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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Dec 30. 2024

무한계급론

정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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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랬다. 장엄하고 아름다웠으며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지위를 가졌으나 소비의 폭은 다양했었다. 하인들에게 에르메스나 구찌의 넥타이를 입혀야지 그들에게 참고적인 규범을 선사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아내에게는 거추장스럽지만 아름다운 길고 긴 드레스를 입혀야지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사는 순결한 여자"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얻게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인간들에게 질타심과 이기심이 담긴 부러움과 한편으로는 필사적으로 그들의 위치에 닿으려는 대비된 욕망을 보여주었다. 유한계급자들, 그들에게 아름다운 넥타이를 맨 하인과 긴 기장의 드레스를 입은 아내는 그저 자신에게 만족을 줄 인류 소비자였으며, 돈을 매개로 한 권위 있는 처방은 우리 모두가 그러한 소비계층에 쏠림 현상을 보인다는 사실과 진정한 금전적 성공에 부합되는 인상의 기준을 만들어나간다는 것을 의미하곤 하였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도 노력이 요구되는 그 형식적 절차는, 지금의 정신적, 신체적 유토피아를 만들게 되었다."


흔히 내 주변의 친구들은 "올드 머니 룩"을 선보이곤 하였다. 사람들에게 다색적인 브랜드를 공개적으로 선보이지 않고, 그들만의 여가를 자연스럽게 즐긴다는 인상으로 시작된 그 룩은, 결국에는 우리에게 악세사리나 가방 같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비록 어떤 돈을 버는 행위를 하지 않지만, 그들에게서 꿈틀대는 소비적 욕망은 그들을 자연스레 에이블리나 올리브영, 나이키와 스투시로 이끌게 한다. 부를 자랑하면서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에게 모든 시선이 쏠리며 과거에 청산되었던 그들의 친분성을 다시 한 번 그 아이에게 대입하여 생각해본다. 그 아이에게서 친분성이 발견된다면 어떠한 부자의 법칙에 자연스럽게 순응하는 척 그 아이에게 다가가게 된다. 아이들은 돈 앞에서는 어떠한 백색 순결도 지키지 않았으며, 그저 윙키가 장관에게 엎드려 비는 것 처럼 다른 아이들도 그 아이와 친해지지 못해 안달이었다. 흔히 드라마에서 나오는 여자 주인공은 딱한 사정을 가지면서 나중에 재벌 집 아들과 결혼해 성공한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 샀었던 그 보세 가방은 이제 그들의 해피엔딩에 치여 무대 소품으로나 남아있을 것이고, 실제 연기자였던 배우는 이제 루이비통이나 다른 브랜드의 가방을 차며 모두의 우러르는 시선을 양껏 즐기게 될 것이다. 세상 유치하게 명품이나 다른 부의 상징으로 놀렸던 그 아이들의 과거를 한 때 컸던 어른들은 생각해 볼 것이다. 노스페이스 패딩이 없던 시절에 가난한 집 아이라면서 놀림받는 아이를 한 번 쯤 본 기억이 생각날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그것을 "눕시"라는 이름으로 비싼 가격에 구매하고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눕시를 가지면 그 부의 가치는 상실되듯,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근본적인 야망과 요구사항이 아닌,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인류적 가치였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유한계급에 속해 있지 않는다. 더 많은 가치에 관한 소비의 범위를 넘나들기 위해 "야망계급"이라는 곳으로 진출하고 있는 중이다. 기후변화와 동물의 위기에 대해 생각하며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예이다. 우리는 감히 그러한 비싼 플라스틱을 구매하면서까지 모두의 이익을 책임질 생각이 없지만, 야망계급들은 그런 행동들을 하면서 외면의 아름다움을 가꿀 뿐만 아니라 내면의 가치까지 발전시킨다는 입장에서 진정한 "신"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러한 유한계급은 이젠 늙은 계급으로 치부되며 새로운 유행에서는 유한적인 한계를 보이는 인간적인 특징을 가진 계급으로 정의된다. 소스타인 베블런은 가난한 농촌을 소유한 농부의 아들이자, 유한계급론을 저술한 사람이었다. 그는 비록 유한계급론을 쓴 뒤, "베블런 효과"로도 주목 받았지만, 그 책을 서술함으로써 그 자신 자체에도 "유한계급"이라는 욕망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라는 말에는 답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치 웹툰 <흑요석의 신부>와도 같은 것이, 그들은 자신의 신분과 계급을 숨긴 채 그저 보석의 이름으로 만남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러한 만남의 과정을 티비 프로그램으로 송출하여 모두가 볼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오로지 부자라는 사람이 할 만한 행동으로도 인식되었으며, 서민들은 결국 이 방송을 지켜보아야만 한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도 마찬가지었다. 