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
-
나는 축구가 좋다. 아니, 그냥 좋다고 하기도 그렇고, 정말로 좋다. 하는 것도 좋고, 보는 것도 좋다. 또 게임으로 하는 것도 좋다. 오늘도 EPL을 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클럽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오늘 밤 11시에 있다. 오늘 이 시간이 끝나면, FC25를 두 판 정도 돌리다가 볼 것이다. 그리고 1시 30분, 리버풀 대 토트넘의 경기가 열린다. 볼 때는 터지는 극장골을 기대한다. 얼마전 아모림 체제 하에서 명단에서 제외되고, 아모림 감독에게 정신교육을 단단히 들은 후, 훈련에 매진해 달라진 결정력, 달라진 드리블, 달라진 패스 능력을 보이며 본머스를 찢어버릴 유망주 가르나초를 기대하고, 완벽한 코너킥 감아차기로 극장골을 득점한 손흥민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리버풀의 골망을 흔들 그 순간을 기대하며, 졸린 눈을 비벼가며 본다. 보는 것을 제일 좋아하지만, 하는 것도 좋아한다. 내 포지션은 주로 중원에서 활동한다. 가끔 수비를 맡을 때도 있지만, 주력이 느려서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는 것을 선호한다. 슈바인슈타이거처럼 중거리를 쏘고 싶어 유튜브에서 고알레 영상을 찾아보며 킥을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연습했다. 연습한 슈팅을 상대편 골대에 꽃고, 그게 골키퍼가 반응도 못하고 날아가면 내 우상 호날두의 세레머니 ‘Siuuuu’ 나 ‘calm down’ 세레머니를 한다. 그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또 수비형 미드필더기 때문에 수비하는 것도 좋아한다. 자주 퇴장당하기도 하지만, 인조잔디에서 슬라이드 태클을 대담하게 걸어서 볼을 빼내는 것도 재미있고 몸싸움으로 슈팅각을 제한 해 실점을 막는 것도 재밌다. 조금 장황해 지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축구하는 것이 정말 좋다.
그래서 한 때, 경기가 끝나고 락스 맛이 나는 개수대의 물을 잔뜩 들이키고 운동장에 누워 하늘을 볼 때면, 축구 선수가 하고 싶었다. 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해서, 카세미루와 마이누와 주전 경쟁을 벌이고, 맨시티와 리버풀 전에서 엄청난 수비와 중거리포 골을 득점해 팀을 승리로 견인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올드 트래포드의 홈 팬들, 안필드와 에티하드 스타디움의 원정 팬들에게 환호를 받고 또 올드 트래포드의 원정팬, 안필드와 에티하드 스타디움의 홈 팬들에게 야유를 듣는 것, 그런 짜릿한 상상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현실이 나에게 지적한다. 너는 축구선수가 되기에 재능도 부족하고, 그저 축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감독이 되고 싶었다. 몇 년 전, 군사 책과 전술 서적을 읽으며 터득한 군사 전략과 이제는 축구의 책, 전술 교본과 같은 책들을 읽으며 감독의 꿈을 잠깐 키웠다. 하지만 회색신사가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시험이 끝나고 평범하게 축구 책을 읽고 있던 어제였다. 감독이 되는 것은 1%고, 선수가 되고 감독이 되어야만 감독이 될 수 있다. 대부분. 그리고 FM 중독자가 감독이 되었다는 것은 그저 아주 특수한 사례일 뿐이다, 라고 말끔한 쓰리피스 회색 정장을 입은 회색 신사는 나에게 지적했다. 회색신사가 떠난 이후, 읽던 책을 그대로 두고 침대에 누워서 나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의 미래에서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할 확률은 적다. 그리고 만약에 내신을 접고, 그 길을 걷다가 적은 확률에 들지 않으면, 내 인생은 노가다꾼이나 쿠팡맨, 배민 라이더가 될 것인데, 그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읽던 책을 다시 책꽂이에 꽃고, 공부같지 않은 공부를 하며, 주입된 내신과 관련된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내가 미래에 갈 대학들을 구체화시켰다.
우리는 범람체가 아니지만, 범람체다. 헛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인간이다. 누구보다도 인간적이면서, 또 인간보다는 범람체에 가까운 것. 인간의 본질을 정리하면 아마 그것일 것이다. 소설 <파견자들>에서는 범람체와 인간들이 끊임없이 대립한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어쩌면 작가는 우리 인간의 이면들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범람체들은 개체별로 개인의 생각과 개인적 특성이 없고, 하나의 연결고리를 통해 연결된 전체를 나타내는 개체다. 하지만 지하인들은 연결고리가 강하지 않고, 교집합이 강하지 않으며 그저 범람체를 무찌르고 지상을 되찾아야한다는 일념 하에 뭉쳐있다. 개인적 자아가 강하고, 개인의 생각과 특징이 강하다. 범람체들은 우리다. 중학교 내신을 생각하고, 고등학교 진학과 수능까지 생각난다. 박살난 기말점수를 생각한다. 대학을 어디로 가야할지, 더 나아가 취업은 어떻게 해야할지도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지하인들처럼 개인이라기보다는 집단으로 묶여있고, 생각의 관점 역시 범람체에게 맞서 지상세계를 되찾아야 한다, 라는 교집합으로만 뭉쳐있기보다는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며 그것이 아니더라도 한국인 10대라는 공통점만으로도 내신과 대학을 생각하고 그것으로 30분 동안 대화하며, 결국에는 같이 PC방으로가 피온을 돌리며 친해질 수 있다.
