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베일 서평
박재영
브루노 페르난데스는 1994년 9월 8일 포르투갈 포르투현 마이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아비스타 FC에서 유소년 선수로 활동했고, 그가 성장한 이후 노바라 칼초, 우디세네 칼초, 스포르팅 CP를 거쳐 마침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가 처음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2019/20 시즌 이후, 2021/22 시즌 다소 부진하긴 했지만, 여전히, 언제나 공격형 미드필더, 텐하흐 체제 아래서 공격진들이 부상에 시달릴 때는 공격수로도 활동하며 1인분은 해주었던 선수고, 때로는 2인분, 어떨때는 거의 팀을 혼자 운영한다고 봐도 될 정도의 활약을 보이던 선수였고, 자연스럽게 팬들은 ‘저 선수는 당연히 언제나 저렇게 뛰어줘야 한다는 선수’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지난시즌, 브루노 페르난데스는 10득점 8도움을 기록해, 무너져가는 맨유를 구해낸 주장이 되었다. 또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예선에서 탈락하게 되었지만, 2득점 2도움을 기록했으며, FA컵에서도 3득점 3도움을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쳐주었다. 그러나, 브루노는 리그에서는 38경기 중 35라운드를 선발출전했고 챔피언스리그는 6경기 선발출전, FA컵도 6경기 선발출전이라는 체력적 혹사를 겪었다. 이게 어느정도 수치냐면, 친선경기까지 합치면 48경기 출전 4,300분이라는 가혹한 출전시간을 견뎌야 하는, 그야말로 과로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치인 것이다. 그리고 프리시즌에도 친선경기로 제대로 휴식하지 못했고, 22/23시즌에 브루노는 5,100분을 출전했으며, 이러한 수치들은 모두 국가대표 경기를 제외한 수치다.
그리고 이번시즌, 브루노 페르난데스는 결국 어느 순간에는 터질 것 같았던 체력적 문제로 인한 끔찍한 부진을 겪게 되었다. 현재 리그 4경기를 치른 상황에서 0득점 1도움이라는 브루노 답지 않은 수치를 기록했고, 크리스털 팰리스 전의 골대를 맞춘 위협적 프리킥을 제외하고는 계속 공격의 흐름을 끊고, 퇴장을 당하며, 답답한, 아무도 없는 곳에 계속 크로스를 올리며 엄청난 부진을 겪고 있다. 현지 맨유 팬들 역시 대부분 브루노를 동정하고, 가혹한 출전에 대해 최악의 감독 텐하흐를 비판하지만, 일부 팬들은 브루노에게 등을 돌렸고, 한국의 축구 매체나 SNS 댓글, 나무위키 같은 매체들에서는 브루노를 그다지 동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브루노의 가혹한 혹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맨유를 사랑해 FA컵 결승전 당시 장문의 편지까지 써서 올리던 브루노를, 당연한 사람으로 여기고 그의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지 모르겠다. 마치 소설 ‘인생의 베일’ 속 월터가 키티에게 주었던 투박한 사랑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남자를 쫓아다니던 키티처럼 말이다.
소설 ‘인생의 베일’ 속 키티는, 젊은 시절 결혼하지 못하자 촉박감을 느끼고, 투박하지만 키티에게 헌신하는 월터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월터는 언제나 서툴렀고, 항상 사랑하는 사람을 부드럽게 다뤄준다기 보다는 집에 방문한 손님을 예의바르게 대접하듯이 행동하며, 아프면 정성들여서 간호하고, 때로는 선물공세를 퍼붓기도 한다. 한마디로, 학창 시절 공부만해 결국 의대 진학에 성공했지만, 대인관계가 미숙한 ‘전문직’들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키티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사교계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어머니의 독촉과 촉박감으로, 원했던 귀족, 고위직의 젊은 남자들이 모조리 떠나가고 40대, 50대 늙은이들이 키티를 원한다는 것을 어머니와 키티 모두 깨닫자, 원하지는 않았지만 눈을 낮춰 전문직, 월터와 뜻하지 않은 결혼을 하게 된 것이 키티였다. 그러나, 작중 월터가 모든 진실을 깨닫고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사랑, 애정을 키티에게 주지 않자, 키티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월터에게 상실감을 느낀다. 월터는 키티를 사랑했던 자기 자신을 경멸하게 되고, 결국 죽을 위기에 처하는 콜레라 감염지역에 자원해서, 키티까지 같이 동반하는 복수를 계획하고 실현한다. 키티 역시 처음에는 그러한 월터의 행동에 반발했지만,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고 오직 세속을 추구하는 자기 자신과 달리 무언가 영적인 믿음을 가진 수녀들을 동경하며, 결국 집에서 무직으로 쉬고만 있던 그 키티가 고아원이나 병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노동’을 시작한다.
