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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Dec 30. 2024

그는 사실 유한계급을 사랑했다

박재영



“이곳 세상에서는 누구나 다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삶을 살았다.”

-스노볼


소설 <스노볼> 시리즈에서의 유한계급은 당연히 스노볼 안에 거주하고 있는 계층, 특히 그 중에서도 스노볼 시스템을 돌아가게 만드는 드라마를 총괄하고 편집하는 디렉터와, 최상위계층 이본 그룹과 그 측근들이다. 그 사회 시스템 속에서는 서민, 또는 하위계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스노볼 외부 거주민들은 스노볼에 전기를 송신하는 발전기를 돌리는 대신, 스노볼에서 송출되는 드라마를 보면서 살아간다. 스노볼의 공간은 한정되어있기에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매년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고, 그 오디션은 액터와 디렉터로 나뉜다. 작중 세계는 다시 찾아온 빙하기로 인해 기존 문명이 멸망한 상태고, 안정적인 문명을 누릴 수 있는 지역은 오직 스노볼 뿐이기에 사람들은 모두 스노볼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외부의 지역은 춥고, 난방 역시 잘 안되고 스노볼에게 전기를 송출하는 대신 얻는 드라마로만 삶을 영위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노볼 외부의 지역에서, 모두의 꿈은 똑같다. 그저 살을 에는 듯한 추위, 그리고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이 연위되는 외부 지역을 떠나서, 사생활이 노출되도 따뜻한 날씨 속 후드티 하나만 입고도 거리를 거닐 수 있는 스노볼에 들어가는 것. 오직 그 하나였다. 그렇기에 외부의 사람들, 발전소의 반장도, 학생들도, 어른들도 모두 스노볼에 들어가는 것을 꿈꾸었으며, 전기를 생산하지도 않고, 그저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스노볼 안에서의 따뜻한 생활을 누리는 ‘유한계급’ 들을 동경했다.


이렇게 유한계급을 동경하는 것은, 단순히 소설 시리즈 <스노볼> 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당장 우리만 해도 이 추운 날씨, 패딩에 두꺼운 파자마 차림으로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야되는 삶을 싫어한다. 우리가 바라는 삶은 이것이다. 집 안에서 바로 음식물 쓰레기를 모으기만 하면, 특수한 시설을 통해서 외부로 나가지 않고 집 안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 할 수 있는 롯데 시그니엘 레지던스 300평 팬트하우스에 사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늘 보이는 자동차들이 즐비한 그저 일반적인 풍경이 아니라,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황홀한 시티뷰를 우린 동경한다. 그리고 어느 기름을 써서 튀겼을지 모르는 치킨을 배달받아 먹는 것보다는 시즈닝을 한 커다랗고 살이 많은 통닭을 오븐에 구운 후, 푹신한 빈백 의자에 앉아서 닭다리를 뜯고 시티뷰를 바라보며 브랜디, 아니 고급 코냑을 마시는 삶을 우리는 여전히 동경한다. 그러면서도, 그런 삶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렇게 살면서도 낮에는 하루종일 집에서 놀면서 고급 슈퍼펜트하우스에 딸려오는 인피니티풀에서 수영하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친절한 트레이너와 운동하며 집에서는 물소 가죽 소파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 상상을 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스노볼 속 세계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모두가 똑같은 꿈을 꾸듯, 우리는 모두가 똑같은 유한계급을 상상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대에 들어 이렇게 우리가 함께 꿈구는 유한계급은, 이제 추종하는 대상이 부에서 지식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해서 전환된 유한계급을 바로 ‘야망계급’ 이라고 한다. 작가 커리드 헬킷은 야망계급을 높은 교육수준과 지식 같은 문화 자본을 바탕으로 한 가치 소비를 실천하는 집단으로 정의한다. 베블런이 말한 '유한계급'과 달리, 야망계급은 단순히 돈만 많은 사람, 비싼 물건만 사는 이들이 아니다. 친환경이나 건강, 안전, 동물권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가치에 바탕을 두고 소비한다. 과거의 유한계급이 졸부로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로로피아나 같이 수수한 올드 머니룩을 즐기던 것에 반해, 야망계급은 자신들의 위상을 친환경적, 사회적 소비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유한계급은 주로 화이트칼라 직종을 통해 나타난다. 변호사, 의사, IT 전문가, 교수, 금융업 종사자 등은 지적 노동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현대 사회의 새로운 엘리트 계층을 형성한다. 이들은 고학력과 자격증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정당화하며, 물질적 부를 넘어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한다. 이 과정에서 지식과 문화는 새로운 '과시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예를들어, 이들은 고급 예술 작품, 독특한 취향의 문학과 음악, 혹은 와인과 요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자신들의 '세련된 삶'을 강조하며, 과거 유한계급의 사치와는 다른 형태로 우위를 드러낸다.


