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할 수 없는 자아-

by 제이티

박재영


벌써 4달 전의 이야기다. 개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학교는 운동회의 조 추첨을 특이하게 했다. 다른 학교도 이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1학년, 2학년, 3학년에서 반을 무작위로 추첨해서 팀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내가 속해 있는 1학년 7반은 2학년 4반, 3학년 2반과 매치되어 한 팀을 이루게 되었다. 그 중에서는, 1학년 3명 2,3 학년 중에서 4명을 선발해 축구 대표팀을 만들었는데, 체육대회가 열리기 2주 전부터 우리반에서는 ‘반대표’를 선발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축구 대표에 지원했다. 지원하는 포지션은 내가 원래 맡고 있었던 CDM. 테스트는 계주 선발에서 달리기를 시험하는 것과 똑같이 드리블, 슈팅, 걷어내기 같은 것으로 평가봤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레알마드리드의 탱크 같던 카세미루였지만, 내 실력은 맨유에서 뛰었던, 지난 리버풀 전의 카세미루였던 것 같다. 어쩌면 큰 피지컬과 다르게 너무 느린 발을 가지고 있어 조롱당하던 매과이어 같은 선수가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전부터 지속되던 반별 토너먼트에서는 너무 위험한 파울을 자주했고, 태클 역시 한박자 늦은 타이밍의 태클이 많이나와 패널티킥이나 프리킥을 자주 내주기도 했었다. 그런 테스트 외의 단점과 측면에서 볼을 잡고 질주하는 ‘치달’에서 발이 느리다는 단점이 부각되면서 결국 나는 반 대표 선발이 아니라 우리팀 친구가 부상을 입으면 백업으로 나오는 ‘교체’ 선수가 되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난 참 많은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잘하는 선수나 친구를 따라해라. 그날부로 인스타 팔로잉 목록에는 호날두의 발재간을 조금이라도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채널 ‘Belike_crstiano’ 계정을 팔로우 했고, 반대표 선발로 뽑힌 내 친한 친구가 신는 축구화도 따라 신은 것 같다.


점점 내가 가오나시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옷도 초등학생 때는 엄마와 아울렛에 가면 내가 옷을 고를때도 유행보다는 원하는 옷, 아디다스나 나이키 같은 브랜드보다 북미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들이 묵직한 엽총과 함께 불곰 사냥을 갈 때 입을 것 같은 옷들을 파는 지프 브랜드를 애용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내 옷장을 열어보면 그런 지프 브랜드의 ‘사냥 패션’ 옷은 모두 리빙 박스 한켠에 정리되어있고, 추석이 지나고 날이 선선해 지면 입을려고 했던 무신사에서 산 후드티, 그리고 티셔츠, 하고 내가 가장 아끼는 축구 유니폼 몇벌들로 정리되어있으며, 이제 나만의 취향보다는 점점 튀지 않고, 무리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우다보니, 나의 취향이나 자아라는 것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가) 지문은 최근 청소년, 20대들의 무기력함의 원인과 우울함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나) 지문에서는 자아의 다른말인 정체성이 잘 형성되어있는 인간이 갖춘 요소들과 획득, 유예, 폐쇠, 혼미라는 4가지 정체성 상태를 다루는 동시에 한국 청소년이나 20대가 정체성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역시 다루고 있다. 요약하자면, 지문은 현재 한국의 청소년들과 20대, 그러니까 젊은 세대들의 자아 이해도에 대해 비판하고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다. SNS를 켜보면 모두는 웃고 있고, 누구는 추석에 먹었던 할머니표 밥상을 스토리에 올리고 차가 막히는데 그곳에서 일몰을 본 사진을 올리며 “귀성길 재밌네” 같은 문구를 스토리에 적어놓았다. 그들이 할머니표 밥상이 입맛에 안 맞았을 수도 있고, 귀성길 부모님의 차에서 나는 방향제 냄새에 멀미가 나고 반복되는 FM 라디오에 질렸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러한 가오나시를 만든 것은 SNS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웃고 있고, 난 지금 웃고 싶지 않지만 웃어야되니 점점 남에게 순종하고 자신의 자아를 잃어가는 거니까 말이다.