물론 그 뒤에 줄거리를 읽어보면, 자아를 찾았다는 것일 수도 있고, 저자가 노동이라는 것은 키티가 그동안 생각하고 월터에 대해서 불만을 느끼던 것은, 무료함과 권태가 합쳐져, 결과적으로 노동하지 않은 키티가 이러한 사래를 초래했다고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의 핵심은 어쨌거나 ‘자아’를 찾는 행위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키티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어보고 싶다. 키티는. 월터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나는 그러한 심리가 어쩌면 자아를 이은 이 책의 두 번째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키티처럼 아침 드라마에 버금가는 촉박하고 급박한 상황을 통해 이러한 경험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우리 삶 모든 곳에서는 그런 호의와 헌신, 활약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다른 가정의 부모님들 역시 그러시겠지만, 나의 부모님께서는, 엄마는 아침 7시에 출근하기 전, 5시에 일어나셔서 아침을 준비하시고, 퇴근하고 와서도 저녁을 차려주시며, 하루에 한번도 쉬지 않으신 날들이 많은 것 같다. 아버지 역시 평일에는 계룡에서 근무하시지만, 토요일 새벽 2~3시에 일어나셔서 주말에 계룡에서부터 우리집으로 오신다. 그리고 주말에는 같이 축구를 하거나 운동도 하고, 나와 시간을 온전히 보내다가 월요일 또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계룡으로 복귀한다. 나는 그동안 키티처럼 그런 부모님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때로는 아빠가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서 축구대회를 하는데 나를 지원병으로 부른다고 해서, 신가드와 장비들을 사놓고 기대하고 있었지만, 반대하는 바람에 계획이 무산되었을 때 아빠에게 짜증내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학원 끝나고 엄마가 저녁을 차려놓았지만, 거의 안먹고 남긴 적도 많다. 그런 당연하게 여기는 심리는, 우리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본성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내가 우리 부모님의 희생, 헌신을 어느 순간 당연히 여기게 된 것처럼, 또 맨유의 팬으로써 꾸준히 경기를 보면서 브페가 3인분, 4인분급의 활약을 하면서, 브루노는 저런 선수, 라고 여기게 된 것도, 키티가 월터의 투박하지만 꾸준하고 애틋한 사랑, 선물공세, 애정을 어느순간부터 월터는 원래 저런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면서 점차 월터에게서 시선이 찰스에게로 집중되어갔다. 이러한 본성을 제어하는 방법은, 나는 결핍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베일’ 속 키티가, 월터의 사랑과 애정이 사라지고, 더 이상 고급스러운 생활이 없어지고, 고아원에서 힘들게 일하는 수녀들을 보면서, 결핍을 느끼고 쓰레기처럼 호의를 받아먹기보다는 쟁취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처럼, 인간이라는 것은 무언가가 없어야 소중함을 깨닫는 것 같다. 올해 엄마가 일이 많아져 반찬의 가짓수가 점점 줄어들고, 혼자 꺼내서 먹을 때도 있다. 아빠가 일 때문에 오지 않으면, 대부분 친구들이 학원에서 10시까지 자습으로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가운데 같이 경기할 21명, 아니 같이 축구할 8명도 찾기 힘든 상황에서 그냥 나가지 않는 날이 점차 많아지는 가운데, 아빠도 오지 않으면 그냥 벽에다가 공을 차면서 슈팅이나 프리킥, 혼자하는 트래핑 연습만 해야 한다. 아빠가 끓여주는 라면도 먹을 수 없고, 주말에는 혼자 그냥 플레이스테이션만 하게 되었을 때, 같이 시간을 보내 줄 수 있는 부모님, 밥을 차려주는 부모님의 소중함을 느꼈다. 브루노는 맨유의 아버지다. 언제나 맨유의 방패가 되어주었고, 맨유를 구했다. 하지만 텐하흐와 우리 레드 아미들은 그 고마움을 그저 당연한 일로 여긴 것 같다. 브루노의 FA컵 결승 출사표도, 활약에 비해 적게 받는 주급도, 그런 것을 모두 당연하게 느낀 우리 맨유는, 아버지 브루노의 소중함을 느껴봐야, 무언가 제대로 굴러갈 것 같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