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을 세우는 기둥-유한계급론
백은서
오늘날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가 아니게 되었다. 세상과의 대화이며,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방식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는지는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외부에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이 소비의 행위는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세상에 선언하는 과정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소비는 물질적 충족이 아닌, 사회적 통제와 지배를 의미하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조지 오웰은 “우리는 우리가 소비한 것들의 집합체”라고 말하며, 소비가 단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강화하는 방식이 된다고 설명한다. 소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외부에 드러내고, 그를 통해 사회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말없이 보여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메가커피 대신 비싼 스타벅스를, 비싼 브랜드의 옷을 입는 것을 통해 자신이 세련된 사람임을 드러낸다. 이런 소비는 단지 좋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적 계층이나 세상에서의 위치를 명확히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문화적 자본을 중요시한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은 현대 사회의 소비를 더욱 심화시킨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문화와 지식이 물질적 자산을 뛰어넘어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우리는 문화적 자본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차별화하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한다. 고급 와인 한 병을 사거나,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 혹은 최신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개인의 취향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뒤에는 그 사람의 세련됨이나 지적인 삶을 외부에 과시하는 목적이 담겨 있다. 이 소비는 물질적 부의 과시보다도 더 강력하게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며,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렇지만 모든 이가 이러한 소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류층이 쌓아온 문화적 자본은 한정적이며, 그들은 이 자본을 통해 사회적 우위를 확립하고 이를 대물림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그 자체로 신분을 과시하는 행동이다. 식사를 즐기는 장소와 방식은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계층을 드러내는 신호가 된다. 또한, 명문대학에 다니는 것, 고급 예술을 소비하는 것 역시 특정 계층의 특권이 되어버린다. 이 소비를 통해 상류층은 자녀들에게도 동일한 문화적 자본을 물려주며 사회 내에서의 차별을 심화시키고 그 차이는 점점 더 확대된다.
반면, 일상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고급 소비가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질 수 있다. 아침에 커피를 사는 것조차 큰 비용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이 사람들은 물질적 소비보다는 실용적인 소비에 집중한다. 그들은 건강한 음식을 사고, 자녀 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려 애쓰며, 매일의 생계를 챙기기에 바쁘다.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은 하루 종일 일을 하느라 지쳐 있을 것이다. 저녁에는 아이를 돌보며,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이 없다. 필라테스에서 개인 강습을 받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녀가 소비하는 것은 주로 생존을 위한 소비이며, 고급 문화나 취향을 소비할 여유는 없다. 소비는 각 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이는 그들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상적인 소비 패턴은 결국 사회 내에서의 격차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상류층의 문화적 소비는 그들의 위치를 고수하고 강화하는 수단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만큼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소비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사회에서, 이 격차는 더욱 확대된다.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개인의 소비를 제한하고, 특정 계층의 소비를 강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소비는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외부에 드러내는 행위가 된다. 오늘날 소비는 물질적인 차원을 넘어서,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의 역할과 특권을 확립하는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소비의 방식은 우리의 사회적 지위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구조를 더욱 명확히 만들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