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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너

by 제이티

백지원


어렸을 때 애완동물 같은 존재를 키우면 점점 우리들이 자라나면서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숨이 붙어있는 한 생명체를 자신이 키우고 돌보면서 생기는 책임감과, 보호능력 등등이 우리가 커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하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애완동물을 키운 적이 있다. 물론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작은 상태였다가 단숨에 커지는 그런 생명체는 아니고, 작디작은 햄스터 한 마리를 키웠다. 많은 종류 중에서 골든 햄스터라는 종을 키우게 되었는데, 가장 순한 종답게 핸들링이라는 하나의 조련에 시간을 오래 들이지 않아도 금방 손을 탈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내 나이는 아마 4학년 때였을 텐데 아무래도 가장 뚱뚱하고, 친화력이라고는 하나 없는 나이였다보니 충분히 외롭다는 감정을 느껴갔으며, 그 탓에 내 옆에 있는 존재에게 어쩌면 하나의 집착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그 조그마한 햄스터가 내 손에 올라올 때마다 웃음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햄스터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1년 채 안 지나 내 옆에서 떠났다. 사실 내 햄스터가 내 옆을 떠난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그건 나의 무책임과 섣부른 행동 때문이었다. 너무 슬프고 죄책감이 들어서 아무에게 말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 햄스터를 내 손 위에 올려두었을 때, 딱 한 번 내 손에 힘이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또 내가 어릴 때 부모님들이나 사촌들이 ‘비행기’ 라는 놀이를 해주었는데, 정말 어리석게도 그 행동을 햄스터에게 해준 적도 있었다. 원래 흥분과 같은 감정을 절제하지도 못하고, 잘 다스리지 못하는 성격이다보니 그 행동을 딱 한 번 해주었을 때, 내 기억으로는 꽤나 높이 올려준 것도 같았다. 그래서 나는 햄스터가 밥통 위에서 쓰러진 모습을 보자마자 단숨에 느꼈다. 내 탓인가 하고 말이다. 내가 비행기 라는 놀이를 즐기면서 느낀 행복한 감정을 그 햄스터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4학년의 나는 얼마나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세삼 느끼게 되었던 계기였다. 그 뒤로 약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햄스터가 떠오르면 잠에 들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이면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다. 다시 만나면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만을 가진 채로 세월과 어리숙했던 나의 존재를 미워했다.


이로써 내가 처음 느낀 이별 경험은 건강하지 못했다고 결론 지어야 할 것 같다. 사실 햄스터 친구와의 추억이 깊다보니 더 아픈 이별이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변에서 듣기로는 이름을 알게 되면 그 때 처음으로 친분이 상승하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몇 년 전부터 계속 그 햄스터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친했다고 말하기도 뭐하다. 나한테 그렇게나 소중한 존재였는데도 애들이 햄스터 이름이 뭐였냐고 물어보면 모르겠다는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도대체 추억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이별을 이렇게나 찝찝하게 만들고, 깔끔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

책 리버보이에서는 주인공이 돌아간 할아버지와 함께한 세월들을 바다속에서 되짚어가며 추억을 회상한다. 그리고 환상 속 리버보이는 “아름답지 않은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겠지” 라고 말하며 죽음에 관해서 설명한다. 죽어가는 과정이 왜 아름답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허약해진 얼굴 때문이라기보다도 앞에서 말한 추억 때문일 것이다. 만약 드라마나 영화, 책에서든 한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있을 때, 보통 많은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과거를 회상한다. 과거를 되감아보고, 추억을 다시 하나하나 쌓아본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들에게 있어서 더이상 쌓을 미래는 없기 때문에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책 영원한 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주인공은 과거에서 보았던 사막여우와 재치있는 그를 그리워한다. 가상세계로 돌아가 자신이 좋아했던 과거를 보려하고, 그로인해 그 때의 감정을 느끼려 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의 이별은 추억으로 인해서 이별을 붙잡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어린아이가 집에 돌아갈 때는 놔줘야 하는 풍선을 놓지 못하고 끝자락을 잡고서 갈등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추억이란 풍선은 어차피 때가 되면 터지거나 바람이 빠져서 버리게 될 물체인데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바람에 미련이 남아서 끝까지 가지고 싶은 것이다.


