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된 사랑
백지원
- 허락된 사랑
나의 사랑은 단수였던 것 같다. 두 사람 다 좋아하지는 못하고 한 사람만 좋아하는 상태 말이다. 사랑은 등가교환이 안 된다는 걸 이런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걸지도 모른다.
책 인생의 베일에서도 이 문장이 나온다. ‘내 사랑은 단수였다.’ 요즘은 사랑이라는 것으로만 살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혼자만 좋아하는 경우는 더욱 더 말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둘이 서로 좋아하는 것의 문제보다는 연애는 물론, 늙기 전에 하는 결혼이 그렇게나 중요했다고 한다. 아무리 둘 중 하나만 좋아하는 관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신의 딸이 돈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 되어있는 그 시대의 부모들을 보면 얼마나 시집이라는 것이 신중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 알 수 있다. 책 인생의 베일에서도 마찬가지로 주인공 키티의 어머니는 20대 안에 조건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지 못한 키티를 보며 자신의 기대를 져버린다며 크게 실망한다. 이렇게 재력있는 누군가와 결혼을 하는 것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당연히 물려받을 재산이 있기 때문이다. 재산이라는 것 자체가 일을 하지 않아도 순식간에 통장으로 들어와주는 가장 편하게 얻은 돈이다. 딸이 가장 아름다울 때인 20대가 지나기 전에 얼른 결혼을 시키려 하는 이유는 그녀들이 30대가 되었을 때, 젊지 못한 삼촌 느낌의 사람들이나 혹은 별로 좋은 직종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결혼하기 위해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장 값비싼 사람들이 얼굴과 몸매만 보고 들러붙을 20대 때 부모들이 가장 바쁘고, 외적으로는 늘 착하고 교양있는 모습을 장착한다. 현재의 재벌가들도 서로 자신들처럼 돈의 여유가 있는 사람과 함께 교재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예전에는 훨씬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 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예시로는 이건희 회장 딸의 자살사건을 생각할 수 있다. 돈이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과 몰래 연애를 하다가 걸린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서 떨어져야만 했었는데, 서로 같이 하지 못하는 외로운 상황에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슬픔이 컸는지 그만 극단적 선택을 해버렸던 사건이다. 이 기사를 듣고서는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었다. 사랑이 이렇게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며 말이다. 재벌들은 꼭 재산을 불릴 수 있는 자들과 결혼해야하며, 평범한 사람들은 꼭 그 위에 있는 사람들과 결혼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다보니 너무나 비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치 예전의 신분제가 뚜렷하게는 없지만,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 공간에서는 형태를 흐리게나마 잡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결혼이라는 제도에서는 더욱더 말이다.
물론 옛날에는 여자는 직업을 가지지 못했으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수녀 일이나 집안일이 전부였기 때문에 직업이 높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졌을 지도 모르겠다. 또 그 당시의 여성들은 할 일이 없고 노동도 없으니 사랑이라는 것에만 목을 매달 수 밖에 없었다. 책 인생의 베일에서는 윌터가 콜레라가 퍼진 나라에 가서 노동을 함으로써 사랑에만 목말라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살 이유와 의미를 남들을 치료하고 구하는 것으로 여기면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키티의 경우는 결혼이라는 자신의 의무 하나 빼고는 전혀 자신이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가 없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의무도 없으며,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일도 없었다. 자신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저 ‘결혼’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와 다르게 지금 현재를 보면 여자들도 충분히 일자리를 잡을 수 있고, 점점 집에서 나눠지는 역할도 조금씩 바뀌면서 여자의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점점 동등한 위치에 서 있는 것 같다가도 여전히 ‘제육이나 볶아온나’ 와 같은 문장들로 인해서 신분제라는 형태가 무너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여성이라는 성별은 남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역할로 비춰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키티는 자신이 완벽히 수행해야 하는 결혼이 아닌 정말 끌려서 하는 결혼을 매력이 많은 남자와 하기위해 바람을 피게 된다. 이러한 상황도 지금의 문명에 따르면 범죄처럼 여겨진다.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애정이란 한 털도 느끼지 못하는 그녀가 남과 바람을 피는 건 어떻게 보면 본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모든 사랑은 애정은 하나 없는데 돈이 있는 윌터와 하는 것보다는 감정에 의해서 이끌려버린 찰스와 하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 충동적인 감정에 의해서 사랑이 시작되는 프로이트가 아마 가장 행복하지만 세상이 허락해주지 못하는 금지된 마약 아닐까 싶다.
나는 키티를 이해한다. 돈으로만 사귄 그와 살면서 일만으로도 살 수 있는 그대에게 자신의 의무가 없어진 자신은 너무나 비참하게 보일 것이다. 남들은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척 해야한다며 그녀를 죄 지은 사람마냥 몰았으니, 그녀도 당연히 감정에 의해 시작된 사랑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진짜 사랑은 감정이지만, 세상이 허락하는 사랑은 돈이라니, 너무나 각박한 세상속에서 나는 키티를 감싸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