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별과 함께하는 밤

by 제이티

정서윤



너의 별과 함께하는 밤


"오늘은 난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하니까 착한 가면을 쓸래." 내 안의 자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그렇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는, 생각보다 비극적일지도, 이 책을 읽는 여러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의미심장한 희열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그저 평범하게 지내고 싶다는 내 생각은 그저 가면을 하나 더 창조하는데 지나지 않은, 그저 상황마다 가면을 바꿔쓰며 진짜 나 자신이 무엇일까 생각하지 않는. 그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사회가 되어버리자 점점 사람들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그저 당연하다는 듯 잔인하게 하기 시작하였다. "잊혀진다는 것." 우린 자신의 존재가 잊혀지는 것을 정말 두렵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당신이 처음으로 세상과 마주했을때의 모습"은 기억하지도 못하고, 이미 모르는지 오래이다. 내가 태어날 때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처음에 엄마 품에 안겼을 때의 그 감촉을 기억하는가? 그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그런 짓을 저질러놓고서 또 한 번 그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은 참 신기하다. 물론 나도 그렇다, 그 행동은 어쩌면 자신을 두 번 죽이는 행위가 될 수 있었음에도. 처음 아기였을때 연구결과는 어쩌면 그들이 "류드밀라 행성"을 그렇게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네이버에 "류드밀라 행성"을 검색하면, 엄청나게 화려한 색깔과 함께 있는 류드밀라의 행성이 나오게 되는데, 이 행성은 자그마치 실존하지 않는 행성이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모르는 존재'이자 어린아이의 작은 자신의 행성에 살고 있는 것에 지나치지 않는 것이고, 존재이지만, 류드밀라에게는 그들이 떠나지 않았기에 그렇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난 조심스럽게 그들이 "진짜 자아"라고 생각해본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보면 인간의 자아는 기쁨 슬픔, 분노, 까칠, 소심 등등 여러 자아를 만든다.


여기서 인간은 그저 "저 라일리라는 인간에게 있는 자아일 뿐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끝나지만, 그 자아 안에는 과연 자아가 있을까? 기쁨이라는 자아 안에는 기쁨이라는 명칭을 빌려쓴 그들이 살 수 있는 것이고, 나는 태어났으며, 정서윤이기에 "정서윤"이라는 이름을 빌린 그들이 아직 내 안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뜬금없지만, 난 별을 좋아한다. 멀리서 낮밤이 뜨는 걸 볼 때면, 언젠가 밤하늘에 잔뜩 떠있던 별똥별들과 유성우들을 보고 있었던 어릴 적 내가 생각난다. 그땐 그저 그 별을 귀여운 내 친구로 밖에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공부라는 압박감에 시달려 지적 가면을 쓰게 된 난, 별이라는 존재를 "어딘가에서 파생된 운석중 하나로, 적색부터 흰색까지 다양하게 있는 매우 뜨거운 종류의 아주 큰 물체"라고 알 수 있게 되었다.


난 그저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나에겐, Input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Output도 없었지만. 사실 난 언제나 탓해왔다. 그 지옥같은 공부라며, 미운 엄마아빠라며, 온갖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삐용스삐용, 할삐, 할매, 답할, 할할할 등등 여러가지를 만들어내니 이것도 내가 관심받고 싶어하는 필사적인 노력이라는 것을 여러모로 느끼게 되었다. "요즘 그 아이가 폼이 올라오네." "요즘 가장 폼 좋은 ( ) 읽어보자." 진짜 기분이 더럽다. 죽여버리고 싶고, 1등이 되지 않으면 안 될것 같은 기분 안에서 우리는 산다. 그렇게 세상은 우리를 네모난 틀에 넣어서 완벽이라는 정육면체를 만들어내고 그 정육면체를 세상으로 내보낸다. 결과는? 그저 잘 돌아갈 뿐이다. 이러면서 세상을 탓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 나와보라고 해라. 기분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경쟁할때 기분이 더러운건 우리 뇌가 시키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만들어내는 기분일 뿐이다. 우리가 명령하는 것이다. 지독하게도 명령을 해서 지칠 만큼 계속 명령하고, 명령하며 우리를 계속 슬픔의 기운에 빠뜨리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계속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고, 이기고 싶고, 모두를 적으로 보는 이유는 내가 그 아이를 진정으로 이기고 싶은 나의 "진짜 모습"아닐까. 아직 애송이 삐약이지만, 14년간 세상을 살면서 2가지를 알게 되었다. 나의 진짜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을. 첫째, 먼저 경쟁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모두가 자신의 자아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속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경쟁을 하면 나의 진정한, 조금 무섭고 추악한 생각이 드러나면서 나의 자아는 절정을 향해 뻗쳐달리기 시작한다. 서로를 죽고 죽여서 마침내 1등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누군가의 정신을 이었던 빨간 줄이 "툭"하고 끊어지게 된다. 그 힘든 자리를 오르면 받게 되는 보상은 바로 "독립된 자아"인 것이다.


두 번쨰는 별을 보면 좋다. 요즘은 잘 보이지 않아 속상하지만, 별을 보면 어딘가에 잠식하고 있을 나의 광활한 자아가 떠오른다. 인간의 속성마다 달라서 보아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책임을 지지 않을것이다. 그래도 꾹 참고 10분 이상 별을 보면, 망각을 하게 된다. "별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어!" "나에게 웃어주고 있네 ㅎㅎ" 이 망각의 시간이 어쩌면 진짜 나를 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별은 아주 멀리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어도, 몇 만년, 어쩌면 몇십만 광년이 걸릴지 모르는 그곳을 우리는 물끄러미 보고 있다. 난 그 별을 사랑한다. 그 별은 나에게 정서윤이라는 특징과 이름이 되었고, 그 별에게조차 동의하지 않아도 지어준 이름을 주었다. 정말로, 정말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자신의 별을 하나 만들 노력이라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계속 그 별을 보며 웃음짓고 있다보면, 저 멀리 자신의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는 안나가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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