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by 제이티

박재영




얼마전 학교의 반일제 동아리 활동을 하는 날, 내가 속해 있는 보드게임 부서는 학교 외부의 보드게임 방으로 활동 장소가 지정되어 있었다. 물론 자진해서 간 것은 아니고, 스포츠 관련 부서에 들어가길 원했지만 가위바위보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보드게임부로 오게 되었다. 그러나 보드게임부 활동도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보드게임 카페는 자유롭게 시킬 수 있는 먹거리도 PC방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많았고, 보드게임 종류도 많을뿐더러, 예약제로 운영되는 ‘닌텐도방’도 있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닌텐도 방 선점에 실패한 우리 조원들끼리 그냥 보드게임만 즐기기로 한 날이었다. 다들 아는 보드게임도 별로 없고, 재미도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모두가 아는 부루마블을 하기로 결정했다. 부루마블의 규칙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 게임의 목적은 ‘독점’이다. 땅 값이 높은 땅을 선점해서 독점한 이후, 상대의 통행세를 걷어 파산시키는 것이 목적인 이 게임에서 나는 초반 땅을 사는데 돈을 쓰지 않고, 초록색 땅과 파란색 땅을 모조리 먼저 선점하는 전법으로 빠르게 건물을 건설했고, 그 결과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상대가 호텔이 3개가 지어져 있는 뉴욕에 걸려서 450만원으로 파산시키는 재미는 쏠쏠하고, 그 과정에서 내 친구를 조롱하는 것 까지 내 뇌의 보상회로의 도파민을 분비시키기 충분했지만, 이 게임의 숨겨진 의미를 해석해보면 조금 씁슬해진다.


부루마블의 모티브가 된 게임은 모노폴리다. 영어 단어 모노폴리의 뜻은 ‘독점’이라는 뜻을 그대로 나타내고, 게임의 목적 역시 각 나라의 수도 같은 곳을 익히고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기 위해 만들었다는 교육적인 느낌이 강한 부루마불보다는 자유시장의 부정적인 모습을 게임화 한 듯, 조금 어두운 면이 강한 게임이다. 우리 사회 역시 그렇다. 모노폴린데, 한번 실패하면 게임을 나가버리면 되는 모노폴리와 달리, 저 아래, 사회 가장 아래의 어두운 면으로 추락하는, 그런 일상화된 독점을 겪는 것이 우리 사회라는 것을, 모노폴리라는 것을 통해 처음 배우고, 모노폴리와 부루마불의 의미를 이해한 지금, 그걸 알면 더욱 씁슬해진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가) 지문에서는 공산주의의 기본적의미와 현재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다룬다.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촉발된 빈부격차를 보고 일부 공상주의자들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를 없애고 자유로운 개인의 연대가 조화되는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상상하며,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사유재산 제도를 타파하고 생산수단을 공영화하자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쉽게 말하자면, 학교에서 운동장 사용권을 일부 힘있는 3학년 선배님들이 힘으로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월요일은 3학년, 화요일은 2학년, 수요일은 1학년, 목요일은 3학년, 금요일은 2학년..이런 식으로 공정하게 배분하자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의 주장이다. 여기서 운동장은 생산수단의 역할을 한다고 볼수 있다. 또한 (나) 지문에서는 (가) 지문 후반부에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쟁으로 인한 정신적 우울함에 대한 문제점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고질병 중 하나인 독점을 주 키워드로 담고 있다. (나) 지문에서의 핵심 내용은, 과거 기업들간의 독점이 이제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간의 독점 전쟁으로, ‘독점의 일상화’가 이루어 지고 있다는 것이 (나) 지문의 핵심 내용이다.


경쟁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경쟁이 정신건강에 유해하다는 것 역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버러지 같은 삶을 갈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와 사회의 한 분야에서 독점을 차지하기 위해, 또는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가 독점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하고 경쟁을 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다. 그 까닭을 우리는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를 통해 알 수 있다. 소련 붕괴 이후, 사람들은 무기력해져 있었고 69년간 이루어져 온 소련 체제 속 경쟁 없는 사회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경쟁사회로 접어든 새로운 러시아에 그들은 적응하지 못했고, 한 때 사회문제로 떠오른 무기력하게 보드카만 마시는 대중, 이라고 러시아의 오랜 중진국 함정과 침체기의 영향을 준 것처럼, 경쟁이 없는 사회가 비효율성으로 무너지면 일어나는 비극에 대해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독점자본주의가 필요한 까닭을 알고 있어도 현재 대한민국은 누가봐도 독점적 자본주의가 심한 나라다. 이러한 독점적 자본주의에서 개인이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은, 나는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 속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의 자세가 이러한 독점 사회속 바람직한 자세라고 본다. 로스토프 백작은 부르주아를 처벌한다는 혁명 이후 볼셰비키들의 이념에 따라서, 귀족이기 때문에 평생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에 연금된다는 처벌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허름한 하인용 다락방으로 거처까지 옮겨지게 된다. 그에게 있어서 호텔은 감옥이자 세상의 전부가 되는, 우리가 독점 자본주의 시대에서 실패했을 때 겪는 모든 일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 고상한 구시대의 유물은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는 것이 아니라 호텔에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다. 꼬마 아이의 놀이 친구, 유명 배우의 연인, 공산당 간부의 과외 교사, 주방 모임의 주요 참석자 등 백작은 보란 듯 자신의 삶에 반항하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나가며, 그 누구보다도 건강한 삶을 산다. 내가 봤을 때, 이러한 경쟁 자본주의 속에서 정상적인 정신을 가지고 살아갈려면 백작의 태도가 제일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백작은, 운명에 반항하면서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더 자신의 운명과 경쟁하고 자신의 운명에 반항하고 부딫힐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가 경쟁하면서도, 자아를 잃지 않는, 정석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도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의 로스토프 백작처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처럼 호텔 안의 총지배인의 눈엣가시로 총지배인과 경쟁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운명에 반항하고 부딫히기 위해서 자신과 경쟁하고, 또 그 운명과 경쟁하는 그 모습을 내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래도, 나는 발할라에 가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호텔 하인용 다락방에 평생 종신연금된 백작, 하지만 그는 죽어도 나약한 죽음이 아니라 운명에 있어서 전사했기 때문에 이러한 독점 시대 속, 장렬히 전사하고 발할라로 떠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독점 자본주의에서 우리는 언젠가 독점을 얻고도, 얻지 못하든, 그걸 빼앗기고 죽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스크바의 백작은 그런 방식으로 죽음을 마지해도 발할라로 떠날 수 있다. 나도 발할라로 떠나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존재 할 수 없는 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