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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인생

면도날 감상문

by 제이티

류호림


오늘따라 가습기에서 나오는 하얀 솜뭉치가 더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요, 후즐근한 후드티에 잠옷 바지를 걸친 내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저의 착각일까요? 포도 한 움큼을 입에 집어넣으면서 글을 쓰는 저의 인생의 일부분이 무엇보다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은 저의 일시적인 웃음 때문일까요? 당신이 서 있는 그 인생의 무빙워크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나요? 올바른 방향인가요? 당신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인가요?

항상 확인받고 싶었고,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나의 인생을 말이죠. 나의 인생은 과연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을지,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을지를 말입니다. 오죽하면 우리 엄마와 할머니는 제가 회장 선거를 나갔던 기간, 불안해하던 저를 위해 점쟁이에게 가서 제가 전교 회장이 당선 될 수 있을지를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제 인생에서 아주 작은 변화가 생길 때에도, 나를 둘러싼 공기의 흐름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마지막 층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젠가를 빼낸 것마냥 와르르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습니다. 나 자신을 믿지 못했고, 때문에 더욱 남에게 나에 대한 평가를 떠넘기고선 남의 기준에서의 성공한 삶을 사려고 노력했으며, 이는 저의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각박하게 살아온 원인이 되어왔던 것 같습니다.

<면도날>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악역이 없다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자신 내면의 본질을 찾아 여행을 떠난 래리, 사랑보다 모피코트를 걸친 사치스러운 인생을 선택한 이사벨, 거친 파도의 인생과 화해하지 못하고 가엾은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소피, 흔들렸던 인생 속에 낭만을 찾은 수잔까지, 이 책의 작가이자 주인공인 몸은 그 어느 인생도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 희망을 품은 인생들을 바라보며, 이 시대에 다양하게 현존했던 고결한 가치들을 아름답게 장식했습니다. 혹 그것이 그들의 이기적인 욕망과 지나친 욕심일지라도 그는 주인공 한명 한명의 손짓조차 아름답고 고귀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결국 <면도날>과 작가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당신이 살아가는 인생의 방식이 곧 정답이라고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작 속 주인공들이 남긴 인생의 흔적들, 발자취의 모양이 정직하건, 거칠건, 그들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 당당하고 성실하게 노력한 점에 날개를 달아 소중하게 글로 써내려갔습니다. 어리석어 보이고, 조금은 추해보이기도 했던 각각의 주인공들의 ‘순간’만이 아닌, 그들의 전체적인 인생을 담았기에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주인공 한명 한명에게 정이 가고 그들의 모든 인생이 가치있게 느껴졌던 것 같네요. 그는 나의 머릿속에 뿌리내려져 있던 ‘정해져있는 성공’의 고정관념을 마구 흔들어놓지 못해 완전히 뽑아내어버렸습니다. 누군가의 성공과 행복의 기준이 사라지고 머릿속에 공백만 남으니, 조금 어색하긴 해도 내 인생은 그저 내가 살아가는 순간, 매 초만으로도 모두 고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새벽에 아름다웠던 장미가 정오에 그 아름다움을 잃는다고 해도 그것이 새벽에 가졌던 아름다움은 실제로 존재했던 거잖아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요. 그러니 무언가에게 영원한 존속을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존재할 때 그 안에서 기쁨을 취하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어리석은 거에요. 변화가 존재의 본질이라면 그것을 우리의 철학의 전제로 삼는 것이 현명하죠.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어요.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니까. 하지만 다른 강물에 들어가도 그것 역시 시원하고 상쾌한 건 틀림없어요. -서머싯 몸,<면도날>

나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강물에서, 영원을 갈망한 채 변화를 두려워했습니다. 내가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지겹도록 주장했던 바이지만, 결국 내가 나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 나 자신을 가장 지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장미는 쉽게 피고 쉽게 지지만, 꽃이 핀 그 짧은 기간에는 그의 인생을 즐기듯이 한없이 아름다웠다, 꽃이 지면 푸릇푸릇한 잎사귀를 피어내며 꽃이 진 나름대로의 인생을 즐겨나갑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오답이 없어요 우리는 장미가 지고 겨울이 찾아왔을 때 그가 초라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결국 인생은 남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어떤 모습이건, 내가 돈이 없고 얼굴이 예쁘지 않고 키가 작더라도, 나는 나이기 때문에, 인생에 멈춰있는 영원함은 없지만, 내가 아름답고 누구보다 고귀하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 유일한 영원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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