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 캔슬링

by 제이티

<노이즈 캔슬링>


홍지호


뉴스를 보다 보면 커뮤니티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들려 온다. “400만 대형 먹방 유튜버가 협박 당한 거 같잖다” 혹은 “사이버 렉카들은 그냥 다 죽어라”같은 혐오가 베인 냄새들을 맡다 보면 요즘 세상은 굉장히 날카로워졌구나 싶은 세상이 되었다.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소문과 응어리진 감정들은 사람들의 입과 귀를 타고,마치 불이 번지듯,불은 빠른 속도로 초가 삼가를 다 태우고 한창 불타는 집 앞에 옹기 종기 모인 사람들의 입에 왜 불에 타는지라는 질문이 나오고 이내 “나쁜 짓을 해서 천벌을 받는 것”이라는 주장에 동요 되며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소문의 대상은 잠에 들 집도,마음의 안식처도 모두 불 탄 채로 화상 흉터만을 안은 채로 평생을 살아간다.


‘죽이고 싶은 아이2’의 지주연도 마찬가지이다. 다수의 묵인 하에 행해지는 다수의 폭력은 지주연을 저편의 무언가를 보는 듯한 공허한 눈빛을 가지도록 하기에는 충분했던 것이다.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은 가녀린 소녀에게 돌아온 호칭은 ’친구 죽인년‘ 정도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물론 이는 거짓이고 군중의 속임수였으나 타블로가 스탠포드 대학을 실제로 나오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 하며 일명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타진요‘라는 폭력단체가 세상에 나온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어 아무 이유 없이 그저 껌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입 속에서 계속해서 씹혀 댔고 지주연이라는 소다맛 껌은 금세 땅바닥에 버려져 길거리를 수놓은 무수한 껌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지주연은 나를 닮아 있다. 내가 회장을 나갈 때 내건 공약인 ’한명씩 과자를 가져와 나눠 먹자‘라는 공약은 아이들 사이에서 쉽게 변질되어 ”회장이 과자 쏜대!“같은 공약으로 바뀌었고 처음에는 49900원 어치 과자를 뿌렸으나 지갑 사정이 변변치 않자 나는 공약과 다르게 과자를 쏘지 않았다는 학생들의 말 하에 비아냥의 대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거짓말쟁이 회장‘이라고 말하던 애들은 어느 순간부터 진심으로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내 2학년에 올라와서는 ”공약도 안 지키는 게 무슨 2학년 때도 회장을 하려고 해“라는 따가운 말들을 들었어야 했다.

지주연도,나도 대중들의 거짓된 질타를 받을 때부터 희미하게나마 들리던 진실들을 무시한 채 그 소음들로부터 도망 치기 위해서 에어팟을 귀에 끼고 에어팟을 2초간 눌러 노이즈 캔슬링을 킨다. 아마 그 때부터일까. 남들과 밥을 먹는 게 꺼려져 급식을 거르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작 중 지주연은 입에 가시가 돋은 것만 같아 먹은 음식들을 다 토해내고 음식을 먹지 못했다. 먹지 못한 이유는 ’밥 먹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밥을 먹는 다는 건 인연을 맺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만 하더라도 싫어 하는,흔히 말하는 조금 정신에 문제가 있는 애가 내 앞에 앉아 급식을 먹을 때 나는 황급히 반이나 남은 쌀밥과 잔반 없는 날에 나온 떡갈비를 국칸에 몰아 넣은 채로 자리를 뜬다. 그 아이와 마주치며 연을 맺기 싫기 때문이다. 실제로 밥상 머리 예절이라는,즉 밥을 먹을 때에는 오래도록 볼 사이인 상대에게 예절과 예의를 가추라는 뜻의 교육을 받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사람에게 배신 당한 사람은 밥에게도 선뜻 가까이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주연은 두루치기를 함께 먹자는 선생님의 말또한 처음에 거부하고 집에서도 제대로 숟가락을 뜨지 못한다. 그 이유는 마치 자신이 죽인 것만 같은 죄책감과 자신에게 부러움과 질투를 말하던 입들이 돌아서 ‘그럴 줄 알았다’라는 예언을 얘기 하는 것에 대한 배신감 등 등,그런 것들이 똘똘 뭉쳐져 하나의 큰 소용돌이가 되어 지주연의 귀를 닫아 버리게끔 만들었다.


인연 맺기를 포기한 주연은 하염 없이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런 주연에게 다가올 사람은 존재할까? “정말로 너는 혼자야?” ’새로운 담임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고 귤을 나누어 준 조리사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다. 서은 엄마가 생각났고,아빠의 앞을 막아서던 엄마 얼굴도 떠올랐다. 그래서 주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 문장처럼 노이즈 캔슬링으로 없애 버린 소음은 곧 주위에서 괜찮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긍정 섞인 말들조차 소음으로 치부해 버리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혼자라고 ’착각‘하여 때론 죽음을,떄로는 집 안에 틀어 박히기를 택한다. 그런 당신에게,그리고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세상에는 물론 공사장의 떨어지고 소리 지르는 시끄러운 소음,자동차의 배기음같은 시끄러운 소음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당신에게 안녕을 묻는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의 소리또한 들린다. 그럼에 한번쯤은 혼자라고 생각될 때 눈과 귀를 막는 것 보다는 에어팟을 귀에서 빼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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