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하
명성과 관련된 실질적 원칙들의 경우, 유한계급이 일으킬 수 있는 변화의 폭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 계급의 모범과 원칙은 하위 모든 계급에게 참고적인 규범으로 작용한다. 명성의 형태와 방법을 지배하는 원칙들을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하위 계급들의 관례와 정신적 태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 이런 권위 있는 처방은 과시적 낭비의 기준과 일솜씨 본능으로부터 선별적 영향을 받는다. 어떤 형식적 절차가 초창기에 아무리 높고 또 명성의 근본적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가령 시간이 경과되거나 그 절차가 하위의 금전적 계급을 흘러내려갈 때, 품위의 기준에 역행한다면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금전적 성공이라는 차별적 비교의 목적에 부응하지 못하면 그 형식적 절차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 유한계급론
흔히 '친구랑 놀고 올게!' 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대충 어떻게 놀지 알고 있다. 버블티를 사먹고, 영화를 보거나 카페를 가고, 노래방을 갔다가 쇼핑을 조금 한 후, 인형뽑기장에 가거나, 사진을 찍으면 노는 것이 어색한 분위기를 내지 않게 노는 방법이다. 하지만 찐으로 친한 친구를 만난다면 낡아빠진 2000년대 떡볶이 맛집에 가서 아무거나 시킨 후 쩝쩝 거리며 쉬지 않고 얘기 하며 다 먹은 후 대충 소매로 쓱쓱 닦고 나온다. 그 후로는 아무떄나 앉아서 수다를 떨다가 공원이나 놀이터로 가서 세상 유치하게 놀곤 한다. 그러다 축제가 있으면 거기 끼여서 체험 부스를 즐기며 또 다시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집에 가곤 한다. 사진으로는 엽사밖에 없고, 어딜 가든지 간에 잘 노는 것이 그만이다. 아니, 어딜가든 잘 놀고 아무말도 안하고 끔뻑거리기만 해도 편하다.
어느순간 부터 학교를 갈 때 준비하는 시간이 오래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름 없는 추리닝을 입고 머리는 하나로 묶은 뒤 내용물이 변하지 않는 가방을 메고, 세수만 하고 가곤 했는데, 6학년에 들어서고 나선 미리 골라둔 옷도 맘에 안들어 흑청바지와 후드티가 아니면 옷 입는 게 거슬리게 되었고, 세수는 기본이고 스킨, 에센스, 로션, 림밥을 차례로 바른 후 살짝 말리고 머리는 오일을 바른 빗으로 빗어서 한 방향으로 풀어 넘기게 되었다. 그러곤 학교로 가게 되었다. 이런 면에서 난 직접적인 과시적 소비를 하고 있었다.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을 잘 살펴보니 작은 행동 하나 하나에 비교되기를 원하는 나의 심정이 들어있었고, 그건 우월함을 느끼고자 이루어지는 나의 과시적 소비였다.
유한계급론은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소유한 재산으로 소비만 하는 계층을 뜻한다. 다시 말해, 돈은 안 벌지만 사기만 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인것이다. 여기에는 건물주 자식과 재벌, 독립하지 않은 우리 같은 아이들등이 해당 될 수 있겠다. 유한계급론에 해당되는 부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람들로 부터 비난을 받는 동시에 비난에 섞인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무늬가 칙칙하게 절에서나 볼 수 있을것 같은 모양만을 조금씩 변형하여 잔뜩 넣어둔 천 쪼가리가 에르메스라는 브랜드에 힘 입어 40만원에 팔리는 현재, 우리는 얼마나 유한계급론에 속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가? 마치 아싸가 인싸 욕을 맨날 해대면서도 인싸가 되고 싶어 애를 쓰는 것과 같이 우린 유한계급을 욕하면서도 유한계급이 되고 싶어 하는 부조리를 낳는다.
유한계급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돈만 있으면 모든 물건을 살 수 있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잠시나마 왕 노릇을 해보고 싶었던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리고 거울 속에서 발까지 내려오는 통바지를 입은 나를 보며 씁쓸함을 느끼곤 한다. 우리 모두는 누려보지 못한 것을 기대 이상의 것으로 믿으며 이루어볼려고 갖은 애를 쓴다. 적당히 입어야지 기본치에는 다다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유한계급의 꿈은 야망계급이란 이름으로 바꼈을 뿐이지 우리에게 있어 유한계급은 그토록 먹고 싶은 마죽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