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
얼마전 날이 조금씩 시원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우리 학교에서는 중간고사를 치뤘다. 그리고 그 중간고사의 결과에 따라 누군가는 학원에서 엄청난 칭찬을 받으며 심화반으로 상승했고, 누군가는 그 중간고사의 결과에 따라 세상이 무너진 듯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거나 벽에 머리를 정신병자처럼 계속 박으며 고통스러워했다. 이번 시험 난이도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수학에서는 세세한 풀이 하나까지 전부 점수가 차감되었고, 상대적으로 쉬웠던 사회역시 그런 방법으로 객관식 만점을 받은 나를 괴롭혔다. 사회에서 ‘문화의 보편성’이라는 전체적 키워드는 들어가 상당 점수를 얻었지만, 성인식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 잘못 설명했고 그렇기 때문에 감점 몇 점, 이런 식으로 세세하게 나눠진 감점 기준 때문에 교실의 분위기는 과목 선생님 한 명이 들어왔다 나갈 때마다 희노애락이 가득한 분위기였다. 어떤 애는 그 과목의 선생을 저주하고, 밤길 조심하라며 죽인다는 살인예고까지 하고, 벽에 머리를 박으며 자해하는 애들도 있었고, 우는 애들도 있었지만 그 반대로 오히려 이러한 점수로 가산점을 받은 애들은 환호성을 부르며 그 과목의 선생을 환영하고, 앞으로 그 수업시간에 잠을 자지 않겠다고 외쳤다.
이번 2학기 중간고사부터는 본격적으로 성적에 A,B,C,D가 들어가는 시험이다. 수행평가도 마찬가지다. 1학기처럼 그저 단순히 세부적 특기사항 위주로 기입해 주는 것이 아닌, 성적을 A,B,C,D로 나누어서 기입하는 것이 바로 올 학기의 시험방식이다. 또 교육부에서는 이번 2024학년 2학기를 ‘생각의 힘을 키우는 학기’라는 명칭을 붙이고, 모든 시험에 서술형을 반드시 20% 이상 배점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이러한 감점이 나왔고, 애들의 희노애락 또한 이러한 ‘생각의 힘을 기르는 학기’라는 정책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리고 이번 시험이 그다지 배점이 높지 않고 수행평가의 비중이 더 컸다면, 상대적으로 점수에 집착하지 않는 이상 학원이나 집에서 철퇴를 맞을 가능성은 적었을 것이고, 이번 시험의 리스크 역시 그다지 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험의 결과로 고등학교 입시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고, 한번에 이번 시험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그러한 경향이 늘어났기 때문에 각 과목 선생들에게 살인 예고까지 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동양적 교육관의 폐혜를 바로 (가) 지문에서 다루고 있다. (가) 지문에서는 교과서를 뒷전으로 생각하고 모든 힘을 문제풀이에 집중시키도록 되어있는 수능의 폐혜 때문에, 점차 대학의 입시를 수시 위주로 전환하고 있는 현 추세에 대해 “한 번의 시험으로 앞으로의 인생이 전부 결정되는데, 한때 성적이 좋지 못했다고 해서 역전의 기회를 주지 않는 수시 위주 대학입시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이어서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는 공개채용 없는 정귲기화는 청년선호 일자리를 독점하겠다는 것, 이라며 힘든 입사시험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제도에 대한 반발을 들어냈다. 반면 이러한 시험이 수시에서 실패하거나 교사와의 불화로 공정한 성적 평가가 어려운 아이들에게 ‘패자부활전’ 이 되어줄 것이라거나 성적순으로 입사시험을 통과하지 않고 바로 정규직 채용에 대한 불만을 가진 노조는, 시험이 공정하고 사회를 잘 평가해줄 수 있는 중요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반면, (가) 지문에서는 이와 반대되게 대한민국의 오랜 폐단인 연공서열제, 성차별, 및 성적에 따른 채용이 아닌 나이에 따른 채용, 친분 채용 등 5급 공무원으로 바로 선발되어 일할 수 있는 행정고시에 대한 비판을 다루며, 전체적인 한국의 채용 및 입시 제도에 대한 상극되는 주장들을 (가) 지문에서는 다루고 있다.
