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원
- 알러지 반응
지금은 몇시간 전의 나를 후회하는 중이다. 어이없게도 정의에 가득찬 내가 자의로 친구의 위로를 도맡느라 생긴 일이다.
옛날의 꿈이 심리상담사였던 만큼 옛날에는 남들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아차렸고, 그 때 해야할 적절한 위로도 잘 했다. 허나 아쉽게도 지금은 그런 부분들이 소멸의 과정을 진행당하고 있는건지 남들의 감정상태에 따라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할 지를 잘 알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서 제일 심각한 점은 그런 조그만한 공감능력을 가지고도 남들의 의견을 들어주려는 정의가 그와 반비례하게 한가득이라는 것이다. 사실 애초에 심리상담가처럼 남들의 감정을 공감해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부모들의 유전이 공감을 잘하고, 감성이 풍부한 유전이어야 가능한 것이지만 말이다. 아쉽게도 그런 유전은 언니가 더 많이 받은 것 같으며, 그렇기에 의욕과 정의감만 앞선 나는 친구에게 잘못된 조언을 해주고야 말았던 것 같다.
앞서 말하자면 나는 사실 유전이 자신의 성공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가, 를 물어본다면 당연히 예 라고 대답할 사람이다. 내 친구도 미술을 전공으로 밀고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있지만, 자신의 쌍둥이 또한 미술대회에서 상을 타는 것을 보면 유전의 영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친구의 노력이 가상해보여서 유전의 함류량을 물어볼 수 없는 것 뿐이었다. 노력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하나의 예의였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맨 처음에 말한 후회의 원인에게 재능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했다. 배드민턴의 경기를 오늘로 끝마친 그가 스토리로 ‘이렇게만 했으면’ 라고 후회하는 모습을 잔뜩 비춰왔고, 모두들 지나치다 그 영상을 보면 ‘경기에서 졌구나’ 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우울함을 티냈다. 그래서 말한 말이 ‘재능보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였다. 공감이 제일 힘든 이유가 어쩌면 내 주장과 다른 말을 진심을 다해 전해줘야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 친구는 마치 말할 때마다 편함과 가벼움을 원하고 있는 듯한 생각을 드러냈는데, 나는 그 친구의 말과 반대로 희망을 불어넣어서 부풀어올라 더부룩한 느낌을 전해준 느낌이었다. 공감해주고 싶었는데, 내 주장과 다른 말을 건네줘버리니 오히려 괜히 강제성을 띄게 되었고, 진정한 나의 마음과 울림의 말을 전해주지 못했다. 포기의 앞에서 유전자의 힘을 계기로 삼으려는 그에게 희망이라는 연기만 잔뜩 불어넣어준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왜 그토록이나 유전에 대해 집착하는 것인가. 바로 앞에서 말했듯이 포기하기 위해서, 좀 더 깊게 말하자면 편하게 모든 걸 내려놓기 위함이다. ‘어차피 쟤는 워낙 체력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니까.’ 라는 말로 경쟁자가 더 많은 밑의 직업을 꿈으로 키우고, 가장 높은 계급에 올라가기 위해서 겪어야 할 고통을 짊어지기 너무 벅차보여서 매는 것조차 포기하는 것을 정당화 시키려 한다. 마치 신분제처럼, 이미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편하게 노예로 사는 모습이 이와 비슷하다. 그만큼 유전이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메트리스같은 존재였다.
영화 가타카 에서는 어떻게 보면 유전자 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여 우주비행사의 꿈을 실현시키려한다. 주인공 빈센트는 우리와 다르게 유전을 포기의 이유로 삼지 않았으며, 그러기 위해 긴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 고통스러운 수술을 진행하였고, 매번 몸과 머리의 어떠한 자신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게 열심히 벗겨냈다. 또 이 주인공은 30.2세라는 수명을 진단받았음에도, 그 유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삶을 살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유전은 도자기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찰흙이 아무리 똑같아도 그날의 온도로 인해 좀 쳐져서 아예 다른 작품이 되어버리는 도자기. 그것처럼 아무리 재료로 비유되는 유전자가 같아도 완성품이라 비유되는 사람은 변할 수가 있다.
유전자 조작이라는 것이 가능한 상태인 배아, 즉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세포로만 이루어진, 생명체라고도 하기 어렵다는 물체를 죽이는 것이 과연 살인으로 들어갈까? 내가 생각하기에 유전자 조작이 가능한 배아 상태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더 자세하게는 자기주장도 없어서 유전자 조작에 가만히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생명을 죽이는 행위인 살인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유전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내가 직접 고른 것도 아니고, 그저 배아 상태일 때 반항행동을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주는데로 받은 유전이기 때문이다. 만약 배아가 생명이 깃들어있는, 더 자세하게는 자아가 들어있는 물질이었다면, 우리가 지금쯤 유전을 탓하고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마치 향수처럼 누군가는 몸에 맞지 않으면 피부에서 알러지 반응이 일어난다. 이처럼 지금 자기주장의 몸을 얻게 된 우리들은 충분히 반항행동을 할 수 있지만, 그 행동이 보이지 않는 배아상태는 생명이라고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