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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지 않는 물

소년이 온다

by 제이티



소년이 왔다. 그 뒤 30년이 넘은 지금, 우리는 서울의 봄, 아니 대한민국의 봄을 누리고 있다. 삼성이 위기니 저출산이니 고령화니 하지만, 이 땅의 5천 년 역사에 들어섰던 모든 나라들 중 세계에 이렇게 강한 영향을 미친 나라는 없었다. 100년 전 입장을 거부당했던 ‘헤이그 특사’ 와 달리 지금 대한민국을 세계 주요국 회의에서 입장시키지 않는일은 상상할 수 없다. 소년이 계엄군과의 대면을 앞둔 시점에 빵과 사이다가 먹고 싶다고 말한 그 눈물겨운 소망이 2024년 현재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들이 너무나 놀랍도록 평범해져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군대에 맞서 총을 들어 가족을 지킬 요구를 받지 않는다. 살아있어야만 했던 사람의 장례식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또한 출중한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공부를 그만둘 필요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우리 모두는 길을 잃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혐오와 비난은, 원래도 모호했던 인간이라는 존재 탐구의 역사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대신해 온몸으로 기꺼이 수행하며 연장하게 한다. 물질과 이익을 앞세워 본질적 가치를 흔드는 이들의 말을 현실적으로 부정할 수 없음을 깨닫는 나 자신이 한없이 역겨워지는 순간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면, 행복은 가까워 오는 것인가.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한강, <소년이 온다> 中


관심을 가지지 마라. 교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소외되는 이들에 대한 모든 사회적 경멸과 조롱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마라. 인간의 마음과 본성에 대해 고민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마라. 어제 남몰래 친구의 불행을 헐뜯고 조롱하며 기뻐했던 나 자신의 양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마라. 무엇이 옳은 일인지, 어떤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말고 선생님의 말을 외워라. 연금개혁, 의대증원, 저출산, 고령화, 남녀갈등, 부동산, 서울 쏠림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마라. 대신 오늘 올라온 BJ의 인터넷 방송에만 집중하라.


‘별풍선’에만 반응하는 그들의 1차원적인 행동에만

집중하라. 인스타그램의 릴스에만 집중하라. 아름다운 것만을, 예쁜 것만을 보여주는 SNS의 유혹에만 집중하라.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들이여.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동물보다 고등적인 사고와 언어 능력인가, 아니면이족 보행 능력인가.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인간다운 것일 텐데, 인간다운 것이 원래 이런 것이었던가? 인간이라는 종족에게 인류애를 느끼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것만이 인간다움의 재료라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 ‘인류애’를 느끼는지 생각해보라.


머릿속에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려 보라. 여러분들의 무엇이 그들을 정말로 사랑하게 만드는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계기는 ‘고통’에서 나온다. 또 ‘죄책감’에서 나오기도 한다. 내가 믿는 사람이 그 두 가지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만큼 인생에서 충만

해지는 순간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떤 군인들은 잔인했지만, 어떤 군인들은 총을 겨누질 못했다. 차마 시민군을 쏠 수 없어서 하늘 위로 총을 쐈다. 그들에게는 ‘고통’ 과 ‘죄책감’ 이 남아 있었다. 고통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 그 해의 5월, 한 사람이 쓴 글에는 이런 말이 적혔다.


‘하느님, 왜 저에게 양심이라는 것을 주셔서 살고자 하는 저의 본능을 이토록 치욕스럽게 만드십니까...‘


군부가 뿌린 마약에 모두가 정신을 잃었다. 고통과 죄책감은 제거되고, 출세욕과 야망만이 남아 그렇잖아도 변변찮은 생명체인 인간을 동물들의 아랫단계로 끌어내렸다. 그러나 모두가 그 마약에 중독된 것은 아니었다. 고통과 죄책감이 마지막 내성으로 남아 그들에게서 인간성을 빼앗지 못하도록 보호하였다.


그렇다면 군인들에게 총을 쥐어준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성을 잃었다. 권력이라는 또 다른 마약에 취해, 평생을 헤어나오지 못하고 죽었다.


무엇이 진실인가. 아직도 5월의 폭력을 ‘빨갱이들의 폭동’ 이라고 칭하고, 지금도 참사의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집단들이 득세할 때, 그들이 취했던 마약은 이미 우리 모두의 폐로 흡입된 것일지 모르겠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지도자는 어때야 하는가.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일말의 양심이 없는 지도자가, 시대의 책임을 회피하는 지도자가 과연 좋은 지도자일까. 지도자는 비범해야 한다. 지도자가 견뎌야 할 것은 비판과 비난만이 아니다. 진실과 옳음을 위해 죽음조차 불사할 수 있는 용기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한 이들에게 분수대의 ‘물’ 은 또 다른 고통이다.


쌓여간 시신들과 흐르던 핏물을 물로 씻어 버리고 여느 때와 같은 삶으로 돌아가겠다는 무책임한 행위

의 공인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품고 있는 이 고통이, 내가 아닌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것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인간성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분수대의 ‘물’ 은 또 다른 죄책감이다.


'아이는 가슴에 묻는 것'이라는 둥,

'교통사고'라는 둥,

'세금도둑'이라는 둥…


그리고 지금 그 배가 마치 거짓말처럼 바다 위로 올라온 이 순간에도 그들은 인양의 비용을 거론하고, 그것은 수학여행길 교통사고였으며, 책임자들은 처벌 받았으니 잊을 건잊으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누군가의 전 재산 29만 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처럼….

그것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날의 분수대에서는 일상처럼 물이 솟아올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JTBC 뉴스룸, 앵커프리핑> 中


우리는 결코, 흐르지 않는 물에 불평해서는 안 된다.

이시우(JT SCHOOL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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