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서평>
백지원
총소리는 탕탕 이라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탕탕, 하고 입으로 소리내어보니 왠지 모르게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는다. 손으로 그 총 모양을 흉내내어 보아도, 그 잔인하고 단단한 물체의 무거움을 느낄 수가 없다. 총알이 날아가지도 않고, 손모양은 한 발이라도 쏘는 척을 하면 금방 총의 형태가 흐트러지며, 입으로 나는 탕탕 소리는 오히려 둥둥하고 나는 북소리가 더 위협적이라고 말해야 해야 할 정도로 약하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서 전쟁이라는 것은 가볍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총을 맞아도 금방 살아날 것만 같은, 그저 게임에 가까운 가벼운 다툼. 그게 현재 우리들이 받아들이는 전쟁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들어본 총소리는 게임에서밖에 들어보지 못했다. 직접 내 장기 속으로 총알이 들어와 꾸물꾸물 그 안을 파고들 느낌도 느껴본 적이 없다. 그저 그 모습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총기에 대한 나의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나와 비슷한 10대 학생들은 대부분 이럴 것이다. 지금 시대는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으며, 나라간의 갈등이 일어난다고 해서 급습이 일어나 나라가 뒤집힐 만큼 큰 일이 발생하지도 않으니 평범한 학생들이 총기를 드는 것은 오히려 당황스러운 상황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5.18 민주화운동과 같은 얘기를 들어도 아무 감흥도,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당연하기도 한 것 같다.
‘남녀노소, 나이불문’ 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많이 포함되는 전쟁이라는 요소. 아무리 학생들에게 동정심이라도 갖게 하기위해 ‘너희와 비슷한 10대들‘ 이라는 말을 무조건 붙여서 교육하더라도, 학생들은 그걸 누가 모르냐는 듯이 지겹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과는 반대되게도 많은 시위와 희생으로 일궈낸 승리를 기념하는 날로 옛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학교와 학원을 쉬는 황금의 공휴일이라는 것으로만 기억한다. 희생으로 이뤄낸 성공을 존경스럽게, 그리고 감사하게 여기는 태도가 아닌, 오늘 하루 늦은 오후까지 잠을 잘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진다. 솔직히 이런 경우도 드물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많은 학생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이 운동을 통해 희생당했다.’, 이 문장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문장이다. 우리와 같이 교복을 입고, 그 더운 풋여름에 끈적한 땀을 흘린다. 그리고 그 끈적한 땀에 진득한 피와 진물이 섞이게 되고, 그들의 건강하고 푸릇한 몸은 한순간에 냄새나는 음식물처럼 밝은 햇빛으로부터 썩어간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들은 동정심을 느끼지도 못하고, 감동을 느끼지도 못하기에 교복을 입고 삶을 끝낸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에 대한 죽음을 자그마한 보상으로 등 뒤 돌 명분을 만드려 한다. 학생들의 목숨값은 수학여행 비용으로 퉁치기에 가장 싸고 질 좋은 상품과 같다고 여기는 듯이 말이다. 성장통도 아프게 느껴지는 어린 몸들이 총을 드는 가장 강인한 마음을 가질 때, 그들은 그 귀한 것의 가치를 가장 싼 값에 사고자한다.
5.18운동 당시,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기로 나중에 생긴 그 구멍나고 흰 뼈가 밖으로 슬쩍 돌출된 시체를 돌돌 감싼다. 대한민국이 강인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가진, 약하지 않은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이 말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책 소년이 온다에서는 희생된 시체에 대한민국 국기를 마음대로 두르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르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조금 더 뒤의 내용에서 나온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거야.’