이처럼 개인적 생각, 개인의 자아보다는 사회 전체의 생각, 사회 전체의 이득을 공유하는 우리를 나타내는 용어가 있다. 바로 ‘집단지성’이다. 우리는 마라탕을 좋아하지 않아도 친구들과 한두번 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라탕 애호가가 되어있는 우리, 그리고 어느 순간 “내 꿈이 군사무기개발자였나?”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4학년 일기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고도 모르게 되며 망각과 새로운 기억 형성을 반복한다. 친구들과 한 두 번 마라탕집에 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우리 무리는 마라탕을 좋아한다, 라는 집단 기억이 생성된다. 사실 나는 위장이 그렇게 강하지 않아서, 매운 마라탕을 먹으면 하루종일 배가 아파서 누워만 있어야 했던 적이 몇 번 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모두 거기서 먹고, 마라탕을 왜 안먹냐고 질문하고, 내가 몇 번 억지로 먹었던 것을 보며 “재영이는 마라탕을 좋아한다” 라고 말하면, 마치 내가 진짜로 그것을 좋아했던 것처럼 기억한다. 또 다른 친구들이 그렇게 하니, 유행에서 후발주자인 나는 항상 뒤쳐져있었기에 선발주자를 따라간다. 이는 언론인 맥케이가, 남들이 투자하는 것을 보고 실패 위험성이 큼에도 투자를 강행하고 중산층들이 다른 중산, 상류층들을 모방해 대규모로 튤립을 매입하면서 생긴 문제들을 지적하는 것 역시 집단 기억의 요소 중 모방에 해당한다. 이처럼 집단생활을 하고, 남들이 투자하고 매입하는 것을 보면 따라하고 마라탕을 좋아하지 않아도, 위장 트러블을 감수하면서까지 좋아했다고 기억하는 것은 집단 기억, 집단 지성이라고 하며 이는 인간의 생활에 매우 큰 한축을 담당한다. 또 사회생활을 겪으며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고, 집단을 이루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집단기억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큰 지분을 담당하며 인간의 특성에 대한 연구에서도 매우 깊은 영향을 미친다.
“오늘은 비밀리에 나오신 분이라, 모자이크와 음성 변조한 채로 진행되는 점 양해 바랍니다. 하시는 일이 무엇이죠?”
“저는 서울시에서 버스 몰고 있는 버스 기사이자, 버스 노동조합 조합원 중 한 명입니다.”
“요즘 또 버스나 지하철이 파업하잖아요. 왜 이렇게 자주 하는 걸까요?”
“그냥 허례허식 같은 겁니다. 승객들에게 경각심 비슷한 걸 심어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거죠.”
“분위기 조성이요?”
“네. 말 그대롭니다. 사실 저흰 돈도 안 부족하거든요. 한 달에 초록 버스 달면, 기본 4백은 벌고, 빨간 버스 달면, 최소가 4백 5십이에요. 근데 그냥 승객들한테 우린 벌이도 얼마 안 되고, 그러니까 우린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다. 그리고 우린 언제든 뒤 돌아 버스 운행을 멈출 수 있는 존재라는 인상? 기억?을 심어주는 거죠.”
