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서평
홍지호
‘땀을 흘린 만큼 목이 탔지만 몰을 마실 수 있는 건 하루 세번 식사 때 뿐이었습니다. 오줌이라도 받아 마시고 싶었던 동물적인 갈증을 기억합니다. 갑자기 졸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그들이 언제든 다가와 내 눈꺼풀에 담뱃불을 문지를 거라는 공포를 기억합니다.’
설화와 같은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어릴 쩍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싹 해지는 느낌과 함께 “에이 설마 이게 진짜겠어?”라는 식의 생각이 실제로 느껴보지 못한 공포와 함께 머릿속을 흘렀습니다. 5.18 광주화 운동은 우리 할머니께서 내게 말씀 해주셨습니다. 그 때 당시에 우리 할머니께서는 광주와 조금 가까운 지역의 직장에서 일을 하셨다고 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옆 자리 직장 동료가 말해주던 80.5.18 그날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눈 앞이 깜깜해지고 여기 저기서 눈꺼풀을 내리고 듣는다면 마치 하늘 위로 터지는 폭죽과도 같은 소리가 할머니의 동료분의 귀에 흘러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황급히 자리를 떠나느라 새로산 가방도 챙기지 못하고 도망 치듯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5.18 민주 항쟁 속 정부는 어째서 그저 언성을 높이는 시민들을 시민이 아닌 범죄자,정치범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였고 내가 그 자리에 존재했더라면 나는 어떤 길을 걸었을까 싶었던 5월 18일의 참극이였습니다.
소년이 온다 속 나는 그런 인물이였습니다. 교대 복학생으로써 곧 있어 학생들에게 국어나 수학을 가르칠 훌륭한 선생님이 될 청년이였습니다. 그런 청년을 감옥에 가둬둔 채로 오로지 자신을 정부라고 칭하는 머리가 발랑까진 미친놈을 거부했던 것일 뿐인 사람들은 곧장 정치범,범죄자라는 신분으로 손목에는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꽉 조여놓은 수갑과 전두환에 대한 모욕을 하지 말라고 입에 넣어둔 솜털은 그들의 말할 권리와 안 깨질 유리를 만들 권리를 박탈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나는 김진수를 보았습니다. 매사에 헌신적이고 열정적인,한편으로는 공허한 저편의 무언가를 봐 버린 눈동자는 나를 흔들리게 만들었습니다. “정녕 이런 사람이 오줌을 받아 마실 궁리를 해야하는 것인가”. 나는 감옥 속 안티고네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의 국가,나의 친구들,나의 동료들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외치는 나의 목소리는 전두환 정부,신정부에게는 그저 감옥 속 작은 외침이자 반역의 큰 메아리였습니다. 그런 나를,그런 김진수를 정부는 범죄자로 만들었습니다.
“영혼이란 건 아무 것도 아닌 건가. 아니,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숴지면 못 쓰게 되니까,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부숴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인간은 줄곧 타인으로부터 부숴집니다. 김진수도 이 말을 하고 난 뒤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임을 몸소 증명하기 위해서 결국에는 스스로,아니지. 스스로 죽기를 강요 받았습니다. 김진수와 나는 강화 유리도,방탄 유리도 아녔고 진짜 유리였습니다. 그렇지만 타인은 그걸 몰랐나 봅니다. 군복을 입고 있던 건장해보이던 체격을 가진 남성은 방탄 유리가 아니던 나에게 총을 탕,한발. 탕,두발 쏘았고 나는 쓰러져 ‘체포’라는 ‘납치’를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러고 나서 유리임을 증명했단 걸 보며 이를 정의라고 지칭합니다. 나의 유리판에 금이 간 순간이였습니다.
이는 나만이 느낀 건 아니였습다. 아까도 말했듯이 진수도 똑같이,아니 어쩌면 나보다도 훨씬 더 많은 쪼개짐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진수는 내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영혼을 가지고 있었기에 깨진 유리가 된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는 영혼을 가지고 있었기에 계엄령을 선포한 신 정부에게 움츠려 들지 않았고 영혼을 가지고 있었기에 항쟁에서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리접시가 있는 집은 모두가 겪는 깨짐의 파편은 언제나 겪겠지만 영혼이 사라지기도 전에 너무나도 명랑한 영혼을 가진 유리가 그렇게 한순간에 부숴지리란 상상은 해본 적 없습니다. 나는 김진수의 입꼬리가 올라간 표정을 추억이 아닌 눈물 젖은 회상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저 그가 영혼을 가지고 있었단 이유만으로요.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들은 영혼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혼은 곧 깨짐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영혼은 곧 남에게 대응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하니까요. 그저 남을 위해서 존재하는 유리인 강화 유리는 나의 쓸모를 다할 때까지 깨져선 안됩니다. 오히려 전체적인 공격에 빠스러지는 강화 유리의 특성 탓에 단번에 깨지지 않으려 혼신을 다해 숨어 듭니다,자신의 의견과 영혼을 감춥니다. 그러나 진짜 유리는 다릅니다. 독재 정부나 군부 정부를 세우려 드는 전두환을,다시 한번 피로 얼룩진 역사를 되풀이 하려는 어리석은 전두환의 모습을 보고 막으려는 김진수와 나는 영혼을 가진 진짜 유리였고 진수의 말을 빌리고 첨삭 하자면 우린 부숴지면서 영혼을 가지고 있단 걸 증명하지 않았습니다. 우린 그들에게 맞선 순간 진짜 유리임을 인증했습니다. 그런 나는 금이 가지 않은 유리 여생에 미련이 있을 지언정 깨진 유리인,영혼을 가진 나의 인생에 대해서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