이처럼 유한계급, 또는 야망계급이 평민들이 그들을 동경하게 만드는 방법은 쉽게 따라하지 못하는 소비 방식에 있다. 과거의 유한계급이 거대한 대저택, 그리고 수수하지만 비싼 고급재료률 사용해 가격이 높은 옷등을 이용해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였다면, 현대의 야망계급은 자신들의 세련됨을 과시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이처럼 유한계급과 야망계급처럼 사회를 지배하는 계층은 다른 계층이 따라하지 못하는 소비방식을 이용해, 그것을 하나의 문화로 만든다. 이처럼 문화적 자본으로 힘을 얻은 유한계급과 야망계급들에게는 권력이 주어지며, 그렇게 해서 얻은 소프트파워와 사람들의지지, 동경, 부러움으로 얻는 힘으로 현재 사회의 엘리트가 되는 이들에게는 안정적인 권력기반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소프트파워와 그 소프트파워를 바탕으로 해서 얻은 지지를 바탕으로 하여 안정적인 생활, 기득권 생활을 유치해나가는 유한계급과 현대의 야망계급은 현대의 신분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야망계급이 안정적인 식단을 관리하고, 자녀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자녀와 함께 토의하는 동안, 생계를 위해 하루 내내 일하는 여성의 생활을 생각해보자. 그녀는 긴 노동 시간에 잠 잘 시간도 부족하다. 독서 모임은커녕 책과 잡지를 읽을 틈도 생기지 않는다. 모유 수유를 할 힘도 시간도 남지 않았다. 기후위기를 신경 쓸 겨를은 더욱 없다. 헬스클럽에서 일대일 지도를 받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 한다. 그에게 자녀의 교육에 돈을 들이고, 건강 식단을 꾸리는 일은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 그렇게 해서 현대의 일반, 평민 계층이 상위 계층으로 도약하는 것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으며, 그 벽은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 또 자수성가 해 부자가 된 사람들은 설령 야망, 유한 계급보다 더 돈이 많을지라도, 사회적으로 천대받는다. 졸부라고 말이다. <위대한 쇼맨> 속 주인공이 돈을 벌었지만 상류사회에 쉽사리 끼지 못하는 것도 이 ‘소프트파워’에 있다. 결국 야망계급과 유한계급은, 현대의 신분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유한계급과 야망계급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소설 <스노볼>에서도 묘사했듯이, 우리는 이러한 유한계급과 야망계급의 불합리함을 조금이라도 통찰을 한다면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저 롯데 시그니엘 슈퍼펜트하우스에서 시티뷰 야경을 즐기며 홀짝이는 코냑의 맛을 상상하며 애써 무시하고 있다. 모두가 같은 꿈을 꾸고 그것을 대화를 통해, 사회생활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우리는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결국 사회의 장벽을 유지하고 더 높게 쌓아올리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 아니었을까. 나 자신 역시 이 글을 통해서 유한계급을 비판하고 있지만, 유한계급이 되는 상상을 오늘 밤 침대에 누워서, 자기전에 스포티비로 토트넘대 울버햄튼을 다 보고 난 후 생각하며 잠들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유한계급을 비판하지만, 유한계급을 사랑하고 있다. 아니 사랑하게 되어있다. 마치 <1984> 속 빅브라더를 사랑해야만 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유한계급을 사랑한다. 아니 사랑해야만 했었다. 우리는 언제나 유한계급을 사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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