-유튜브 인터뷰
버스 노조에서는 최근 지속적으로 파업을 벌이고, 코레일과 관련된 직종에서도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벌여 사회적 혼란을 빚고 있다. 하지만 한 노조원의 양심선언을 통해서 충격적인 사실들이 알려졌다. 바로 처우개선에 대해서 돈은 안필요하고, 그저 분위기 조성이 이러한 파업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파업은 노동자들이 기업에 대해서 저항하는 수단이다. 불필요한 임금과 부적절한 대우에 대해서 항의하는 민주적인 수단이고 정부와 기업은 그 계기를 통해 노사 합의를 유도하고, 모두가 만족하는 중간 해결책을 찾는 것이 정석적이다. 하지만, 버스와 기차의 파업은 시민들의 큰 불편을 야기시킨다. 대부분의 서울 시민들은 버스를 통해 출퇴근하고 있고 경기도에 사는 사람들 역시 서울 또는 다른 경기도로 버스를 이용한다. 만약 그렇게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버스가 그저 분위기 환기를 위해 파업을 한다면, 공공의 이익 부분에서 큰 피해가 발생하고 교통 역시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이에 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위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파업에 참여하지 않을시 xx운수 안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버스 노조에서도 강퇴당해 만약에 어떠한 사건이 생길시 오직 본인의 힘으로 해쳐나가야 하는, 그런 상황에 처한다고 밝혔다. 교대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안이 자주 발생한다. 엄마도 내성적인 성격으로 교대에서는 딱히 동아리 외에는 활동이나 친구를 잘 만들지 않았는데, 선배들이 데모하자고 하고, 교수들 역시 대모를 종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갔다고. 두 공동체 역시 집단적으로 버스는 잘못된 인상을 받고 우리는 존중받지 못한다, 라는 집단 기억을 믿고, 교대에서도 만약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선배들에게 ‘찍힘’ 이라는 불합리한 보복을 당하기 때문에 억지로 참여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도 우리는 ‘집단 기억’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집단기억은, 사회전체에 문제를 야기시킨다. 교대에서 파업 또는 데모가 일어나면 대부분 임용고시 격차를 낮춰라, 같은 교대의 내용으로 경기도 교육청 앞에서 이루어졌다는데, 그렇게 되면 교육청에서 꼭 필요한 업무 또는 회의와 같은 것들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서, 사회적 문제가 생긴다. 또 버스 노조는 말할 것도 없다. 버스는 시민들의 소중한 교통수단이고, 차가 없는 사회초년생들에게 버스는 그야말로 한줄기 빛과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그런 버스가 파업을 해버리고 그 수단이 엄청난 부조리 또는 운수(버스 회사) 또는 지자체로부터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고 기사들이 존중받아야 될 존재라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해 자행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지탄받아야 할 일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사회문제며, 집단 기억으로 인해서 일어날 수 있는 심각한 사회암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집단기억의 모순과 딜레마,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개인에게서 찾기는 힘들다. 집단기억을 통해 우리는 세뇌되고, 그것을 어긴다면 불합리한 보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솔직해지겠다. 나도 집단 기억 앞에서 약한 하나의 인간이고, 집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위버맨쉬가 아니다. 축구를 좋아하면서도, 내 친구들과의 집단기억을 위해서 축구라는 꿈을 포기하고, 그저 빛바랜 꿈으로 점차 남길려고 했다. 마라탕을 먹으면 속이 안좋고, 하루종일 복통을 겪는데도 마라탕을 먹어야만 낄 수 있고, 나는 마라탕을 좋아하고 유행을 따라갔다는 집단 기억에 저항하지 못하고 억지로 따라가 매운맛 1단계, 백탕을 먹었다. 축구를 버리고 공부를 선택했다. 현실을 말이다. 축구를 향해, 물에 빠진자가 헤엄쳐나오는 것에 비유하며 내 인생에 절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글에서 말했지만, 공부를 위해서, 그 집단 기억을 위해서, 또 미래의 물질적 이득을 위해서 포기하려고 하는 위선자가 바로 나라는 인간이었다. 이런 인간이 물질적 이익, 먹여살려야될 가족들의 외식비, 여행비, 의복비, 관리비, 세금을 포기하면서까지 옳은 일을 해야한다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해결책은 집단에게 달려있다. 범람체가 아니라, 유교적 문화에서 벗어나 소설 <파견자들> 속에서 묘사되는 진정한 인간상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 공통된 목표 아래 단결되어 있으면서도 또 헤어질 수 있는 집단 말이다. 버스 운전수들이 부당한 일을 겪으면 협력하고, 또 별 일이 없으면 다시 일상을 지키는 노조가 바로 그 예시다. 그것이 이러한 집단기억의 문제점의 해결책 아닐까. 집단이 변화하기 전까지 집단에 비교해서 한 없이 약한 개인이 할 수 없는 것은 거의 없다. 근원이 바뀌지 않으면, 그 집단에 의해서 수장이, 수장이 밑에 애들에게 집단기억을 심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개인은 집단 앞에서 하나의 나약한 존재일 뿐이니까 말이다.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달을 쫓아가려고 계속 축구를 하면서도, 개수대에 락스와 소독약을 푼 맛이 나는 물을 갈증에 들이키고, 운동장에 누워서 생각할 때면 현실과 공부, 집단기억에 의해서 다시 세뇌되며, 현실을 바라본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 무리 안에서 누군가 축구가 끝나고 마라탕을 먹자고 하면, 백탕을 먹을 것이다. 내가 쫓아가던 달은, 그저 눈먼자가 찰스 스트릭랜드의 음성에 도취되어 가고 있었던 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집단기억에 빠져서, 찰스 스트릭랜드의 음성만 들어가며 갈팡질팡하며, 쫓아간다고 하는 달도, 결국에는 눈먼자의 달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