 대한 판결이라고 보기보단 뫼르소의 모친의 장례식에 대한 판결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인간의 관점인 것 같다. 문명사회의 재판은 겉으로는 인간 문명이 쌓아올린 황금 탑이지만 실상은 돌탑에 황금색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문명사회의 재판은 냉철하고 차가운 이성에 의한 뫼르소와 호날두의 행동에 대한 판결보다는 감정과 자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것이 바로 카뮈가 주장한 ‘부조리’다.
부조리가 생기는 과정은 어떤 일이 이유없이 발생함-이유를 찾지 못함-인간은 불안함 이 과정을 인간이라는 존재가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견디지 못해 누군가의 탓으로 돌려야 한다. 마치 군에서 사망사건이 나오면 그 사망사건의 직접 관련자 뿐 아니라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으로 책임이 돌아가듯 말이다. 뫼르소의 재판을 예로 들면 뫼르소가 사람을 죽임- 이유가 없음- 배심원과 판사들은 불안함- 이 과정에서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커피와 담배를 즐기는 인간쓰레기이므로 이런 묻지마 살인을 저질렀다! 라는 부조리적 이론을 집어넣어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고, 호날두 노쇼의 예로 들면 “호날두가 노쇼함- 이유를 못 찾음-불안함”의 뫼비우스 띠를 끊기위해 “호날두는 원래 그런놈이다!” 라는 부조리한 결론에 이르른 것처럼 말이다.
부조리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반항’이다. “I don’t think so” 남들의 해석보다는 오직 자기 자신의 자아를 찾아 조언이나 롤모델보다는 오직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이다. 뫼르소의 예시로 들면 뫼르소를 사람들은 인간 말종 뫼르소를 마지막 사형 전 내세와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 그래도 사회의 규범에 맞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교화시켜 문명의 이론을 정당화시키는 존재로 삼으려 했지만, 뫼르소는 그런 신부에게 고함을 지르고 카뮈가 주장한 ‘부조리’ 에 관해 반항한다. 호날두는 노쇼 사건으로 GOAT 논쟁, 즉 메호대전에서도 한국 팬들의 지지가 철회되고, 그 역시도 이제 메시의 월드컵 우승과 함께 메호대전 대신 게호 대전 같이 호날두를 격하시키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여전히 국가대표에서 활약하고 맨유에서 알-나스르에서 뛰면서 ‘반항’ 하고 있다. 2006년 월드컵 이후, 올드 트래포드에서 루니는 호날두를 안아주었고, 호날두도 루니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지금, 아무리 많은 욕을 먹고 이제 은퇴해야 될 노인네, 시대가 건너갔지만 노욕을 부리는 2인자 라는 인식이 강해도, 호날두는 여전히 반항하고 있다. 뫼르소처럼 말이다. 호날두가 은퇴하고, 뫼르소가 교수대에 목이 매달려도, 시대가 흘러도 누군가는 계속 이 세상의 한구석에서 반항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능인 부조리적 이유찾기에 맞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