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원
오늘 날씨는 흐리면서도 해가 가려져서 차가운 냉기가 현관에서부터 잔뜩 흘러들어오는 그런 날씨다. 벌써부터 눈이 내릴 것만 같은 날씨에 설렘과 동시에 너무 급격히 변하는 온도에 이상함을 느끼기도 하는 오늘이다. 오늘 내가 가장 기대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포스트 시즌, 바로 가을 야구이다. 어제 두산과 케이티의 경기에서 0:4 로 참혹한 패배를 맛 보았고, 오늘이 진정으로 3위와 겨루게 될 팀이 나오는 경기이다. 입문하게 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지만, 나는 아주 무식하게 어제의 경기를 학교에서 몰래 티켓팅을 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을 정도로 서툴지만 많은 애정을 야구로부터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좋아하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야구가 없는 시대에 태어났다던가, 혹은 제러드 영이 캐나다가 영국의 식민 상태로 있었다던 1763년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슬프고 우울했을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제러드 영은 우리에게 야구배트로 홈런을 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야구가 없는 마당에 영국의 지배로 인해서 큰 나무 막대 하나를 쥐는 것조차 못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시대는 이렇게나 사람의 성공이나 재능 발휘를 막는 하나의 요소이다.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반고흐가 요양원에 들어가 환각을 통해 밤하늘을 비틀어 바라보지 않은 세상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옛날의 시대였더라면 창문을 바라보았을 때, 건물들이 하나같이 다 낮고 자그마해서 하늘이 탁 트이는 듯한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재는 높고 커다랗고, 빽빽한 탓에 창문 밖으로는 하늘이 3분의 1 정도 비출까 말까 한다는 것을 거의 시골이라고 말해도 무색한 우리 동네 아파트 창문 밖에서도 알 수 있다. 만약 현재 시대에 그가 살았더라면 아마도 쨍한 파란색과 밝은 노란색이 하늘을 일그러트리는 오묘한 그림이 아니라, 아파트만 꾸물꾸물 거리는 형식적인 그림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미술을 보면 생각이 나는게, 요즘은 또 현대미술이라고 칭하는 예술들이 전시가 되고, 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팔리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그림을 덮은 까만 천을 벗기고 보면 아이들이 그릴 만한 작품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에 숨겨진 뜻이 너무 길어서 그걸 다 쓰느라 잉크가 부족해진 것인지 그림에 들어가는 잉크의 양은 매우 적기만 하다. 그와 다르게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칭해지는 기안84의 그림은 여러 색이 다채롭게 사용된다는 점과 사람이 흘러내리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다른 그림들과의 차이점이라고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쉽게도 화려하고 기발한 기안84의 그림보다는 심플하고 단순한 그림이 가장 좋다는 듯이 남들이 좋아하는 하얀 도화지로 카메라와 손을 내민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만약 기안84가 더 늦게, 혹은 더 빨리 태어났더라면 더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시대라는 것이 그만큼 사람들의 직업이나 돈벌이, 개성표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날에 고양이가 마녀하는 인식을 받아서 불에서 죽임을 당해야 했던 때에 홍지호의 고양이인 라떼와 나나가 태어났었다면 그녀들은 친절하고 순한 성격으로 우리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순한 성격과 행동때문에 사람들에게 쉽게 속아 나무 막대에 매달리기 전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죽음과 가까워질 것이다. 부정하고 발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녀들이 마녀라는 점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갖게되어 태어난 것 만으로도 마녀사냥을 당했을 테고, 그럼 현재 고양이를 보면서 행복해하는 홍지호도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사람들에게로부터 받는 대우나 애정, 그리고 그 때 느낄 행복 또한 갈린다.
그렇다면, 만약 시대에 맞게 태어나지 못한 사람은 과연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솔직히 나조차도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만약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미의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뚱뚱한 것이 미의 기준이 되었던 그 때로 돌아간다면 자신감을 얻고 무대 위에서 당당하게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면서 남들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특히 이 생각은 6학년이 되었을 당시 마음을 먹고 다이어트를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남들은 이보다 더 했겠지만, 나는 산소가 부족해져서 그런지 머리가 아픈 채로 런닝머신을 뛰는 게 힘들었고, 닭가슴살 1개와 과일로 끼니를 떼우는 것도 정말 사람이 해야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빠지지 않은 내 몸무게를 보면서 내 노력이 부족했다는 반성이 아니라 ‘나는 원래 살이 안 빠지는 체질인가’ 라고 생각했다. 옛날에는 살 찌우는 데에만 돈을 썼는데 지금은 살 빼는 데에 돈을 더 써야하네, 라고 생각하면서 사실 완전히 내가 태어난 시기를 탓했다. 이런 시기가 지난 현재, 아직도 디져트나 군것질을 포기하지 못해서 다이어트에 성공하지 못했기에 또 다시 운동을 하고 있긴 하다.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고, 그럴 때마다 배부름을 인식하지 못해서 더부룩한 상태를 유지해야하는 나의 모습에 가끔씩 울화통이 터지기도 한다. 근데 요즘은 시기를 탓하며 다이어트를 포기하려는 이유를 만들지는 않는 것 같다. 차라리 내 노력을 탓하는 게 더 빠르고 쉬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시기를 탓해도 달라지는 건 없고, 머리만 아팠을 게 뻔했다.
물론 야구가 없는 시기에 제러드 영이 태어났다면 그건 조금 억울했을지도 모르겠다. 건실한 체구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야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제대로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몸을 사용해서 그 시대에 더 좋은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은지 생각이 들었다. 기안84도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았으나 스스로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현시대에서 무시당하여 잿빛이 된 것이 아니라 가장 독특한 캐릭터로 빛난 것은 아닐까 싶었다. ‘노력하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은 다 노력했다.‘ 라는 문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라 현시대에서 무시당할지도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금 상황에서 노력하는 것 밖에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정탄 선생님이 아무도 하지 않은 북토크 수업과, 인문학 수업, 그 외의 등등의 것들로 만든 글쓰기 수업을 끝까지 함으로써 현재 성취감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시는 것처럼, 형식적인 학교 선생님들이 다 반대한 수업을 많은 학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쓸모를 증명하신 것처럼, 시대를 조금 앞서간 것이라고 해도 선생님의 노력으로 모든 편견과 안된다는 부정적인 인상을 이겨냈다고 생각이 든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건 어떻게 나에게 맞는 시대로 되돌아 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여기서 어디가 부족해서 이겨내지 못하는 것인지를 의심하므로써 자신의 노력에 대해 더 집중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진 않은지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