일부 측면에서 자신이 태어난 노르웨이 농촌과 미국의 과시적인 소비의 한계를 비교하며 미국 국적자들에게 불쾌감을 안겨주는 숨겨진, 그리고 모순적인 샤덴프로이데를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거듭난 지론인 야망계급자들은 이제 사람들에게 진정한 내부적 유토피아를 설계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특별한 목적을 가진 건전한 소비를 마련해줌으로써 내면의 꽃밭을 만든다는 것이 진정한 소비라면, 그것은 소수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고, 모두가 근본적으로 실천하기 힘든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원론적으로, 그리고 공통적으로 가지고 가는 계급의 기준의 시초적인 특징은 "모두가 실천할 수 없고, 사람들이 그러한 소비를 통해 특별한 만족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소비패턴을 새롭게 변형하고 다시 구축함으로써 우리는 향상적인 시대를 만들게 된다. 우리에게서, 그리고 앞으로도 육체노동같은 존재들은 사실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더울 때는 시원한 곳에서, 추울 때는 따뜻한 곳에서 일하렴"은 우리 모두에게 학부모들이 이야기하는 자연적 진리가 된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던 것일까, 부를 바라는 것인가, 최소한 인간다운 삶만을 실천해달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인간적인 삶은 과시적인 소비를 하면서 적당히 부를 중시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저 인간적인 구실만을 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라는 뜻인가? 이를 논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어색한 사람의 관계 앞에서 자랑하는 부는 우리에게 큰 만족감과 재화의 법칙을 작용시키기 때문에, 낭비적 소비를 함으로써 우리가 야망에 도달하는 것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퇴화되는 부의 가치를 욕하면서도 그들에게서 풍겨나오는 부의 냄새에 날카로운 이빨을 빼들고 달려들게 된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유한적인 가치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닿을 수 없는 무한적인 가치에 손을 뻗는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과시적인 소비의 토대를 깨고, 인간 자체를 아름다운 소비의 기준으로 삼고 싶어 한다. 아내에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히는 것이 그 예이다. 아내는 지금의 시간으로써 우리에게 많은 노력을 가져야지 만날 수 있고, 결혼식 때 입힐 비싸고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는 그녀에게 집안일과 모든 것들을 안하게 하겠다는 정점의 약속을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준다. 흔히 결혼식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이라고 하는 말은 변함없는 사랑의 맹세 서약같은 장식적 욕구의 실천일 뿐,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하객들과 부모들은 자식의 턱시도와 드레스가 얼마나 비싼지, 아내의 얼굴과 남편의 얼굴이 얼마나 훤칠한지, 예식장에 그들의 가치가 절대적으로 부합하는지를 바라보게 된다. 결혼을 하고서도 주름지는 얼굴과 빨라지는 노화 속도는 그들에게 아름다운 인간의 변모라는 이름으로 남겨두게 된다. 이제 아내의 아름다운 얼굴과 자연스럽게 조화될 수 있는 여러 드레스와 아름다운 몸에 맞을 수 있는 여러 장비들을 구매하면서 인간의 가치를 정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미래의 우리가 나아갈 소비 습관이자 경향이 될 것이다. 남편에게 비싼 브랜드의 옷과 전문가 스킨 케어 서비스를 예약해줌으로써 내면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아름답게 바꾸게 된다는 새로운 가치가 도입될 것이다.  이는 바뀔 수 없는 가치가 될 것이며, 자식과 대를 이으면서 모두에게 똑같이 작용하는 패턴이 되면서도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극단적인 방식이 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예로부터 역사를 건너면서까지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인을 두고 아녀자들을 두면서 그들에게 막노동과 일을 시키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양반과 천민, 양민이라는 계급을 형성하며 원치 않는, 상류층만 원하는 위계질서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현대의 졸부로 불리는 사람들과 재벌들은 그들의 면에서는 차이를 보이듯, 부를 소비하는 방식조차 다름을 선보이며 원초적인 부 소유자들과 후천적인 부 소유자들로 나뉘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퇴화된 신"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다 쓰러져가는 신의 낡은 조각상 앞에서 자신의 순결과 부의 중요성을 논하며 빌고 또 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미래의 소비자들은 그런 가치들을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 감히 예상해본다. 인간 그 자체를 부의 가치로 만들면서 그들을 소유하는 것이 부의 최고치라 생각하게 될 것이며, 진정한 물질적 소유는 이제 그 부의 최고의 대상을 꾸며줄 부가가치로 작용할 것이다. 유한계급과 야망계급은 가치의 물질적 부만 생각하는 반면, 부를 자랑하면서 특별하기까지 하고, 물질적 부를 부가가치로 한 진정한 무형적 부를 소유한 자를 진정으로 우린 뛰어넘을 수 없고, 그러한 인간들은 이제 진정한 "신"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린 이것을 "무한계급론"이라고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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