‘자아를 되찾는다.’ ‘무엇을 할 때 당신은 자아를 발견하고 키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나?’ 라는 질문에, 가오나시 박재영은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축구선수 ‘해리 매과이어’를 존경한다. 매과이어는 2019년 레스터 시티에서 수비수 역사상 최고로 높은 이적료를 받고 맨유로 넘어왔다. 그러나 솔샤르 감독 아래에서 72경기 풀타임 출전이라는 혹사를 당하고 난뒤, 자책골, 수비불안, 위험한 태클 같은 끝없는 부진의 길을 걸으며 수 많은 팬들에게 비판을 넘어서 인신공격까지 당했다. 그가 교체아웃될 때 팬들은 항상 물병이나 쓰레기를 터널로 투척했고, 그렇게 터널로 들어온 매과이어에게는 종이가 한 장 떨어져 있었다. 그런 그는 종이를 사인을 요청한 팬의 종이라고 착각했고, 그가 집어든 종이에는 “우리 팀에서 꺼져.” 라는 악담이 적혀있었다. 게다가 그는 텐하흐 감독 아래서 주장직 역시 박탈당했다. 그러나 23/24 시즌, 그는 그동안 받았던 조롱을 되갚아주듯 맨유 초반 보여주었던 클러치형 수비수를 보여주며 필요한 골과 그의 194cm의 키와 100kg라는 거구의 몸으로 상대 공격수를 틀어막았고, 제공권 역시 완벽하게 장악하면서 2023년 11월 이달의 선수까지 수상했다. 그리고 24/25 시즌, 그는 완전히 부활한 모습을 보여주며 풀럼의 공격진들을 완전수비하는 모습 역시 보여주었다. 나는 그런 매과이어를 보며 약간 ‘인간 승리’라는 것을 보았다. 가오나시 박재영이 자아를 발견한 순간이라면, 매우 미약하지만 그것은 축구할 때라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몸을 움직이고 공을 차서, 그게 상대 키퍼에 막히든 안되든 상대 골대를 향해 강한 중거리를 때릴 때 기분이 매우 좋았다. 자아는 정체성이다. 난 그 때 내 정체성이라는 것을 살짝 맛보았던 것 같다. 정체성은,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다. 가오느시였던 내가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던 것 같다. 몸을 움직여서 공을 빼앗고, 크로스를 올리거나 직접 중거리를 때려 상대 골대 골망을 흔드는 것, 나는 희열을 느꼈고 재미를 느꼈다. 그런 것이 자아인 것 같다. 솔직히 요즘 청소년들을 보면 자아라는 것을 찾기는 힘들 것 같다. 무리 안에서도 나와 급 맞는 애들, 아래인 애들, 위인 애들을 각자 상대하면서 가면을 써야 되고, SNS 상에서는 모두가 나를 제외하면 행복한 것 같고, 선배들을 혹시 학교 외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 너무 튀지 않는 옷과 늘 같은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며 무채색인 자아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 자아를 가진 나도, 축구를 할때만은 그런 생각을 잊을 수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난 내 자아가 무엇이고 어떨 때 정체성을 느끼는 지를 생각하고 이 문단을 쓰기 위해 여러번 생각하고 3분이라는 시간 동안 생각해야 했다. 해리 매과이어의 사례를 쓰는 것도, 내 자아를 찾는 것도 조금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 무언가 정리가 된 것 같다. 존재하지 않는 자아에서 일부분이 조금 생겨났던 것 같다. 친구가 신는 축구화를 따라 신고 유명 축구선수들의 기술을 미흡하게나마 따라해볼려고 노력하지만, 내 자아는 그런 축구를 할 때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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