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차별

by 제이티

조가람



역차별, 소수자를 위해 만든 제도가 때로는 다수자를 차별하며, 다수자의 의견을 중심으로하는 다수결의 원칙은 항상 소수자를 차별하는 이 역차별이 발생하는 상황들. 평등함을 추구하는 이들에게서 차별이라는 무리수는 항상 존재한다. 이들은 무리수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채, 항상 무의식적으로 차별의 발언과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한다. 나 역시도, 이 무리수의 영향은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한창 선수단으로 활동하던 때였다. 찬란한 나의 태권도 전성기시절, 우연히 관장님으로부터 대회공지를 받았다. 기분이 하늘로 날아갈것처럼 말로 표현 할 수 없을정도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시 대회였던지라, 시대표 선수단.. 국가대표 선수단 등 가리지 않고, 수준조차 맞지않는 이들과함께 대회를 해야했었다.


“ 걔네는 기준이 까다로워, 우리가 유리해. “


그들을 자연스럽게 차별하며 우리가 유리할거라는 이 발언은 굉장한 오류를 불러일으킬줄은 아무도 몰랐었다. 당연하게도, 결말은 이미 열린 결말의 대회였다.


” ㅇㅇ이 2라운드에 시대표랑 붙는데 ! “


누군가의 한마디에 우리는 난간에 옹기종기, 이리저리 붙어서 동영상과 사진찍기 바빴다. 저기 나오고 있다는 말과 손가락 끝을 향해 그들을 눈이 쫓았는데, 도대체 우리가 유리했다는 말 누구했었냐면서 서로를 탓하기 바빴다. 그 이유는 장비가 너무나도 고급졌던것. 우리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했던 브랜드의 태권도 장비를 풀세트로 차고 나온 시대표를 보고 상대 우리편도 조금 당황한듯 보였다. 그때부터 예감은 틀렸다. 실력은 다르겠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괜한 희망고문 시키는 것 같아, 관뒀다. 장비빨이라는 말이 있듯이, 겨루기라는 종목은 장비로 차별하는 태권도 종목 중에, 가장 심한 종목이였으니까.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고 점수 차이는 별 아쉽지 않게 끝났다. 우리는 그의 등을 토닥여주며 위로해줬지만, 아무도 장비 탓을 하지 않았다. 우리처럼 듣도보지 못한 지방 대학교처럼 이름 잘 알려지지 않는 태권도에서 활동하는 선수단은 이런 일들로 차별당하기 바빴으니까. 물론 여기서 소수자는 우리같은 선수단들이 아니었다. 시대표, 도대표 선수단들이였지, 대회장은 이런 소수자들을 감싸안기위해 다수자에게 이미 패널티를 준것과도 같은 결과를 이미 내보냈다. 거기서부터는 실력 싸움이다. 장비도 꾀쬐쬐한 우리는, 실력도 꾀쬐쬐하면 심사위원의 눈을 똑바로 보고 항의할 자존심조차도 없어지니까 말이다.


이런 운동의 세계는 대표들의 차별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바로 국적. 이건 아마 우리가 겪는 단순한 대표 선수들과의 차별과는 수준이 다르다. 사실 국적으로 인한 차별을 직접 겪은적도, 본적도 없지만 국적으로 인한 점수 계산은 약한 나라의, 즉 지배를 받는 나라의 국적을 가진 이 가 너무나도 불리했다. 하지만 호의를 받는 쪽에서는 그들이 더욱 유리했다. 조금난 엄살 피워도 상대의 점수를 실격하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다. 경기 도중에 불리해지면 장비가 빠졌다며 거짓말 피우는 것은 물론이고, 멀리서만 봐도 핸드 사용 하지않은 상대에게 얘 손사용! 빨리 점수 깎아요! 라고 우리는 이들의 말에 알았다며 가차없이 점수를 깍는 그들의 만행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정말 유치한 그들에게서는 스포츠 정신은 티끌조차도 존재하지 않았고, 너무 그들만을 보듬어준 심판은 다수자의 상대편에게 차별을 안겨주고는, 어쩔 수 없다는 한마디와 함께 대화를 끝내며 그런 만행들을 견딜 수 없던 많은 이들은 태권도의 대한 불신과 차별이 질리고 힘들어져 많이 관두게 된다. 그런 그들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내가 더 미안해지지만, 그 겨루기 대회날, 그 장비일은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고 속좁은 날 칭찬 할 정도의 사건이 터지고 만다.


경기를 모두 뛰고 난뒤, 우리 구역에 앉아, 우리는 물과 간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옆에서 수다를 떠는 도중 시대표 선수단들이 우리 옆자리에 우르르 앉는 것이다. 서로 인사하고는 그대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도중에, 드디어 물과 간식이 도착했다. 우리는 차례대로 물을 받고 마실려고 했던 그 참에 우연히 옆 시대표 시범단들을 보게 되었는데, 기가 차서 물을 먹지 못할 정도로 자존심이 상했다. 일단, 그들은 얼려있는 물이였고, 우리는 얼다가 말아서 미지근한 정도의 물이였는데 거기까지는 뭐 그럴 수 있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들의 물 브랜드는 미네랄, 에비앙이였고, 우리는 초라한 삼다수, 오아시스 였던 것이다. 솔직히 이런걸로 자존심 상하고 삐지긴 싫었지만, 정말 이런 대우를 받는건 당연한것 같은 옆옆자리 사범단을 보고 더욱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니, 시대표 선수단들이 정부 먹여살려주나? 뭐 조금은 보태주겠지만, 솔직히 이런 정도의 대우를 받나? 별로 보기도 힘든 자들이라서 그러나?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더이상 생각하기도 싫은 나머지 물을 먹지 않았다. 그래도 따지지 않는게 어디냐며 애써 나를 칭찬하며 분노를 삭혔다. 그렇게 나홀로 받은 이 상처는 조금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었다.


지금 나의 경험도 그렇고, 역차별과 차별은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있기에 우리는 차별을 인지하지 못하고, 내가 왜 차별 받는지 조차도 인지하지 못한다. 이런 사회가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차별이 없어진다는 것은 위아래 관계조차도 없어지는 것이니까. 신분제를 박살내는 이 일은 대담한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막강한 뒷감당도 불러올테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이런 차별대우에 말대꾸를 하지 못한다. 말대꾸를 하면 어디서 말대꾸를 한다며 또 한소리 들을게 뻔하니까. 하지만, 이런 차별과 역차별의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것도 교육과정이 포함되는 요소일까? 그래도 차별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없애자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줄이자는 말은 할수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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