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원
나에게 있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춤을 출 때였다. 앉아만 있어서 그런지 서로 움츠러들어있던 살과 근육들이 점점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 다시 제 기능을 하는 느낌이 너무나 시원했기에 움직이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예전부터 춤이라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었다. 유치원 때는 벨리라는 종류의 춤도 배웠었고, 그로 인해 골반의 움직임을 조금이나마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춤으로 사람들 앞에 나갔던 것이 나의 첫번째 도전이었다. 그 때 당시의 나는 이랬다. 힘들거나 무서우면 포기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잠식되어있는 상태같았다. 나의 신념은 그렇게나 약했고 부질없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울먹울먹하면서 발걸음을 무대 위로 옮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작디작지만 그보다 한 없이 작았던 나에게는 무엇보다 크게 느껴졌던 그 무대를 통해 말이다. 그러니 나에게 있어서 춤은, 나의 도전 계기이면서 깨달음의 요소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가끔씩 춤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던 지금은, 나의 재능이 과연 필 수 있는지도 의문인채로 남겨둔 시간이 되었고, 이것을 공부대신 해도 충분히 돈벌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불안이 가득했다. 다들 자아를 찾으라고들 말하던데, 나는 잘 찾아놓고서 자꾸만 잃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애착인형을 굳이 식당에 들고갔다가 두고 온 탓에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데, 이것과 비슷하게 춤이라는 꿈만을 들고 중학교에 입학했다가 공부관련에 치이다 보니 아무렇지 않게 손에서 춤을 놓고 펜을 쥐어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잘 하면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시간상의 문제로 다시 그 식당에 가지 못한 것처럼, 나도 변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시작하기에는 조금 늦었다는 마음도 들어서 그냥 뒤를 돌게 된 것 같았다. 이렇게 등을 돌리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처럼 흡수하는데로 어설프게 따라할 수만 있는 자아상실의 인물이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항상 회피했다.
여름을 한 입 베어물었더니 라는 책을 정말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새별은 자신이 범죄자라는 이미지를 부정할 수 있게 해준 주민들을 위해 다시금 자신이 사는 지역의 꿈을, 즉 최고의 유도선수가 되기로 마음먹고, 그 때문에 애꿎은 자신이 폭력을 당해도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않는다. 점점 꿈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 으로 변해가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는 상상하기도 싫다.
피아노 학원에서 내가 아는 유명한 곡을 치는 것은 그 누구보다 새롭고 지루하지 않다. 그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바로 모두가 아는 곡을 직접 연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르니 100, 혹은 30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아무런 가사도 없이 음 맞추는 연습 용도에 불과한 악보이기 때문에 흥미를 유발시키지 않는다. 선생님들은 곡을 치기 위해서는 ’꼭 해야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허투루 연습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이때부터 아마 나의 인생 최대의 거짓말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피아노 학원은 연습량을 빈칸에 색을 칠하는 종이가 아니라 예쁜 구슬들을 옆으로 옮겨서 연습 수를 세는 방식이었다. 만약 10번 연습이라면 구슬 5개를 먼저 옮겨놓고 나머지를 연습하거나, 5번 연습이라면 2개 혹은 3개를 먼저 옮겨놓고 연습하는 하나의 거짓을 꾸며냈다. 꼭 해야하는 것들은 이렇게 우리에게 끈기를 주기는 어려우며, 점점 재미가 없어진다는 것도 느껴지게 된다. 나도 체르니 30을 끝으로 학원을 그만 다니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해야한다는 것에 대한 지루함에 있었다. 항상 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정말 괴로웠는데, 새별은 그럼에도 자신을 죄악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게 해준 주민들을 위해 계속 유도를 해야했다. 이것이 최대의 형벌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꿈 얘기를 하다보면 최서은이 가끔 생각난다. 공부와 그림을 같이 가지고 있어서 항상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 쯤 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서은이는 자아를 다시 찾으러 가지 못하는 나에게 있어서 롤모델이었던 것 같다. 같은 전자기기를 가지고 있어도 그녀와 나의 사용법은 달랐다. 그림을 그리는 용도로 아이패드를 사용해서 유료 그림 앱이 깔려있는 그녀의 창과는 다르게 나는 고작 꺼낼 수 있는 것이 넷플릭스였다. 같은 유료앱이어도 이렇게나 이미지의 영향을 끼친다는 게 느껴지는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최서은은 이런 영향들을 주었고, 아무런 말을 전해주지 않아도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라는 조언을 온 몸이 짜릿하게 느낌적으로 받았다. 여느때처럼 항상 축 늘어지고 포기하고 싶어지는 날, 처음으로 아무 말 없이 조언과 힘을 건네준 에너지드링크가 바로 그 친구였던 것 같다.
이제서야 깨달은 점은, 내가 정체성을 알지 못해서 방황한게 아니라 그 자아를 다시 되찾으러 갈 지에 대해 방황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나 공부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이런 나의 가벼운 고민들 속에서도 나는 쉽게 아이들에게 다시 춤을 추고싶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공부를 놓고 다시 춤 출거였다면 왜 굳이 워리어 연습생을 그만뒀는지, 그건 그저 너의 연약함 때문에 한 변명이었는지 하는 물음들이 참으로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서 결국 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기도 했다. 남들에게 무시받지 않기 위해서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고, 괜히 이미지가 좋아지지 않게 쉬는시간 외에는 잠을 자지도 않았다. 12월 기말고사로 인해서 내가 춤을 출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하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시험을 잘 보고 나면, 더 먼 곳으로 가서 춤을 딱 한 번 배워보기로 마음먹었다. 공부만 하지는 않는것이 결국에는 내 신념이 되었다. 역시 나는 여전히 웃으면서 움직이는 것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