나는 이 문장을 보면서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국가라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것이다. 국가라는 존재는, 삶의 즐거움과 이유를 바다에서 찾으며 평화를 누리던 소말리아 사람들을 갑자기 그 바다를 범죄의 수단으로 쓰는 해적이 되게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유령 이라는 키워드를 얻게 된 어떤 한 웨이터를 깊은 생각에 몰아넣게 만들었다. 이처럼 국가의 존재는 사람에게 생길 인식을 정하는 중요하고, 가치를 후하게 주지 않는 까탈스러운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시에 국가는 한 인물의 대단함과 필요성을 잘 구별하는 미식가가 되어서 그 사람의 국적을 자신의 나라로 인정함으로써 가장 많은 이익을 얻기도 한다는 것이다. 책 유령아이에서 나온 마이크는 단지 국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회에서 배제당하며 무시당한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만약 그 존재가 쓸모가 존재하게 된다면 갑자기 국적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는 사람들의 쓸모, 혹은 업적을 보면서 중요하고 신중하게 사람을 그저 이익의 대상인 물건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그러나, 책에서 나온 것을 보면 모든 이들은 모든 시체에 대한민국 국기를 둘러서 그 사람의 국적을 당당하게 보여준다. 나는 희생한 그 냄새나고, 상처난 흔적 가득한 모습이 대한민국의 나라던, 그 나라의 국민들이던 모두에게 수치가 아닌 존경을 받는 자랑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 점을 바탕으로 했을 때, 나는 우리나라 국기를 시체들에게 감싼 이유를 위에서 한 번 말했지만, 희생당한 이들의 가치를 고귀하고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그 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사람들이 국기를 시체에 둘러싸면, 당연히 희생당한 그 이가 대한민국 시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이 대한민국 국기는 판매된 책들 밑으로, 작다고 하기에는 표현된 글자가 화려하며 아름답게 써져있어 존재감이 드러나는 출판사 이름과 같은 것 같다. 이 책의 가치와 중요성을 출판사에서 그 소박하지만 충분히 존재감을 띠는 출판사 이름을 써서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띠는 것이 대한민국 국기를 둘러서 이 희생자들의 존재성을 자신감있게 나라의 이름으로 직접 비춰주는 것과 어쩌면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이처럼 책에 나온 문장처럼 이 운동을 통해 많은 피를 적신 희생자들은 고작 까맣거나 하얀 단색의 천으로 덮어 판매될 고깃덩어리로만 보지 않았으며, 나라의 자랑으로 여겼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 그들의 대우는 과거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담은 사람들처럼 관대하지 않았다. 팍팍했으며, 과거를 우습게 여기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들의 가치를 매우 낮게 보았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기를 시체에 둘러주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깊은 생각따위 않고 ‘쓸모없고, 의미없는 일’ 로 여길 뿐이다.
이 5.18 운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면서 자신들이 했던 모든 운동들이 전부 멍청한 짓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니 어쩌면 그 수많은 비참하고 참옥한 대우들로 인해서 세뇌된 것일지도 모른다. 잔인했던 운동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 조차 너무나 수치스럽게 느낄 정도로 그들은 하루하루가 불필요하고 뜻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5.18 운동으로 몸을 희생하더라도, 많은 사회인들은 시민들을 구하는 것보다 이익적인 쓸모를 더 가치있게 여기고, 더 형편없지만 현실적이게 말하자면 값을 높게 친다. 그래서 여러 못이 발톱 손톱에 박히고 빠지며 고통을 선사당해도, 사회에서는 그런 멍과 상처가 가득하여 흉측하고, 컴퓨터 키보드를 잘 치지 못할 것 같은 그 손을 바라보면서 필요없다는 시선으로 가치를 메긴다. 그들의 깊은 사정을 들으려 하지도 않으며, 들어도 ‘그저 과거 얘기’ 라고 치부하며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려한다. 그 희생들이 없었더라면 현재도, 미래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이 나라를 위해서 끝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하였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형편없고, 살아있는 것이 잘못인 사람인 양 판단한다. 뺨을 7대 맞아도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고귀함에 상처를 입는 느낌을 받는 게 아니라, 이 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고귀함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 그렇기에 상처받을 물체조차 없는 상태로 여긴다. 그래서 자신의 오른쪽 뺨을 맞는 와중에도 눈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공허하고, 눈 안으로 깊게 바라볼 무언가의 빛도 없는 안광을 띤다. 그리고 그 행동을 취하면서 자신의 생명은 이 정도에 상처받을 그런 많은 생명력을 가지지 않았으며, 간절함도 없음을 알린다. 차라리 나라가 자신의 국기를 내 시체에 둘러 내 존재와 희생을 가치 있게 여겨준 그 과거 때 죽었으면 그 핏비린내 가득한 희생에 대해 아무런 미움을 갖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사회가 바라보는 그들의 인식과, 대하는 태도는 부운 뺨조차도 걱정하지 않는 차갑고 날이 서기만 한 행동들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몸의 상처를 받고 나서 거의 다 나을 무렵에, 마음의 상처를 받아 더이상 치료되지 않을 병을 앓는다. 끈적한 땀과 피와 진물로 가득했던 운동으로 일궈낸 세상 속에서 살아있는 그들이 과연 과거에 죽었으면 하고 바라게 만드는 이 사회를 과연 우리들은 당연하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차라리 과거에 태극기를 몸에 겹쳐준 1980년대가 그저 돈으로 그 가치를 메기는 2024년보다 더 살만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