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원
-따가운 쾌락
과장된 말로 적어보자면, 나에게 관계란, 항상 주제를 넘는 것은 아닌가 하며 자책하게 만드는 것이었던 것 같다. 같이 놀러가자고 가볍게 핸드폰을 누르는 것, 마치 필요한 식재료를 적어 걸어놓은 종이마냥 메세지 창 가장 위에 핀 모양으로 고정됨을 띄우는 모습조차 분수에 넘치는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었다. 그랬던 지난날의 내 관계의 정의와 다르게 이제는 그 뜻이 조금 수정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는 그 존재가 어쩌면 당연하다싶이 여겨지는, 서로의 사이를 가벼운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친구라는 존재였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이고 싶은 아이 2에서 보면, 지주연이 사랑을 주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았다. 그녀는 조금 서툴렀을 뿐이고, 끼워맞출 마음의 모양이 달랐을 뿐이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 상처를 더 괴롭혔다. 책의 한 문장에서는 “너를 당연하게 여겨서.. 미안해. 고마워해야 했는데 너를 빼앗길까 봐 무서웠어. 다시 혼자가 될까봐.” 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가장 인상깊었던 것 같다. 나에게도 책에서 따돌림의 대상으로 나왔던 등장인물과 이름이 같은 친구가 있다. 내가 그녀를 대하는 모습은, 마치 지주연이 책의 서은이를 대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친구라는 존재를 과거와는 다르게 너무나 내 옆에서 조잘조잘 말하는 모습이 당연했고, 나보다 먼저 카드를 쥔 손을 직원분에게 뻗는 모습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 모습을 보고 거부하는 듯 손사래를 치는 모션도 몇 초 안 가 근육의 힘이 빠졌고, 처음부터 내용물이 없던 것처럼 쭈글쭈글해진 내 손은 등 뒤로 숨겼다. 항상 밑에 있던 나를 위에서 잡아 올려주며 자리를 바꿔주는 모습이 반복되다보니, 책 변신에서 나온 바퀴벌레가 된 아빠처럼 돈을 버는 모습이 자연스러웠기에 바퀴벌레가 되자마자 그 심각함을 느꼈던 것처럼, 내 친구도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하였기에 막상 내 옆에 없으면 갑자기 심각성을 느낄 것도 같았다. 또 그와 동시에 반대로는 친구가 갑자기 바퀴벌레가 되면 금세 존재감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근거없는 자신감 가득한 환각에 빠져들어버렸다. 변신에서 나온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바퀴벌레의 아빠는 돈을 벌 때만 존재감이 드러났고, 막상 괴상한 소리를 내는 것 말고는 눈에 밟히지도 않았다. 이런 존재처럼 그녀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정말 그 환상 자체에 불과했고, 당연한 존재가 아님을 알게되었다. 서투르기만 한 나의 사랑과 애정의 문제였다.
책에서 나오는 지주연의 아빠도 같이 옆에서 살아간 지주연에게 영향을 주는 원인이듯이 둘은 비슷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보는 나의 아빠와도 거의 비슷한 형태를 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표현이 서투른 탓에 무뚝뚝함만 보여주셨다. 그러나 그 이유가 친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친가에 놀러가면 친할아버지의 리모콘에만 오감을 집중하시고, 무조건 큰 소리로 얼버무리시는 태도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나 또한 이 모습에 어느덧 적응하게 되는 시기에 도착하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다른 친척분들도 그 모습을 당연하다는 듯이 보았다. 아빠도 이 피를 물려받았음을 부정하지 않는 듯이, 우리가 음식을 씹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꺼는?’ 라며 소리부터 지르는 모습을 자주 띄었고, 흔히 볼 수 있다던 친절한 모습은 우리 가정에겐 아마 당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랑은 받은만큼 돌려준다고 하지 않는가.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모든 유전을 연결시킨다면, 나 또한 아빠의 말투와 행동이 닮아있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를 대할 때, 자신의 음식이 준비되어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아빠처럼, 나도 그녀가 취한 나에게 맞춘 행동들을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그저 친구와 밥을 한 번 더 먹음으로써 같이 웃고싶었던 것 뿐인데, 내가 그 결과를 얻기 위해 한 말은 너무나도 성급했고, 어쩌면 누군가에겐 예의에 어긋난 말이기도 했다. 죽이고 싶은 아이의 지주연도 나와 비슷했던 점이 존재했던 것 같다. 엉터리일 뿐인 마음의 형태를 사랑이랍시고 내놓으니, 책에서는 모두가 비난과 비판을 섞어가며 지주연을 밑으로 끌어내렸다. 그 속에서 서은이는 엉터리 사랑을 품어주는 존재였다는 걸,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관계가 진정한 친구관계일까.
사랑스러운 애완견을 오직 돈과 이익을 위해 훔친 사람과 다시금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 나온 주인공은 꿉꿉한 차량 안에서 사는 것이 불행하다고 느낀 나머지, 강아지를 훔쳐 나중에 현상금이 걸리면 돌려주는 범죄를 꿈꾸게 된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게 된 강아지 주인인 부인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다시금 주인공을 집 안으로 들여보내주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모습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스타에서 ’내 애인의 과거를 보고싶은지‘ 에 대한 투표를 본 적이 있다. 솔직히 그가 어떤 행동을 벌여왔는지 궁금하다고 한 편으로는 생각했지만, 결국 과거를 보지 않는 쪽에 좋아요를 눌렀다. 한 표가 더 올라간 좋아요의 수는 거의 보고싶다고 투표된 수와 비등비등했지만, 비율로 따지면 꽤나 큰 차이가 있을 정도의 투표 수 차이를 보였다. 과거를 알게 되었을 때를 상상을 해보니, 만약 애인의 과거를 알게 되어도 지나간 일에 불과하니 괜찮다고 말했던 댓글들을 인정하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게 잡고 있던 손을 어느순간 인식해버리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얘가 옛날처럼 갑자기 폭력성을 띄면, 그래서 내 의견에 대한 분노 때문에 손목을 비틀어버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딱 들게 되면, 그 의심 때문에 더이상 사람간의 온기를 나눌 수 없게 되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흔히들 한 번의 잘못을 저지르면 그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면서, 그 사람의 지금이 어떤지가 아니라 과거에 그 사람의 인식을 고정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 이방인에서도 보면, 주인공의 살인을 재판하는 공간에서 판사들은 그의 과거의 행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 대신 담배연기를 흘렸다와 같은 과거 이야기들을 증거로 제출한다. 과거의 행실로 재판을 쥐락펴락하는 관계는 그야말로 서양처럼 계약관계 그 자체이다. 이런 사이를 친구, 그 외에도 지인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 아주머니가 개를 훔친 그녀의 과거 행위를 그저 뒤에만 두고 개를 가져다 준 현재만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는 과거를 보지 않는 관계를 진정한 친구사이 라고 생각했다. 우리들은 옛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그럼 그 얘기로 몇 시간의 통화기록을 찍어내니까, 과거는 그저 부드러운 안줏거리에 불과하다는 얘기들이 있다. 그러나, 옛 이야기는 가면 갈수록 편을 가르게 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걔 요즘 하는 짓 보니까, 과거에 그럴 줄 알았어. 사람이 고쳐먹을 수 있나.‘ 이런 말들이 결국 마무리를 지어 안주를 뜨겁게 뎁히는 것처럼 입천장은 늘 따갑다. 따가운 그 느낌이 자극적인 탓에 좋아서 자꾸만 친구의 과거를 달래면서까지 들으려하는 건 아닐까? 따가운 고통에서 쾌락을 느끼는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