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윤
초등학교 때 엄마와 서울 인근 쪽 어딘가에 있던 가정식 집에 갔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때 엄마의 도움을 받아 계란 후라이를 구워본 적이 있습니다. 괜한 의미 부여가 된 주체적 계란후라이는 참 먹음직스럽지 않게 생겼더군요. 그렇지만, 난,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본 것 처럼 고급스럽게 먹어치웠습니다. 전 아마, 그곳에서부터 제 모든 기억의 위조를 시작했던 듯 합니다. 요구되지 않아지던 것에 익숙했던 저는 그저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만 인식했었습니다. 데이터에서 이상치가 포함된 중앖값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많은 지식들이 저의 머릿속으로 입력되고 있었고, 가독성 없는 글을 읽는 것 처럼 언제나 막혀있는 나의 보잘것없는 삶이 싫었습니다. 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도,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는 사람이니었으니까요. 살아가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더욱 괴물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허례허식같은 선비질조차 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난 그럴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유동성 있는 삶을 살며 누군가에게 잘난 척을 부릴 용기도 있지 않았습니다. 난 일본 사람들의 유행을 빌리자면 "실패작"이었습니다.
집단의 착각은 나라는 씨앗이 점점 자라면서 드러납니다. 공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록 누군가에게 상처를 많이 받지만, 최대한 상처를 받지 않으려 노력했는데도 세상이 모두 나를 억울하게 몰아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더욱 강해지려 노력했었죠. 나라도 집단착각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무언가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철학을 논하며, ”집합적 무죄, 그리고 집합적 유죄.“란 말을 남겼습니다. 이는 집단 지성을 나타낸 말로, 분명 자신이 가진 개인적인 이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이성이 집단에 들어가면, 흔들리고, 다른 형태로 변모한 이성으로 ‘새로운 기억’으로 자리 잡는단 말을 뜻합니다. 공동체를 살아가야 한다면 이 이론은 과연 성립될 것입니다. 그들의 대립과 갈등을 흡수해야 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쉽지만, 우리 모두 욕망을 가지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수는 없는 것 처럼요.
나도, 우리 모두 처음 세상에 피를 온몸 가득 묻힌 채로 태어난 후 처음 본 것은 "물음표"일 것입니다. 의사가 우리에게 이유모를 선을 잘라주고, 누군지 모를 사람에게 안기게 하고, 울어도 가만히 놔두고, 상식적인 뇌 구조가 아직 발동되진 않았지만, 상실적이지 않은 자아를 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처음부터 나의 생각은 물음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점점 자라나며 물음표는 점점 커져가고 있고, 중학교 내신과 고입 대비로 분주해진 나의 정신머리는 사실 자신이 "내일 뭐 먹지"를 생각하고 있음에도 심미적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 아름다운 스터디플래너를 펼쳐놓고 흐뭇하게 웃고 있거나 공부 시간을 켜놓고 밥을 먹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난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고, 그마저도 너무나 과분한 대접이지만, 여태까지 우매한 나는 현자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항상 쳐냈습니다. 자신의 앞 사정을 바라보지 않고 그저 현재에만 집중하는 무계획한 사람이었죠.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반항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철학을 견고히 하는 잠재적인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사람들에게 자잘한 피해만 주며 자신만의 극단적인 기사도 철학을 맹신하는 돈키호테처럼 말이죠.
"따뜻한 밥 위에 누워자는
계란 프라이 프라이 같이 나른하게"
언제나 힘이 들 때마다 흥얼거리는 그 가사는 너무나 나의 몸을 잠식시켜 한 때 꿈이 "계란 후라이"인 적이 있을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집단 기억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결함이 있지 않은 듯 보였고, 그렇게 계획적이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나라는 듯 손가락질을 해대고 있었습니다. "평범"이라는 가면을 손에 쥐고 어딘가에게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난하듯, 세상은 어딘가의 모순적인 범람체들로 강화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런 것들을 말하기에는 1984처럼 모든 것들이 세뇌되어 있고, 서연고라는 3대 대학에만 집중하여 대학을 가려는 사람들보다 이젠 현실을 직시하고 특성화고 쪽으로 노리는 사람이 제 학교에는 더욱 많아졌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지만은 않듯이 나도 그곳에서 경쟁하는 사람 중 한명이었으니까.
내가 아는 계란후라이는 자아가 없습니다. 천부적인 공부 실력도 없고, 기타를 칠 만한 아름다운 인간의 손가락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인간의 욕망을 아침마다 채워주는 물질일 뿐이죠. 마리와 라이오니, 그들도 욕망과 희망이라는 어딘가에 둘러싸여 후라이처럼 방황하고 있던 존재입니다. 초췌하진 모습의 사람들에게 성과를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한 번 더 바라보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모두에게서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바꿀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도 나른하게 강물을 떠내려가지 않으려 하고, 모두가 편협한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용인외대부고나 보는 것이지 지방에 있는 다른 곳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모두가 후라이가 된다면 세상이 무질서해지고 위계질서가 소멸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파멸시키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강행해야 할 프로젝트이자, 이름은 "후라이의 꿈"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