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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Nov 22. 2024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의 문이여

<스즈메 문제>


류호림


오늘도 수많은 문들을 열고 닫았다. 문을 여는 순간 내 앞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또 다른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 있다. 방문을 여는 순간 진동하는 맛있고 따뜻한 냄새에, 나는 더 이상 공부하는 학생이 아닌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먹는 딸이 되고, 현관문을 열고 학교 교실 문을 열면 나는 친구들과 소통하고 선생님들로부터 예쁨 받으려 애쓰는 중학생이 된다.


시간이 갈수록 문은 익숙한 집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내 앞에 더 많은 문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갈 때면 가끔씩 한 자리에 멈춰서서 앞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을 머뭇거릴 때가 있다. 각 문을 통과할 때마다 느껴지는 공허함과 두려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작고 초라했던, 아늑했던 과거의 문들이 그리워져만 간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주인공 스즈메는 어릴 때 엄마를 사고로 잃는다. 따라서 그녀는 엄마와의 행복했던 과거와,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의 그 충격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찬란하고 아프기도 했던 나의 과거는 나를 다른 관문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주인공 은탁이 끝끝내 영혼이 되어버린 어머니를 추억하며 쓸쓸한 인생을 버텼으며, 미지의 문을 열고 캐나다로 떠나 즐거운 경험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모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그녀의 불행을 견뎌내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름답고 찬란했던 과거, 생각보다 별거 없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한 숟갈 떠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을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가끔은 당연함에 속아 이 행복을 짜증으로 반기기도 하지만,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나의 열넷 청춘이라고 생각하면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면서도 아깝게 느껴진다.



문안의 집이라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 그 공간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재해를 경험한 사람들일 것이다. 세상에 인생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인생을 살아가며 과거의 집이라는 공간에 돌아오지 못하기에 그 기억을 땅이 치도록 후회하고 그리워한다. 하지만 나의 아름다웠던 과거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문을 계속 통과해나가며 인생의 제 2의 집을 찾아나가며 계속해서 인생의 원인을 찾고, 연장해나간다. 새로운 끝은 새로운 시작이며, 우리 인생에는 수도 없는 출발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문을 계속 열고 나아가다 발에 쥐가 날 때면 잠시 멈춰 나만의 추모 방법이 필요하다. 자기 내면의 외면화, 행복해서 더욱 아팠을 나의 마음속 과거에게 연고를 건넨다. 행복했던 과거를 생각하며, 이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 아닌 이 과거처럼 나의 인생은 항상 빛나고 있었다는 것을 명심하며 행복했던 나의 과거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다이즌과 사다이즌이라는 고양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마치 소타를 방해하는 악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후렴에는 그들이 스즈메와 소타를 문으로 인도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두 고양이의 존재는 스즈메가 문을 열기 전까지는 드러나지 않지만, 문을 연 후에 드러나게 된다. 이 영화 속 다이즌과 사다이즌은 우리의 인생에서 실패를 나타내는 것 같다. 우리는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기 전까진 끈질기게 나를 쫒아오는 실패에 낙담스럽기도 하고 이 세상이 너무 미워지기도 한다. 과거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들어 더욱 안 풀리는 일에 괜히 바닥에 화풀이하며 애꿎은 허공에 소리질러 본다. 하지만 마침내 문을 열고 나면 이러한 실패들이 우리의 성공과 성장을 향한 벽돌 하나하나였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중간에 포기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깨달음, 우리가 용기를 내었기 때문에 이 문을 열고 나온 후 나에게 엄청난 도움을 준 나의 실패의 조각들, 이 조각들은 과거부터 나를 돕고 있었음을 비로소 꺠닫게 된다.

 



오늘도 나는 집을 나서며 수많은 문들을 열어나간다. 그리고 그 문 하나하나를 열 때마다 홀가분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쓸쓸한 마음도 가슴 한 켠을 차지한다. 그래도 용기있게 먹먹한 목소리로 내뱉어본다. “다녀올게, 다신 돌아오지 않을 나의 문아, 앞으로 그리울 거지만 너무 오래 아파하지는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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