사실 이러한 제시문 (가)에서 다루고 있는 핵심 문제는, 위의 사례가 아닌 바로 모든 전력을 시험에 ‘몰빵’하고 모든 칩을 다 시험에 거는 것이 개인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명문대에 진학하고 정규직에 안착하고 고시에 합격하는 것과 같은 성취에 실패했을 때 ‘잃어야 하는 대가’는 어마어마하다. 시험에서의 성취를 인생 최대의 노력의 대가로 여기는 ‘시험 합격자들’이 ‘패배자’들을 손가락질하고 차별하면서 ‘공정하다’고 우기는 것도, 이런 ‘올인’, ‘몰빵’ 할 수 밖에 없는 ‘쏠린 사회’ 속에서 나온 현상이다. 그 결과는 결국 제시문에서 시험 만능주의라고 주장했다. 돈 있는 학부모들이 고급 컨설팅 학원에 아이를 맏기고 학생부를 관리해달라 요구하는 것역시 시험 만능주의에서 고교 3년을 입체적으로 평가하는 학종에서 또다른 시험만능주의를 찾는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험 만능주의는 .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생활을 열심히 한 아이들에게 명문대에 갈 기회를 주는 것이 옳지 않다”면서 패자부활의 기회를 요구하는 주장이 나오는 억지가 바로 한 시험에 결려있는 판돈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이 우리 나라에서 창의적인 인재가 나오지 않는 상황의 원인이고 밑바탕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서양의 대학교나 서양의 사회를 보면, 메시나 호날두 같이 한번 세계를 쾅하고 터트릴 수 있을 만한 인재들, 천재들이 수 없이 양성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포르투갈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로, 엄청난 축구 재능을 가진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면 어떨까? 서울 인근 공사판이 아니라, 원양어선을 타고 머나먼 곳으로 떠나야 하는데다가 번 돈은 모두 알코올 중독에 걸려서 소주를 사는데 써버리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면 말이다. 초등시절 놀라운 축구 재능을 보여주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K-리그 유스팀에서도 몇 군데 연락이 오겠지만 그 아이의 가정환경이나 플레이 스타일이 유교적으로 나이 많은 에이스나 선배들에게 패스를 하는 것이 아무리 후배가 잘해도 그것이 후배의 역할이라고 믿는 우리나라 축구판에서 그러한 어린아이가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리고 어려운 가정 환경 때문에 그 아이는 평생 축구는커녕 자기 아버지처럼 알코올 중독에 걸린 사회낙오자가 되지나 않았으면 다행인 수준이다. 소설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읽어보면 이러한 동양적 교육관의 폐혜가 잘 들어난다. 최고의 수재들이 아이비리그에 입성하기 위해서 공부하면서 그 과정에서 점차 일탈을 일삼는 행동이 소설 속에는 잘 들어나고 있고, 마지막에는 한 아이를 결국 자살이라는 길로 내몰게 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 바로 소설의 줄거리다.
반면 이러한 시험만능주의의 폐혜에도, 반드시 서양적으로 학종 전형으로 아이들을 분류하는 것보다는 동양적으로 시험으로 아이들의 줄을 세우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는 주장 역시 존재한다. 유명 대학 총장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들은 모두 과거의 시험 성적으로 학생들을 대학에 선발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그 까닭을 중학생이 되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나라 사회에서는 참 선생답지 못한 선생들도 많다. 우리 학교만 해도 수업을 대충하거나, 자신의 주관대로 수업을 진행하고 무조건 수행만 시키는, 그러한 선생답지 못한 선생이 많고, 생기부를 들이밀며 협박하는 가장 쓰레기 같은 ‘기술가정’ 선생이 1학년 부장으로 버티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기술가정 선생을 싫어하고, 그 시간에는 모두가 잠을 청하려고 하지만 그 선생은 늘 생기부를 들이밀며 협박하고,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그러한 생각은 단 1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패자부활전의 역할을 수능이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선생들의 존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종 전형은 그 학생의 성적을 고교 3년 동안 분석하며 쳬계적이고 객관적으로 기입해야 하는 사항이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는 주관적인 선생의 그 학생에 대한 인상이 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가) 지문에서 주장한 것처럼 선생과 돈있는 부모들 사이에서 리베이트가 일어날 가능성 역시 높다,
내가 대학교 총장이라면, 나의 학교만큼은 여전히 동양적 교육관으로 학생을 선발할 것이다. 수능에서의 문제 풀이를 문제삼아 그러한 문제 풀이 위주에 맞춰져 있는 선생들에게 학생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써오라면, 당연히 평소의 좋아하던 학생이나 돈 주는 학생은 좋게, 돈을 안주거나 사이가 나쁜 학생은 그 학생의 성적과 관련 없이 무조건 좋지 못하게 돌려쓰는 선생답지 못한 선생들이 많기 때문이니까. 나는, 아직 교육의 세대교체가 완전히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 학종 전형을 쓴다는 것은 시기상조로 본다. 이 세대에서 완전히 기존의 교육관에서 학종 체제에 익숙해지고 서양식 교육관에 길들여진 세대에게 개혁되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