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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돌아올게

by 제이티

홍지호



나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같은 자리에 우둑커니 서 있다. 때로는 나뭇잎이 붉게 물들기도 하고,떄로는 탈모가 온 40대 아저씨처럼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런 나무는 내년,내후년에 다시금 같은 자리로 오면 마치 어제 봤다는 듯이 이전과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나무 그대로 서 있다. 인간의 삶은 나무에 빗댈 수 있다. 나무는 계절마다 파릇파릇한 나뭇잎부터,붉게 물든 난풍잎에서,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모습까지. 여러 모습들로 우리들을 반기지만 나무의 뿌리는 늘 똑같은 흙과 땅에 박혀 누군가가 밑둥을 짜르고 나뭇가지를 마구 절단 내도 뿌리만큼은 깊게 박혀 남아,다시금 우리가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 돌아와 준다.


‘순간 진짜 할아버지에게 안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착각은 잠시 뿐이었다. 가짜에게서 나는 할아버지 냄새가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에게는 잘 발효된 통밀 비스킷 같은 냄새가 났었는데 나는 그 냄새가 좋았다. 안타깝게도 로이 서비스는 고인의 냄새까지는 복제하지 못하나 보다.’ 나는 사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기억이 많지 않다. 끽해봐야 친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룬 게 전부이다. 그만큼 나는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 확 와닿지는 않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막연한 불안함이 존재했다. 내 곁에서 복숭아 껍질을 까고 계시는 할머니가 누워 있는 안방에서,컬러 사진이 아니라 흑백 사진으로 존재할까봐. 할머니가 이 세상에 사라지면 나는 더 이상 컬러 tv를 볼 자신이 없어서. 그래서 내 세상이 할머니의 영원한 실종과 함께 검은색으로 칠해질까봐. 주무시던 할머니를 꺠워 엉엉 울었다. 그런 나를 할머니는 꼬옥 안아주셨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말이다.


그 때의 나라면 나는 로이 서비스를 신청 했을 것이다. 할머니만 쓰는 샴푸에서 할마시 냄새라고 불리는 약간의 촌티가 나면서도 익숙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냄새까지 재현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신청 했었을 것이다. 한시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지호의 어머니도,할아버지의 자식들도 그래서 로이 서비스를 신청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주름 지고 반점이 있는 할머니의 꺼끌꺼끌한 손이 뭐가 좋다고 더 만져 보려 필사적으로 신청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살아 생전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다. 많은 털과 백옥같은 털 색을 가진 포메라니안 벤지. 아직 이건희 회장이 흑백사진으로 장식 되기 이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벤지에게서 이건희 회장은 후회를 했다고 한다. 아마도 더 잘 키울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였지 않나 싶다. 벤지를 먼저 보낸 상실감에 펫로스가 가슴 깊이 뿌리 박힌 이건희 회장은 다시 한번 벤지의 고운 털을 만져 보기 위해서,이건희 회장 자신의 얼굴을 서슴 없이 핡아주던 벤지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복제를 시도하게 된다. 그런 이건희 회장은 벤지 2호와 3호,4호까지 복제되었다. 이건희 회장은 벤지 그 자체를 원했으나 아무리 한국의 최고 부자인 삼성그룹의 회장이였더라도 가을 다음 겨울이 오는 당연한 수순을 바꾸려 가을에서 여름으로 바꾸려는 여파는 벤지를 있는 그대로의,박힌 뿌리 그대로의 벤지로 존재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내 생각에는 조금은 후회했으리라 생각한다. 아무리 똑같은 유전자를 복제한다고 한들 벤지와 벤지 4호는 다르니까 말이다. 마치 캐번디시 바나나의 뿌리만 떼서 심는다고 하더라도 무언가가 더 단 바나나가 존재하듯 벤지 4호에게서는 벤지 특유의 꼬순내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가끔 내가 하루 아침에 눈이 핑 돌고 심장이 뜨거워지며 숨을 헐떡 거리고 곧장 죽을 거 같다고 한다면,그러니까 내가 흑백사진으로,영정사진으로 박제될 날이 온다면 나의 죽음은 어머니에게 할머니에게,친구들에게 가슴 아픈 죽음을 남을 수도 있겠지만 로이 서비스는 신청하지 않아줬으면 하는 바램이 존재한다. 복제를 하지 않아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저 어머니와 친구들이 계속 나무처럼 그 자리에 남아 있어줬으면 좋겠다. 나무가 계절마다 꺼내 입는 나뭇잎의 옷이 달라듯이 나도 눈이 돌고 겨울이 오면 때로는 조용하게,때로는 격렬하게 겨울을 보낸 후 끝나는 게 아니라 봄에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게 된다. 나의 눈 색깔이 파란색일 수도,나의 성별이 여자일 수도,키가 작을 수도 있으나 구불구불한 뿌리를 따라 다시 자라난 나무는 육안으로 알아 볼 수 없을 지언정 마음으로 알아 볼 수 있다. 마치 로이 서비스를 신청한 자식이 냄새만 맡고도 할아버지의 품에 안긴 게 착각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 낸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되도록이면 반려동물의 복제를 안 했으면 한다. 당신은 인생은 한번뿐이라고 생각하는가. 적어도 나는 아니다. 강의 저편이 바다고 바다에서 태양에게 쬐여져 수증기가 되어 하늘 위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비가 내려서 물방울이 되고 다시금 강물이 되듯이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로 늘상 다른 모습이지만 같은 뿌리를 하고 있기에 말이다. 드라마 ‘구미호뎐‘에서 이연은 1000년 전 자신의 사랑인 아음이 죽어 방황하지만 언젠가 아음이의 안에 있던 여우 구슬을 가진 아음이의 환생이 탄생하기만을 기다리며 그렇게 남지아를 만나 다시금 1000년 전의 사랑을 이어간다. 이처럼 인간은 다시금 태어나고 나무는 뿌리가 존재하는 한 다시금 화려한 나뭇가지를 뻗어 나가기에. 복제를 할 필요도,로이 서비스를 신청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나만 이 자리에서 그가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기만을 기다리면 될 뿐. 그게 아름다운 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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