그럼, 과연 동물 복제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다시 건강한 모습을 되찾게 만들어줄까? 죽은 동물이 보고싶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애완동물이 아무리 진짜가 아니라도 비슷하게나마 내 옆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자신의 동물을 복제시킨다. 나도 사실 잠자리에 들기 전, 나의 햄스터를 떠올리면서 다시 내 옆에 와줬으면 하는 생각이 없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과 다르게 남들에게 무시받지 않는 성숙해진 지금의 모습으로는 전에 저지른 실수와 허점을 보완할 수 있으며, 더 많이 사랑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가장 불가능한 방법인 생명이 되살아나는 법을 고려할 정도였다. 아마 내가 그 친구의 이름을 더이상 떠올릴 수 없는 이유는 너무 아프지만 돌아갈 수가 없어서 다시 처음처럼 이름조차 모르는 관계가 되기를 바라다보니 생긴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나는 다시 그 친구가 복제된 채로 내 앞에 나타났으면 하고 바라지 않는다. 우선 복제를 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몸에서 24시간 내에 DNA를 추출해야하며, 복잡하고 힘든 과정 탓에 희박한 확률이 아니고서는 거의 완벽하게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쌍둥이만큼은 닮지 않았고, 형제자매라고 하면 속을 만큼 닮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걸린 점은 24시간 내에 DNA를 추출해야한다는 점이다.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과연 우리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느냐가 바로 문제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 아이가 죽었는데, 복제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우울하고 복잡한 감정들에 의해서 당연히 그 일에 찬성하지 않을까?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라는 책에서 소녀 이치노세 쓰키미는 항상 기차역을 향해 달리며 죽음과 가까워지려 하고, 아이바 준은 그 여자아이를 구하려고 한다. 준이 계속해서 시간을 돌려서 그 여자아이를 구하려고 하는데,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시간 범위가 제한 없이 자유로웠다면, 또 준의 수명이 3년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름하나 모르는 그녀를 구했을까? 그 또한 아마도 뉴스에서 본 이야기를 보고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서 그 사건이 끝나기 전에, 그리고 자신이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시간 범위가 앞으로 당겨지기 전에 구하기로 마음먹게 된 것이다. 고작 그 복잡스러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현시대에 이 상황을 대입해보면 시간이 지나고 나면 허무할, 그리고 이득 하나 없는 일거리이다. 또 그의 남은 3년을 아무리 재미가 없다고 해도 그렇지, 남을 위해 쓰게 된다면 그 당시에는 좋겠지만, 곧 그 감정이 사라질 것이다. 이처럼 과연 즉흥적이고, 너무나 단순하기만 한 이 감정을 믿는 것이 맞는 것일까?

또 푸른 머리카락 이라는 책에서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그 사람과 닮은 물체가 나와 대신 역할을 해주는 ai 서비스를 신청하고, 기간이 다 끝났다는 말이 나오면 그 사람들은 급하게 다시 신청하기 위해 애를 쓰거나, 기간을 좀 더 오래 늘리기 위해 애먹을 짓을 한다. 그 사람이 또 옆에서 사라져버릴까봐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런 반복은 마치 힘들어도 계속 돌아가는 쳇바퀴 때문에 쉬지 못하는 햄스터가 된 느낌을 준다. 죽이고 싶은 아이 2 에서 서은이의 엄마가 지주연을 서은이와 대입시켜서 밥을 먹였지만, 결국 이런 반복과 예전의 감정에 휘말리는 것이 싫어서, 그리고 위에서 바라볼 서은이에게도 미안해서 진수성찬의 밥상을 마지막으로 지주연과의 교재를 멈춘다. 현재를 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아마 건강한 이별은 현재를 살고 이겨내면서 버텨야만 오는 것 아닐까 싶다. 나도 이름 모를 햄스터에게 미안하지만, 현재로 다시 불러들이지 않게 조심하고 있으며,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만으로도 감사하며 살 뿐이다. 이것이 나에게 가장 건강한 이별이 되는 과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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