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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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축구선수 에덴 아자르는 1991년 1월 7일, 벨기에 왈롱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모두 축구선수였고, 그의 동생들, 킬리안 아자르와 토르간 아자르, 이선 아자르 역시 축구선수다. 그런 그는 최고의 축구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LOSC 릴에서 재능을 인정받고 첼시로 이적했다. 그곳에서 그는 절정의 폼을 보여주고, 메시와 비슷한 드리블을 보여주며 EPL에서 첼시가 한 획을 긋는데 큰 도움을 준 선수다. 그의 플레이스타일은, 최대 시속 37.2km 이라는 엄청난 속력과 더불어 가만히 볼을 둔 상태에서 발재간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볼을 지속적으로 드리블하면서 발재간을 부리는 것으로 여러명의 월드 클래스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첼시의 득점포를 가동하게 해준 선수가 바로 아자르였다.
그러나, 그런 귀신 같은 드리블을 치던 아자르의 몰락은 누구도 예상 못할 정도로 빠르게 찾아왔다. 2019/20 시즌,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한 아자르는 과거 그 아자르와 동일인물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할 정도의 기량을 보여주며, 에단 아자르는 영국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실종되었고 지금 레알에 있는 아자르는 그의 쌍둥이 동생 ‘이든 해저드’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겼을 정도로 ‘먹튀’를 보여주며, 결국 32살의 나이로 은퇴하고 말았다. 호날두는 그 시절 프리킥 골을 작렬시키고 오버헤드 킥으로 유벤투스의 골망을 가르고 있었는데 말이다.
반면, 조금 오래된 선수기는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선수이자 한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임시 감독, 웨일스 국가대표팀의 감독직을 수행했던 라이언 긱스는 아자르와 비슷한 드리블러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와는 매우 달랐다. 1973년, 11월 29일 솔퍼트 시티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는 시에라리온인이고 어머니는 영국인인, 흑백혼혈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럭비선수였지만, 긱스가 14살, 멘체스터유나이티드 유스팀에 입단 했을 때 결국 그전부터 가정을 가진 남자가 해서는 안될 외도를 저지르던 사람이였지만 마침내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면서 라이언 긱스의 어머니와 이혼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성을 딴 이름 라이언 윌슨에서 그는 어머니의 성을 딴 라이언 긱스로 개명하게 된다. 하지만, 그 후 맨유에서 24년간 선수로 활동하면서, 나이가 들어도 맨유 선수들 중 가장 많이 경기장을 뛰어다니고, 우측 윙에서 뛰기 시작했지만, 말년에는 중앙미드필더로도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아자르가 훈련장에서 모바일 게임을 즐기고, 훈련을 빠지고 홈구장 스탬포드 브릿지 앞의 수제버거 집에서 햄버거를 해치우는 동안 40살의 노장 긱스는 훈련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임시감독이 정장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마지막으로 올드트래포드를 밟아보는 그런 순간이 아자르에게는 없었다.
긱스가 축구를 시작한 90년은, 아직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하기도 전, 풋볼 리그일 때였다. 90년대 축구는, 지속되는 거친 백태클은 예전처럼 빈도가 잦지는 않아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편이었고, 지금 같았으면 두 선수모두 퇴장당할 주먹다짐도 심판이 서로 안아주고 사과하게 만들면서 경기를 지속시키던, ‘상남자들의 경기’였다. 또한 당시는 “선수가 훈련을 열심히 하면 되고, 식단은 그냥 근육 만들어지게 단백질 먹으면 되지. 뭔 개인 식단이야?” 라는 꼰대 마인드가 여전히 남아있어서 2010년대처럼 식단 관리 역시 엄격하게 이루어지지 않던 시기였다. 하지만 긱스는 그런 시대적 단점을 모두 이겨내고 귀신 같은 왼발 드리블을 2014년, 41세가 되던 시절까지 유지시키면서, 그의 마지막 경기를 10분 남기고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명예롭게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아자르는 어떤가? 해외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자르하면 햄버거라는 생각이 공식처럼 스칠 것이다. 그 말대로 아자르는 자기관리의 대명사 호날두나 긱스 같은 선수들과 비교되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결국 일찍 은퇴하고 말았다.
사실 드리블 능력이나 재능으로 보면, 아자르가 긱스 위에 올라와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다. 하지만 과연 아자르가 더 훌륭한 선수일까? 긱스가 지금 시대에 있었으면 오히려 더 훌륭한 선수가 되었지 않을까? 하지만 요즘 난 아자르에게 없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왜 아자르가 그렇게 햄버거를 먹고 경기 전 맥주를 과음하고 마리오카트 게임을 즐기고 모바일 게임을 즐긴 이유를 말이다. 바로, ‘결핍’ 이 없어서이다. 난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반대항전이든 학년 대항전이든 선발로 출전하는 것을 즐긴다. 내 포지션은 CDM인데, 카세미루의 레알마드리드 플레이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상대적으로 공격도 해야되고 수비로 상대의 역습을 끊어야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거친 플레이가 나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만 태클이 깊게 들어가면 사과하고 끝내면 될걸 굳이 넘어져서 일어나지 않거나 걷어낸 롱킥에 얼굴을 맞으면 울다가 경기가 중단되기도 하는 걸 보면, 나도 2011년생이긴 하지만 참 뭐라고 해야되지, 하는 착잡한 마음이 든다.
예술은 시대에 따라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따라 창조된다는 쪽에 난 손을 들어주고 싶다. 사실 중세시대 장황한 벽화들을 그려내던 화가들이, 유화 물감으로 잔뜩 돈자랑할 물건들을 그려내거나 명암법을 사용해 감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던 근대 화가들이나 인공 안료가 튜브에 들어있는 물감을 이용해 그림을 창조해내던 현대 화가들과 비교해서 그들을 절대 뒤쳐진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상황별로 성공을 만드는 것은 개인이다.
2010년대는 일반인조차도 프로 스포츠선수들의 식단을 보고 단백질을 얼마나, 칼로리는 얼마나 섭취해야하는지를 보고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운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기에, 내 안에 숨겨진 재능과 그걸 보충할 노력이 있으면 충분히 한국산 야말이 될 수 있어도, 결핍이 없고 잃어버릴 것이 너무 많기에,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장편소설 ‘스노볼 시리즈’를 통해 알 수 있다. 소설 스노볼 시리즈에서는 작중 빙하기가 도래해서 세계가 얼어버린 가운데 이본 미디어그룹에서 제공하는 스노볼에 들어가 살려면 특기를 살려 액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드라마를 보는 대가로 전기발전소에서 노동을 하며 지내야 한다. 그렇기에 초밤은 디렉터나 액터가 되려고 노력하고, 같은 마을 친구들이나 재수탱이 반장마저도 그런 꿈을 꾸는 것이고 잃을 것이 없기에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에는 그러한 노력이 없기에 더 이상 그런 예술가나 이런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이라는 것은 결핍 유무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결핍이 있고 무언가 잃을 것이 없는 개인의 도전과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갈망이 응어리진 것이 바로 창조된 예술이다. 긱스가 성공하고 호날두가 성공하고 메시가 성공한 것은 모두, 그들이 평범한 가정이 아니라 매우 불우한 가정이었다거나 가난한 가정이어서, 축구를 못해도 살길이 있는 아자르와 다르게 살게 없었기에, 그들은 성공할 수 있었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굶어 죽듯이, 그들도 똑같이 그랬다. 결핍유무. 이것이 바로 잃을 것이 없는 개인의 도전과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갈망이 응어리진 창조된 예술을 만들 수 있는 소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